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주안 Feb 02. 2021

도시락


아침에 부지런히 출근 준비를 한다.

즐겁게  꽃단장하고  마지막에 하는 일은  나의 도시락을 싸는 것이다.

분홍색 통에 반찬을, 파란색 통에 밥을 담는다.

예쁜 천가방에 두 개의 통을 가지런히 넣고 집을 나선다.

이 순간이 참 좋다.

정성스레 만든 반찬을 고슬고슬하게 지은 밥과 함께 담아서 내가 좋아하는 일터로 가는 기쁨.

얼마나 신나는 일인가.

남들에게 별 것 아닌 일. 도시락을 싸는 일조차 나에게는 생의 결핍을 채워가는 치유의 여정이기도 하다.



학창 시절에  도시락을 가져가기 어려운  형편이었다.

타지에서 일하시던 부모님과 떨어져 살다 보니 내가 도시락을 싸는 건 힘들었다.

점심시간에 친구들이 도시락을 먹을 때 나는 학교 앞 가게에서 당시 300원쯤 하던 컵라면을 사 먹었다.

아이들이 4교시 수업 종료 소리와 함께 부시럭대며 밥 먹을 준비를 하면 나는 냅다 뛰어

교문 밖 가게로 향했다. 얼른 라면 한 개를 집어 들어 빠른 손놀림으로 포장을 벗기고 물을 부었다.

가끔은 내가 올 걸 알고 계신 주인아주머니가 물을 부어 놓기도 했다. 

라면 값을 치르고 다시  교실로  재빠르게 돌아가야 한다.

그래야 친구들과 먹는 속도를 맞출 수 있으니까.

국물을 쏟지 않는 놀라운 기술을 구사하며 라면을 들고 가면  친구들이 수다를 떨며 밥을 먹고 있다. 

숨을 몰아쉬는 나를 향해 빨리 오라고 손짓한다.

의자에 앉아 라면 뚜껑을 걷어내면 얼핏 봐도  먹기 좋을 정도로 익어 있다.

내 덕분에 맛있는 라면에  국물까지 먹는다며 친구들은  좋다고 했지만 

그 말은 나에게  전혀 위로가 되지 못했다.



친구들 도시락이 항상 부러웠다. 

그중에서도 내 앞자리에 앉았던 혜진이의 도시락. 그녀의 도시락은

나를 주눅 들게 했다. 혜진이의 분홍색 도시락은 3단이었다.

맨 아래에는 밥을, 중간에는 반찬을, 맨 위에는 과일이 담겨 있었다.

반찬도 기본 다섯 가지였다. 몸이 약했던 딸을 위해 혜진이 엄마는 고기반찬을

빼놓지 않았다. 하루는 불고기를, 하루는 제육볶음을, 나를 가장 놀라게 한 건 

떡갈비였다. 나는 떡갈비라는 걸 그때 처음 먹어보았다.

전라도가 고향이었던 혜진이 엄마의 음식 솜씨는 친구들 사이에서도 부러움을 살 만큼

소문이 자자했다. 음식 솜씨만이 아니었다.

밥에는 항상 검은깨가 듬성듬성 뿌려져 있었고, 반찬들은 다양한 야채로 색을 맞추어 보기  좋았다.

과일들의 모양은 감탄할 만했다. 전문 요릿집에서나 볼법한 현란한 칼집이 들어가서 먹기에 아까웠다.

그 놀라운 도시락을 아무렇지 않게 당연한 듯 먹던 혜진이 표정은 아직도 기억난다

심지어 유난을 떤다는 식으로 엄마의 도시락에 대해 이야기했다.

"왜 이렇게 까지 하나 모르겠어. 그냥 간단히 싸주면 될 걸"

친구들은 그 말에 까르르 웃었지만 나는 웃고 싶지 않았다.

혜진이처럼 많은 걸 누리며 사는 사람은 나에게 허락되지 않은 닫힌 세계에 대한 열망이 어떤지 절대 모를 것이다.

떡갈비가 없어도 좋고 화려한 칼집이 들어간  과일 디저트는  바라지도 않는다.

 그냥 밥과 반찬 두어 가지 들어있는 누가 봐도 평범한 도시락을 싸서 친구들과 나눠먹고 픈 나의 희망은

3단 도시락 앞에서 참으로 남루하기 짝이 없었다.



어느 비가 오던 날, 혜진이가  뒤로 몸을 돌리며 자신은 배가 아프니 본인 도시락을 먹으라며 라면을 사러 가지 말라고 했다. 나는 반갑기도 했고 싫기도 했다. 비 오는 날 라면을 사면 우산까지 들고 있어서 너무 번거로웠다. 하지만 혜진이 엄마가 딸을 위해 새벽부터 정성 다해 싼 도시락을 내가 먹는 건 아무래도 맘이 편치 않았다. 그래서 딱히 대답하지 않았다.

3교시가 지날 즈음 혜진이가 배가 아프다며 내 책상 가방걸이에 자기 도시락을 걸고 양호실로 가버렸다. 

그래서 나는 어쩔 수 없이 그 도시락을 먹어야만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4교시 종료 종이 울리고 아이들이 삼삼오오 무리 지어 점심을 먹었다. 나도 도시락을 먹으려고 혜진이의 도시락을 들어 책상 위에 올렸다. 분홍 3단 도시락. 왠지 어색했다. 이런 평범한 일상을 원했건만, 정작 그 순간을 누릴 수 있는 상황이 되자 갑자기 너무 눈물이 났다. 왜 그런지 알 수 없었다. 눈물이 나서 밥을 먹고 싶지 않았다.  친구들에게 먼저 먹으라면서 선생님 심부름 핑계를 댔다. 

나는 양호실로 가보았다. 혜진이가 정말 배가 아픈지 궁금했다. 혜진이는 양호실 침대에서 창가 쪽을 바라보며 옆으로 누워 있었다. 아프다고 느껴지지 않았다. 내가 침대에 걸터앉자 혜진이가 깜짝 놀랐다. 

" 밥 먹지 여긴 왜 왔니?"

"너는 왜 아프지도 않으면서 나한테 도시락을 주고 가냐?"


혜진이는 잠시 말을 하지 않았다.  그러더니 나를 쳐다보며

" 너는 그 도시락을 대단하게 생각하지만 나한테는 엄청 부담이다. 우리 아빠가 그렇게까지 지극 정성으로 밥 해서 먹이는데 성적이 왜 그것밖에 안되냐고 해. 너는 나보다 성적 좋잖아. 그니깐 너 먹어라"


그제야 혜진이가 도시락에 대해 퉁명했던 이유를 알았다. 늘 심드렁한 표정으로 밥을 먹는 이유를 알았다.

우린 마주 보고 피식 웃었다. 창 밖에선 비가 주룩주룩 내리고 있었다. 




책방에서 도시락을 먹는다.

내가 좋아하는 밥과 반찬들이 가지런히 들어있다. 집에서 가져온 소박한 한 끼다.


그 날 혜진이에게 차마 말하지 않은 것이 있다.

나는 혜진이의 화려한 도시락이 부러운 게 아니었다.

도시락이  품고 있는 근원에 대한  부러움이었다.

집밥 말이다.

도시락은 집밥의 작은 세계다.

따뜻하고 온기 있다.

나는 그 낯선 세계가 너무나 그립다.

작가의 이전글 벤치 까지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