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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안 Mar 04. 2021

테이블

이야기를  담는.

새 가구는  가급적  원치 않았다.  누군가의 삶 속에 스몄던, 신출내기의 때를 벗은 가구를 놓고 싶었다.

책이 뿜는 센 기운을 감당해줄 수 있는 베테랑 말이다. 책장, 의자, 선반, 책상들 모두  그랬으면 했지만

무엇보다  나의 관심사는 테이블이다.

테이블은  사람들의  다양한  감정, 이를테면  외로움, 슬픈 심연들, 혹은 기쁘거나  행복함  듣고  넉넉히 흡수해 본  경험이 있었으면 했다.

여러 지인에게  사용하던 테이블이 있으면 달라고 했다. 아니면 건너 건너 누군가를 거쳐서라도  나에게 올 수 있도록 부탁했다. 선물로 사주겠다는 제안들은 거절했다. 이런 나의 결기를 이상하게 여기면서도  테이블에 대한 소식들은   간간이 들려왔다. 길고  둥근 것, 작고 높다란 것,  예쁜데 색은 좀 바랜 것. 온갖 모양들에 대한 설명과 함께 사진도  날아들었다. 한눈에 보기에  예쁜 것도 많았다. 그러나 나의 간택을 받을 수 있는 중요 조건은 한 가지였다.


그 테이블이  한 사람의 인생 속에 푹 담겼다가  것인가 였다.  그게 우선이었다.  사이즈나 색상은 차후 문제였다. 얼마 후  내게  전해진  테이블의 사연들은 재밌기도 하고 서글프기도 했다. 아버지가 차를 드시던 테이블인데 돌아가신 후 그리움을 잊기 위해 가져가라고 했다. 백수가 된 걸 부모님이 모르셔서 살 던 집을 줄여 이사 가는데 공간이 없으니 가져가라고 했다.  이민 가서 살다가  한국에 오게 되어 새로 살림을 장만하느라 쓰던 가구를 정리 중이라는 말도 들려왔다. 어떤 이는 그냥 새 걸로 바꾸고 싶어서 이기도 했다.


모두 저마다의 사연으로 그동안 함께 하던 테이블과 이별하기 원했다.  처음에는 사랑받고  지냈을 텐데  사물뿐이라 해도 정든 이와  머물던  곳을 떠나는 것은 아쉬울 것 같다.

동거인의 희로애락을 묵묵히 바라보며 자기 자리를  지켜왔을 것이다. 어쩌면 함께 울고 웃었을지 어찌  알겠는가.  나는 어려서부터 사물에게도 나름의 화학적 파동이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곤 했었다. 그러다가 만화 토이스 토리나  미인과 야수 같은 영화를 본 후로는 정말 그럴 것 같은 마음이 굳어졌다.

이런  조건을 들어 테이블을  선택하려는 것도 그런 이유다.


생각 외로 많은 테이블 후보들이 물망에 올랐다.

사진을 받고 사연을 들은 후  맘이 가는 테이블을 골랐다. 며칠 뒤 책방으로  도착한 테이블의  몸통에는  생활의 흔적들이  눈에 띄었다.  삶이라는 전쟁터에서 얻은 자랑스러운 상처였다.

보기에 거슬리는 정도는 전혀 아니어서 만족했다. 책방에 오시는 분들이 그 흔적을 어찌 생각할지 모를 일이다. 왜  낡은 가구들을 쓰는가 의아해 할 수도 있겠지만  개의치 않는다.

누군가의  인생에 섞여 버무려져 본 테이블만이  이야기들이 사는 책방에  어울린다는 생각을  바꾸고 싶지 않았다.  주변의 염려 어린 시선에도  굴하지 않고 내 뜻을  펼쳐본다.


웃기는 소리 같지만, 테이블들은 이제 나의 팀이다.  나의 스태프다.

그러니  내가  차마  근접하지 못하는  책방 손님들의 내밀한  대화의 안쪽을  받쳐주고, 고여있던 상념들로  앓는 소리가 나면   잠잠히  그들을 응원해주기 바란다. 나아가  가능하다면

너무 깊은 절망의  신음일랑 빨아들여 준다면  참 좋겠다고  생각해본다.


아침 9시 부지런히 책방 문을 열었다.

밤 사이 잘 쉬었는지 책방의 사물들에게 안부를 묻고  오늘도 우리를 찾아 올 누군가를 위해 힘을 모으자고

당부한다. 아무도 나에게 대답하진 않지만 나는 안다. 나와 뜻을 같이 할 것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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