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주안 Apr 12. 2023

그대의 속도는 안녕한가요?

서행구간 책방에 대하여

          

 사람 얼굴이 제각각이듯 인생을 사는 속도도 같을 리 없다. 

하지만 사람들은 세상이 규정해놓은 속도에 맞추려고 노력한다. 쉬지 않고 달려야 자기 자리를 유지할 수 있다고 착각하며 왜 뛰는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습관처럼 사는 듯 느껴진다. 

조금 천천히 살아가도 좋을 텐데 말이다.


책방 이름을 ‘서행구간’으로 지은 것도 이 때문이다. 책을 만나고 읽으면서 잠시나마 느긋한 여유를 즐겼으면 하는 바람에서다. 이름이 책방과 잘 어울린다는 분도 있는 반면, 바쁘게 살아도 모자랄 판에 서행이 웬말이냐는 농 섞인 타박을 듣기도 했다. 

어떤 이는 이런 외곽에서, 그것도 책방을 하다니 용기 있다며 약간의 조롱 섞인 말을 건네기도 했다. 그럼에도 2년 넘게 굳건히 자리를 지킬 수 있었던 건, 뜻을 같이해주는 지역 주민들의 따뜻한 응원과 관심 덕분이라고 자부하고 있다.

      

그 사랑에 보답하는 마음으로 올해도 다양한 행사를 선보였다. 매주 모이는 화요 글쓰기와 주말 독서 모임, 작가와의 만남 외에도 영화감독을 모시고 진행한 독립영화 상영회, 전래동화를 각색한 마당놀이 인형극, 클래식, 국악, 재즈 등 장르를 불문한 음악공연을 월 2회 꾸준히 열었고, 내년 상반기 공연들도 이미 기획을 마쳤다. 뿐만 아니라 각종 문예 대회에 성인, 청소년들과 참가하여 수상했으며, 지난해 이어 얼마 전 다녀온 정선 문학기행은 역시나 인기 최고였다. 책방 안에만 머무르지 않고 문학에 대한 다채로운 접근을 해보고 싶은 나의 결기를 실천하게 되어 개인적으로 기쁘게 생각한다.    

 

무엇보다 뜻깊은 건 11월에 수필 집 “서행구간에 들어왔습니다” 를 정식 발간한 것이다. 

경기콘텐츠 진흥원 프로젝트에 선정돼 화요 글 모임  ‘아무튼, 쓰기’  회원인 동네 주민들과 만든 

소중한 작품이다. 

어느 날 우연히 동네에 생긴 책방에 들어왔다가 필연처럼 삶의 방향성이 달라진 8명의 이야기가 솔직 담백하게 녹아있다. 10대 청소년부터 60대까지 참여하여 주변의 많은 관심을 받았다.


유명 작가가 아닌 우리 이웃의 진솔한 경험이 담긴 만큼 큰 위로와 용기를 얻었다는 인사도 이어졌다. 또한 책 말미에는 퇴촌에서 혼자 조용히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자연 산책로를 사진과 함께 소개해 두었다. 퇴촌을 좋아하는 분들에게 작지만 확실한 힐링 장소로 사랑받을 듯하다. 우리가 사는 지역의 아름다움을 알리고자 미력한 힘을 보탰다.


곧 출간 기념회를 앞두고 있어 새내기 작가들의 얼굴엔 설렘이 역력하다. 2022년 봄부터 여름을 지나 가을까지 이들이 흘린 땀과 눈물은 결코 가볍지 않다. 그들 삶에 또 하나의 중요한 동력이 되길 진심으로 바라는 마음이 크다. 앞으로도 기회가 닿는 대로 다양한 장르의 출판을 기획하여 동네 주민들과 함께 만들어 보고 싶은 희망을 품는다.     

그런가 하면 일상의 서행을 원하는 분들의 발걸음도 부쩍 잦아졌다. 살아가면서 생긴 상처로 금이 가버린 마음을 위로받고 싶어 조심스레 찾아온다. 먹먹한 가슴에서 쏟아져나온 사연을 들으며 함께 흘린 눈물이 책방에 켜켜이 쌓였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타인의 아픈 속내를 듣는 것이 결코 간단한 일은 아니지만 이들이 서행구간이라는 통로를 이용해 잠시라도 쉼을 누리게 되어 감사하게 여긴다. 


 내가 책방의 정체성과 의미를 끊임없이 고민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단순히 책을 팔고 사는 물리적 공간을 넘어 사람과 사람을 잇고, 자기 성찰과 인간적인 신뢰가 쌓이며, 안도와 평안이 존재하는 곳. 그것이 어쩌면 이 시대가 요구하는 동네 책방의 변함없는 모습이 아닌가 싶다.     

나 역시 15세부터 동네 책방을 즐겨 다녔다. 책을 읽는 것도 좋았지만 책방이라는 공간이 주는 아늑하고 묵직한 서정에 매료되었다고 추억한다. 그 안에서는 속도 경쟁에 끌려다니지 않고 모든 것이 느리게 돌아간 듯한 아련함이 내 안 곳곳에 남아있다. 


서행구간이 오래도록 그랬으면 좋겠다. 

모든 동네 책방이 그랬으면 좋겠다.  

설령 세상 가치관에 역행하는 공간이라고 놀림 받을지언정, 구닥다리 아날로그 감성팔이라고 쓴소리를 들을지언정. 책을 통해 사람을 품고, 사람을 환대하는 최후의 보루로 끝까지 남기를 간절히,  나는 소망한다.     

오늘도 책방을 스치며 바쁜 걸음을 옯기는 이들에게 묻고 싶다. 


그대의 속도는 안녕한가요?      


   




* 2022년  <행복한 아침독서> 가을호  청탁 원고   

작가의 이전글 안나푸르나로 가는 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