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10. 조금 전에 첫 가게를 오픈했던 시점에 근처에 파리바게트가 생기기 시작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얘기를 듣고 너무 안타까웠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표님은 요즘도 파리바게트 도넛을 자주 사 드신다고요?
제 입맛에 딱 맞아요.
Q11. 공장에서 대량 생산해 내서 맞춘 가격과 커피 음료까지 갖추고 골목으로 밀고 들어오는 프랜차이즈 베이커리를 보면 불공정한 게임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진 않으시나요?
제가 회사 생활을 한 경험이 그런 쪽을 이해하는 데에는 또 도움이 돼요.
기업이라는 건 생리적으로 반드시 플러스가 나야 되거든요. 영업적으로 봤을 때 부가가치를 만든다는 건 당연히 그들이 해야 되는 일인 거예요.
사실 몇 년 전에 한 언론사에서 대기업이 골목상권을 침해한다는 이슈로 인터뷰를 해 간 적이 있는데 그때 이렇게 말했어요. 이건 돈 많은 기업이 불쌍한 자영업자들을 몰아내는 문제로만 볼 일은 아니라고요.
빵을 만들어 판다는 건, 누가 더 위생적으로 더 맛있는 빵을 만드느냐 하는 문제예요.
우리나라 커피 역사를 얘기할 때 스타벅스를 빼놓을 수가 없는 이유가 맛의 기준을 하나 세운 거거든요.
스타벅스를 넘어서기 위해서 많은 브랜드들이 자기만의 스페셜티라는 걸 개발했어요.
돈 많은 기업이 골목에 들어와 큰 가게 세우니까 어렵게 장사하는 사람들이 망하는 게 아니에요. 들어가서 팩트를 보면 망한 가게에서 만든 빵이 맛이 없었던 거예요. 서비스도 엉망이고요. 소비자들 입장에서는 깔끔하고 가격도 적당하고 맛있는 파리바게트에 가는 건 당연한 일이에요. 그때 이런 이야기를 했다가 댓글이 한 3천 개쯤 달렸던 것 같아요. 상황을 왜곡한다고요 (웃음)
전 지금도 프랜차이즈 빵집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왜냐면 기준이 높아진다는 건 좋은 현상이거든요.
예전에는 대충 만들어도 빵집들이 다 돈을 벌었어요. 근데 그 사람들도 자기가 만든 빵은 절대 안 먹거든요.
상권을 뺏었다는 건 밀려나간 사람들의 변이 될 수는 있겠지만 해법이 될 수는 없어요.
Q12. 동네 빵집도 좋은 품질의 빵으로 승부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시군요. 결국 업의 본질에 충실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결론이네요.
누군가가 먹는 음식을 다루는 사람이라면 그것에 대한 높은 기준을 세우고 거기에 도달하려는 노력을 해야 돼요.
어떤 일이든 30년 공력이 있다면 충분히 맛있게 제대로 만들 수 있거든요.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는 거죠. 공장 빵은 부산에서 먹든 서울에서 먹든 맛이 똑같아요. 개인 빵집에서도 일정한 퀄리티를 낼 수 있도록 노력을 해야죠. 공장에서 만든 빵이라고 비하할 일도 아니고, 어제 만든 빵 하고 오늘 만든 빵 하고 만드는 빵마다 맛이 다른 걸 그냥 '핸드메이드'라고 감성적으로 포장해서 비싸게 팔 일도 아니지요.
완벽할 수는 없겠지만 따라가려는 노력이 분명히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Q13. <오월의 종>에서는 포장이나 계산을 하는 직원들도 모두 제빵사라고 들었습니다. 손님들을 응대하는 파트까지 꼭 제빵사들이 맡아야 하는 이유가 있습니까?
손님들 입장에서 보면 저희 가게에 좀 이상한 빵들이 많거든요. 그러면 빵을 고르다가 질문도 많이 하게 되죠. 어떤 재료를 썼는지, 어떤 방법으로 만들었는지 이런 걸 물어보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빵을 만들어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그런 질문에 대답하기가 좀 어렵죠. 저희가 만든 빵에 대한 정보를 손님들께 정확하게 전달하는 것도 중요한 책임 중에 하나라고 생각해요.
Chapter3. 나의 길을 찾는다는 것
Q14. 어떤 기준으로 직원을 뽑으시는지 궁금합니다. 제빵사가 되기 위해 꼭 가지고 있어야 할 자질, 이런 게 있을까요?
지금은 면접 시간이 좀 줄어들었지만 몇 년 전에는 면접을 세 시간씩 봤어요. 오래 함께 가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으니까요. 그런데 요즘은 사회적인 분위기가 많이 달라져서요, 그냥 우리가 가지고 있는 룰을 이야기하고 할 수 있겠느냐고 물어보는 정도지요.
빵 사러 오시는 젊은 분들이 가끔 이런 질문을 해요.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나한테 맞는 건지 모르겠다. 제빵에 관심이 많은데 이 일은 어떠냐'구요.
그럼 저는 이렇게 얘기해 주죠.
빵을 좋아하는 건지, 빵을 만드는 걸 좋아하는 건지, 빵 먹는 걸 좋아하는 건지 먼저 생각해 보고
그다음에 본인이 이 일을 할 수 있는지 그냥 좋아하는 건지 스스로에게 물어보라고요.
Q15. 젊은 시절에는 누구나 자신의 길에 대한 확신이 없으니까요.
대표님의 경우처럼 젊은 세대들이 자신의 길을 찾을 수 있는 팁 같은 게 혹시 있을까요?
팁이요? 없어. 그걸 어떻게 알아요? 나도 처음엔 몰랐어.
근데 사실은 본인들의 호주머니 안에 열쇠가 들어있어요. 그런데 어디 있는지 못 찾는 것뿐이죠.
Q16. 사람들은 왜 자기 주머니에 있는 열쇠를 보지 못하는 걸까요?
너무 성실하게 살아서 그런 것 같아요.
어떤 단계를 밟아 코스대로 성실하게 쫓아가다 보면 다음엔 저기로 가면 되겠네 하고 정답처럼 보이는 길들이 나와요. 그럼 다른 길들은 지워져 버리거든요. 그러다 보면 자기는 잘 산다고 생각해도 그 사이에 세상 보는 눈은 굉장히 좁아져 있어요. 어떤 면으로 보면 행복한 거죠. 다른 길을 찾지 않아도 될 만큼 문제가 없다는 거니까요.
그런데 훗날 뒤돌아보면 내가 왜 그걸 못 봤지?라고 생각할 수도 있어요.
저를 찾아오는 친구들이 보통 그런 케이스들이에요.
제가 '너는 빵이 아닌 거 같은데 다른 걸 좀 해봐' 그러면 '못 찾겠어요' 이렇게 말하는 거죠.
근데 참 엉뚱한 대답 같지만, 지금부터 찾으면 돼요.
본인은 헤맨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자신이 찾아야 할 길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좋은 출발이라고 생각해요.
어느 쪽으로 가든 힘든 일이 9개이고 좋은 일은 1개예요.
Q17. 대표님도 그런 시기들이 있으셨죠? 주머니 안의 열쇠들이 안 보이는.
저도 빵으로 넘어올 때는 정말 정말 힘들었어요.
그런 걸 찾지 않을 때는 전 그냥 행복한 사람이었어요. 그때는 제가 맡고 있는 역할이 회사돈으로 술 먹고 룸살롱 다니는 거였어요. 건설 쪽 영업은 좀 되게 독해요. 북창동에 공무원들하고 가는 단골 술집이 있었는데,
"오늘 몇 명 갑니다. 메인은 누구고 대략 얼마 정도 쓸 거예요"라고 하면 거기에 맞춰줄 정도로요.
그런데 어느 순간 본능적으로 그런 사람들, 그런 생활에서 멀리 달아나고 싶더라고요. 그렇지 않으면 그냥 죽을 것 같은 느낌에 급하게 뛰쳐나왔어요.
Q18. 그만 성실하기로 하신 거네요, 그때.
남들 살아가는 걸 쫓아가는 게 성공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사는 게 왜 이렇게 답답하지?'라는 생각이 멈추질 않는 거예요. 그래서 일단 뛰쳐나왔는데 그때부터 또 새로운 고민이 시작되더라고요. 빵을 처음 해보니까. 장사라는 것도 처음 해 보고. 그래도 그때부터는 '이 정도는 감수해야 된다'는 약간의 인내심이 생겼어요. 예전에는 '어떤 일을 하느냐'에 신경을 많이 썼다면 이젠 '어떤 시간을 보내느냐'가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또 앞으로 언제까지는 힘들겠구나 하는 예측하는 힘도 생겼고요.
그전에는 나쁜 일이 생기면 도대체 나한테 왜 이런 일이 생겼지라고 놀라다가 결국 남 탓하고 그랬어요.
Q19. 그렇게 힘든 과정을 거쳐서 자기 길을 새로 찾으셨고 지금에 이르렀습니다. 그래도 여전히 힘든 일이 9개고 좋은 일은 1개인가요?
'제발, 아무 일도 없었으면 좋겠다.' 이게 하루의 소망이죠(웃음). 근데 예전에는 그런 걸 굉장히 민감하게 생각했다면 지금은 재밌는 거예요. 설사 손님하고 막 삿대질을 하고 싸우고 집어던지고 이런 일이 일어난다 하더라도요.
Q20. 만약 '25년 전 30대의 내가 빵을 만들지 않고 그 회사에 계속 다녔더라다면 지금쯤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이런 생각해본 신 적 있으신가요?
아마 알코올 중독자가 돼 있거나 요양원에 들어가 있을 거예요. 그때 빵을 시작한 게 정말 다행이었죠. 물론 제가 능력 있었더라면 그런 회사에서도 행복했겠지만요.
Q21. 빵을 만들지 않는 시간에는 무슨 일을 하면서 지내세요?
그림 그려요. 그렇지 않으면 아무것도 안 하고 멍하니 앉아 있고요. 저는 그런 시간이 너무 좋아요.
정웅 대표의 사무실 벽에는 직접 그린 그림들이 걸려있었다. 매일 굽는 빵과 바쁜 공장의 풍경을 펜으로 그린 스케치들이었다. 그는 원래 미대진학을 원했지만 아버지의 반대에 꿈을 접었다고 했다. 그런데 지금은 그때 미대 진학을 말린 아버지에게 감사하다며 아마 미술을 전공했더라면 지금까지 이렇게 즐기며 그림을 그리지는 못했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그는 첫 가게를 연 이후 오지 않는 손님을 하염없이 기다리며 자신이 만든 빵을 스케치하고 레시피를 정리해왔다고 했다. 그림과 숫자로 꼼꼼히 기록된 그의 레시피는 마치 건물의 설계도처럼 정교하고 아름답다. 그가 통과한 시간의 밀도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이 레시피들은 지금 천안의 '아라리오' 갤러리에서 특별전으로 공개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