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가 이름을 기억해준다면 영원하다고 하지 않았던가.
최근에 친구를 따라 한 아이돌의 콘서트에 다녀왔다. 그녀의 최애는 전역 후 한 달이 채 되지 않아 합류한 멤버였는데, 함성 속에서 '어서 와'라는 말이 가장 듣고 싶었다던 그를 보면서, 어쩌면 나도 겪어본 적 있는 감각에 대해 생각했다. 세상에서 멀어지는, 잊혀지는 감각.
약 4년 전 이야기를 안 할 수 없는데, 내가 주변인들에게 우스갯소리로 '군대 갔다왔을 때'라고 말하곤 하는 팬데믹 시대의 이야기다. 내가 8개월 남짓을 보낸 경기도 구석의 기숙학원은 본래 일주일에 한 번, 10분의 유선 전화. 그리고 한 달에 1번 외출이 허락되는 곳이었지만, 그 해 갑자기 유행한 코로나 탓에 전례 없이 5개월을 갇혀 있게 되었다. 그 후 다시 외출이 허용되기는 했지만, 시험이 얼마 안 남은 시점에 나가봐야 뭐하나, 싶어서 3개월은 자진해서 갇혔고. 무슨 좀비물 같았는데.
강제로 나라에 부름에 응해야 하는 '입대'와 온전히 나의 다짐으로 결정된 '입소'는 사뭇 차이가 있겠으나, 둘의 공통점이 있다면 '아무도 나를 기억하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한 체감일 테다. 1년도 채 되지 않은 기간을 학원에서 보내고 나왔을 땐, 내가 이해하고 있었다고 생각한 친구들의 모습이 가치관부터 사소한 생활까지 많이 달라져 있었다. 게다가 나는 알지 못하는 시간에 벌어진 일들에 대한 대화에 낄 수 있을리가. 수험이란 게 그렇듯 입소에 대해 굳이 설명하지 않았던 사람들과의 관계는 모두 끊겨 연락하기 껄끄러워졌고, 당연히 학원 안에서의 네트워크도 사라졌다. 한마디로 맺고 있던 거의 모든 관계가 사라진 셈이었다.
이런 전사가 있으니, 영원을 바라는 듯 무대 위에 서 있는 마음들이 더 신경 쓰였는지도 모르겠다. 어떤 마음들은 내가 미처 무슨 수를 써볼 틈도 없이 떠나버린다는 걸 너무 잘 아니까. 하물며 끊어진 마음들을 함부로 이어붙일 수 없는 직업이라면 더더욱 그렇겠지. 그러니 그들에게 향하는 애정들이 되도록 오래 멈춰있기를 바란다고, 객석에 앉아 혼자 유난스러운 생각을 했더란다.
어떤 관계는 시작과 동시에 헤어질 결심까지 함께 해야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누군가가 이름을 기억해준다면 영원하다고 하지 않았던가. 공연장을 나오면서, 앞으로도 행복하자고 말하는 그들이 즐겁게 고생하기를 바랐고, 그들의 신보 타이틀처럼 오래오래 기억되기를 기원했다. 특별한 이유도 접점도 없는 누군가의 응원이 조금이라도 닿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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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떨기 04. 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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