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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기떨기 Nov 30. 2024

69. 일기떨기: 지원의 밀린일기

아무도 너를 100% 알지 못하고, 엄마도 너를 100% 알지 못하지만




카카오톡의 친구 목록을 내리다가, 몇 년 전 과외로 만났던 친구의 프로필을 발견했다. 내가 과외할 당시만 해도 중학생이었던 그 친구의 사진 위엔 디데이 위젯이 살포시 올라와 있었는데, 플러스로 넘어간 디데이가 수능이었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와!” 하고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그 이유엔 시간이 빠르게 흘렀다는 것도 있었지만, 내가 첫 과외 선생님이었다던 이 친구가 누군가의 처음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이 놀라워서였다. 이 친구 앞에 놓인 처음이 스스로에게도, 타인에게도 얼마나 많을까. 그때의 나처럼 누군가의 선생님이 될 수도 있을 거고, 또래의 첫 대학 동기, 첫 후배 등등. 거기다 이 계절에, 그 친구처럼 처음들을 맞이하는 학생들은 또 얼마나 많을까.


 대리 설렘을 느끼다 보니 살짝 의미 부여를 하고 싶어졌다. 수능이라는 게 꼭 임해야 하는 길이 아닐지도 모르고, 이 시험이 사회에서 갖는 의미들을 부정할 수는 없지만, 매년 그렇듯 또다른 시작을 준비하는 마음이 모이는 시기이기는 하니까. ‘만인에게 처음이 쉬운 시즌‘이라는 느낌으로 말이다.


 그렇게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집으로 전화를 걸었다. 서울에서 부모님을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 했던 대화가, ‘주어진 일 이외의 무엇을 하려고 하면 힘들지 않냐‘는 것이어서 내심 신경이 쓰인 탓이었다. 시간이 갈수록 삶의 테두리 밖으로 나가기 어려워지는 부모님에게 딸이 찾아다니는 ’처음‘은 완벽하게 이해하기는 어려운 것들이라, 무언가 뜻대로 되지 않아도 내가 실망하지 않고 다음 처음을 찾으러 나선다는 사실을 설득하기가 더 힘들다는 말을 한번쯤 해야 했는데.. 그게 지금 같았다. 가만히 이야기를 듣던 엄마가 꺼낸 답은 이런저런 것들이 있었지만, 그중 가장 좋았던 건 믿는다는 응원에 붙인 한 가지 가정이었다.


 "아무도 너를 100% 알지 못하고, 엄마도 너를 100% 알지 못하지만." 


 모두에게 나를 설명할 이유가 없다고 느끼는 요즘이라, 나도 가족에게, 친구에게, 멀리 떨어져 있는 누군가에게 늘 처음일 수 있다는 말이 어쩐지 기쁘고 설렜다. 엄마가 거쳐온 수많은 ‘처음’ 들 중에, 나의 처음을 응원하는 순간이 제일 커다란 의미를 가진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니까 계절과 시기를 일종의 발판으로 삼아, 나와 엄마의 처음을 많이 만들어야지. 




더 자세한 이야기는: https://podbbang.page.link/N3KgWN9A42RCnsLw6


일기떨기 04. 지원

  일기떨기 인스타: https://www.instagram.com/illki_ddeolk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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