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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늘평화 Dec 24. 2015

사람이 사람을 사람하다. 열하루

눈나무

  나무 한 그루가 1 kg의 눈을 짊어지고 있다.  

검은 귀마개, 검은 점퍼, 검은 바지, 검은 신발로 도시를 걷는 동안 12월의 검은 겨울 밤 도화지에 쇠라의 붓 끝인 양 흰 점들이 점점이 채워진다.



 점들은 가벼운 무게가 되어, 앙상한 가지에 캐몽을 입혔다. 저벅이는 발자국 소리가 냉장고에서 갓 꺼낸 귤을 입안에 터뜨릴 때처럼 상쾌하다.


겨울 밤은 원래 조용하고 착한데, 이 눈은 스튜어디스의 기내 웃음처럼 짠~한 스트레스일까? 아니면 메마르고 우울한 가지로 가득 찬 겨울 밤에 이 눈은 세상을 포근하게 하는 축복일까?


 어쩌면 내가 말하고 행동하는 것은 타인에게 지금 내리는 눈과 같을지 모르겠다. 누구에게 잠깐의 위안을 주었을 수도 있고, 아마 대부분이겠지만 직업적인 웃음의 가면으로 부담되는 비난을 아슬아슬 비껴갔을 수도 있다.

 눈은 스스로 누군가에게 스트레스일지 축복일지 알고 내리진 않을 것이다. 그저 구름이 너무 비좁아서 밀려 나오거나 뛰쳐나왔을 뿐..  

 

 내일 외래로 찾아올 사람들에게 이 눈과 같은 눈빛과 말투를 전했으면 좋겠다. 그들의 희로애락에 휘둘리지 않고 그저 머리와 가슴속에서 밀려나오는 나를 담담히 쏟아 내리게 하고 싶다.


 "선생님 고마워요"  

 술기운 머금은 입김을 불어가며 택시까지 우산을 씌워주었던 동료가 말했다.

 그래도 나는 사람 사이에 살고 있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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