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고 병들고 사람하다.
"밥이야 잘 먹지......"
양쪽 눈꼬리를 내리는 미소에, 주름진 얼굴을 새색시처럼 살짝 붉히며 아흔의 할머니가 대답하셨다.
"할머니, 언제 퇴원하는지 선생님한테 물어봐야지요.."
옆 침대의 아주머니가 한마디 거든다.
그러고 보면 할머니는 한번도 물어보시지 않았다. 무슨 병인지, 어떻게 되는지, 소변 줄이나 양쪽 옆구리에 박힌 줄 같은 것은 뺄 수나 있는지에 대해서도 그랬다. 날 때부터 이 모든 플라스틱 의료기구를 지니고 있었던 것처럼 잔잔한 눈빛으로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다.
"인제 소변에서 피가 안 나오게 해 드렸으니깐 밥을 꼬박꼬박 잘 드시면 퇴원시켜 드릴께요." 애꿎은 밥 핑계를 대며 서둘러 병실을 나왔을 때, 미처 말리지 못한 머리칼을 수건으로 감싼 손녀가 급히 따라나 왔다.
"수술한 조직 검사는......많이 늦었나요?"
손녀의 질문에 이런저런 설명을 하다가 넌지시 물었다.
"할머니는 어디까지 아시나요?"
"웬만큼은 다 아실 거에요"
꽤나 고왔을 젊을 때의 할머니를 닮은 손녀가 담담하게 말했다.
암 덩어리나 죽음 같은 것은 한시 뒤에 두 시가 되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느끼는 조손이었다.
오늘은 빨리 퇴근 했다. 늘 가는 길이 아니라, 조금 돌아가는, 캠퍼스를 가로지르는 길로 갔다. 차창을 모두 열자 차가운 겨울이 얼굴에 부딪혀 청명한 소리를 내며 고운 유리조각으로 깨진다. 그 조각들은 피부 아래 깊숙이 스며들어 모세혈관 에서부터 대정맥 대동맥까지 이 하늘만큼 싱싱하게 한다.
겨울방학의 젊은 대학생들이 큰 나무 아래 벤치에서 아르바이트와 민주주의에 대해 얘기하는 소리가 페이드 아웃 될 때쯤 다시 창을 닫고 기어를 주행으로 하였다.
운전하는 사람은 약관도 아니고 아흔도 아니다. 초월하지도 않았고 속되지도 않았다. 그저 아주 느린 차를 몰면서 지나가는 광경을 바라보기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