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기관에 6년 차 근무 중에 있다.
우리 회사는 남들에게 말하면 다 알만한 그런 큰 공공기관은 아니다.
이렇게 대국민 인지도가 낮다 보니 초반에는 기관에 대해 불만이 많았다. 친구들에게 이런 하소연을 하면,
"야 그래도 공공기관이자나, 안정적인 직장이네. 짤릴걱정은 없잖아"
라는 답이 왔다.
정년까지는 잘릴 일 없으니 맞는 말이긴 한데, 공공기관에서 연차가 쌓이며 나는 점차 이 말에 공감되지는 않았다. 고용의 안정성이 보장되는 것은 사실이나, '안정적인'라는 말이 마냥 그렇게 맞다고 보기는 어려웠기 때문이다. 공공인들에게는 공감받지 못할 수는 있지만 왜 그렇게 보는지 나름의 생각을 풀어보고자 한다.
공공기관은 어떤 조직인가. 정부의 출연출자 또는 재정지원을 받아 설립 운영되는 기관으로서 기획재정부 장관이 매년 지정한 기관을 의미한다. 즉 정부의 출연 또는 재정지원을 통해 운영되는 기관을 '공공기관'이라고 한다. 2023년 기준 347개로 지정되어 있으며, 매년 들쭉날쭉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증가하는 추세이다.
공공기관은 국민의 삶의 질향상과 국가발전에 있어 꼭 필요한 공공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생활에서도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으며, 서비스를 받을 때는 몰랐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면 공공기관인 경우들도 많이 있다. 예를 들어 코레일(교통), 건강보험공단(보건), LH(주택), 기업은행(금융) 등이다.
공공기관과 사기업의 가장 큰 차이점이 무엇이냐라고 물을 때, 나는 '공익성'을 말한다. 일반기업(주식회사만 다루기로 하자)은 수익창출이 우선이지만, 공공기관에게 수익성이 1순위가 아니다. 물론 재정의 건전성이나 수익성도 고려해야 하지만, 추구하는 가치에 있어서는 공공복리, 국가산업발전 등 '공익성'이 우선된다.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서론은 이 정도로 그만하고, 왜 공공기관이 안정적이지 않다고 생각하는지 말해보겠다. 일단 '안정적인'이라는 말에 제한을 두기 위해 단어 하나를 덧붙이면, '안정적인 소득'이라고 말하고 싶다. 즉 공공기관의 안정성은 모든 것에 대한 안정성이 아닌 '소득이 안정적이다'가 적절한 표현이다.
소득이 안정적으로 보장된다는 것은 월급쟁이로서 큰 매리트이다. "회사를 다니는데 소득이 안정적이면 다른 뭐가 문제이지?"라고도 생각할 수 있다. 다만 내가 생각하는 근본적인 문제점은 이렇게 소득이 안정적으로 보장된다는 이유만으로 경영 관점에서는 중요한 것들이 배제되고 있다는 것이다.
우선적으로 직원에 대한 보상이 후순위로 치부되고 있다. 공공기관은 일단 성과에 따라 보상해 주는 조직이 아니다. 다만 이 부분은 열심히 하는 직원에게는 단점으로 작용할 수 있지만, 안정적인 직장을 선호하는 직원에게는 장점으로 작용되기에 근본적인 문제점에서는 배제하기로 한다.
이보다는 직원 연봉인상률이 낮다는 것이 더 큰 문제라고 본다. 공공기관 월급인상은 공무원 인상률을 준용하여 인상된다. 지난 3년간의 총 인건비 인상률을 매년 1.5%~2.5%가량 측정되었고, 그 사이에 최저임금은 15%가량 상승 하였다(2018년 7530원, 2021년 8720원). 최근 높은 물가인상률로 최저임금이 급격히 오르다 보니, 연봉표가 낮은 기관은 신입직원 1호봉(기본급)이 최저임금에 근접한 수준까지 온 기업도 있다.
그런데 이러한 문제가 있다고 해서 급여를 급격하게 올리기도 어렵다. 공공기관은 매년 총 인건비 가이드라인에 따라 인건비가 관리되기에, 인상률에 맞춰 기본급을 올릴 수 있다. 예산도 제한적이며 올릴 수 있는 폭도 제한적이다. 그러다 보니 높은 경쟁률을 뚫고 공공기관에 왔지만 월급을 받고 고민하는 신입직원들도 많다.
100:1 정도 되는 공공기관의 높은 문턱을 넘어가기 위해 학생들은 대학교 때부터 어학, 자격증, 자소서, 면접 등에 많은 비용을 투자한다. 그런데 이렇게 합격한 신입직원들이 마주하는 급여는 월 200~250 사이로, 현재 물가를 고려하면 노력에 따른 보상이라라고 보기에는 그리 좋은 수준은 아니다. 그리고 매년인상률도 낮다.
이 정도도 어디야라고 볼 수 있지만, 아래 문제점을 생각하면 이 문제점이 더 크게 다가올 수 있다.
두 번째는 낮은 성장성이다. 공공기관 성장성은 국가관점에서도 필요하지만 직원들에게도 중요하다. 월급이 더디게 오르더라도, 조직이 성장하고 있다면 본인이 조직 내에서 갈 수 있는 길이 더 많아지기 때문이다(승진 등). 하지만 나는 공공기관의 성장성에 대해서는 조금 회의적인 입장이다.
단순히 현 정권의 공공기관 정책 측면에서만 문제점을 보는 것은 아니다. 외부환경적인 측면에서 보면 국가산업이 발전할수록 사회곳곳에는 사회서비스, 돌봄, 정책지원이 필요한 곳들이 많아지고 있지만, 이제는 이 문제를 정부와 공공기관만이 풀어가는 것이 아니라 민간에서도 많은 노력과 투자를 하고 있다.
이제는 일반기업들도 수익성만 추구하는 것이 아닌, 사회문제해결, 환경, 안정, 고용, 동반상생 등 여러 사회적 가치를 함께 추구한다. 이는 글로벌 투자관점에서 ESG라는 키워드가 화두가 되면서, 기업들도 생존과 투자유치를 위해 사회문제에 관심을 더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뭐가 문제인가라고 볼 수도 있지만, 가끔 현장에서 공공기관보다 '현대', 'SK'에서 지원하는 사업에 투자받는 것이 기업운영이 더 필요하다는 말을 듣는다. 이제 공공기관이 '공공복리' 측면에서 해오던 사업들이 독점이 아니라 더 많은 예산과 경쟁력을 가진 기업들과 경쟁하는 것인가 싶은 생각이 든다.
물론 그럼에도 공공기관이 있어야 할 자리, 필요한 역할은 분명 있을 것이다. 이 역할이 쉽게 대체되거나 사라지지는 않는다. 다만 공공기관이 성장해야 하는 측면에서는 위기다. 앞으로 기관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정부로부터 예산, 직제, 정원을 늘리기 위해, 좀 더 많은 노력과 국민들로부터 공감대가 필요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나는 이 부분이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한다. 바로 관리자들의 인식이다. 현재 공공기관에서 관리자로 있는 사람들, 그리고 2~3년에 한 번씩 바뀌어오는 기관장들은 위에서 말한 문제점들을 우선순위를 두고 중요하다고 인식하지 않는다고 본다.
공공기관의 특성상 인적자원을 조직운영측면에서 크게 중요한 요인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사기업의 경우 인적자원이 곧 경쟁력이다라고 할 만큼, 인재육성과 보상이 중요하다. 똑똑한 소수가 기업을 살릴 만큼 글로벌 기업으로 갈수록 인재채용과 육성에 대한 돈을 아끼지 않는다.
하지만 공공기관은 똑똑한 소수의 인재보다는, 기관의 우호적인 소수의 정부의 관료들이 더 중요하다. 기관에 예산, 인력, 직제 다 정부의 관료의 입김에 따라 좌우될 수 있으니까, 시장으로 평가받는 것이 아니라 정부로부터 평가받는 구조이다 보니, 똑똑한 인재보다는 정부의 내편하나가 더 중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앞에서는 직원들을 우선시한다고 생각하지만, 직원을 복지, 임금, 지원제도 등을 유지하지는 못할망정, 정부의 눈치를 보며 점차 후퇴하는 경우가 많다. 외부에서는 "방만경영이다. 황제복지다"라고 하지만 그런 기관들도 일부 공기업, 금융기업에 대한 부분이지 전체 공공기관이 그렇지 않다. 오히려 대부분의 공공기관은 이런 인식으로 인해 같이 터지며 없던 복리후생과 지원제도도 사라지고 있다.
이런 구조속에서 직원들이 회사에 로열티를 가지고 본인의 노력과 시간을 더 쏟으며 조직에 기여하려고 할까 싶다. 딱 적당히, 정부평가에서 크게 지적받지 않을 정도의 업무, 윗 상사 맞추기, 올해 챙겨야 하는 업무와 시늉, 그리고 주변동료와 적절한 관계만 유지되면 매달 따박따박 월급이 나오는데 말이다.
관리자들의 관심이 그 정도라면 직원들이 할 수 있는 기여도 딱 그 정도인 것이다.
딱 그 정도만 한 월급과 그 정도만 한 기여
그러면 공공기관을 가지 말라는 것인가? 안 좋은 곳인가?
절대 그렇지 않다.
공공기관 다니며 일하고, 또 공공기관 취업준비를 도와주는 멘토로서 이런 말을 하는 것도 모순이다.
나는 단지 이러한 현실에 있어 조금 더 사람들이 알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관리자들은 경영을 하며 직원을 너무 후순위로 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정부 관료, 정책결정권자와의 관계도 중요하지만, 조직의 수장으로서 직원들의 고충과 어려움을 생각하는 관리자, 기관장들이 나와야 진정한 '안정성'이 보장된다
그리고 공공기관을 다니는 직원들은 좀 더 능동적인 사고로 움직였으면 좋겠다. '소득의 안정성'은 물가와 시대에 따라 변한다. 이미 젊은 직원들은 월급이 턱없이 부족하다고 느낀다. 조직을 위해서라도 좀 더 젊은 직원들의 목소리를 듣고 같이 관리자와 정부에게 목소리를 냈으면 좋겠다.
그리고 공공기관을 준비하는 친구들에게는 이러한 현실도 있다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다. 모든 공공기관이 다이런 것은 아니다. 알짜배기회사도 있고, 직원을 우선시 생각하는 조직, 성과에 따라 보상을 주는 조직도 있다. 다만 공공기관 취업이라는 것이 내가 원한 모든 '안정성'을 보장해주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다.
안정성에 대해 길게 설명했는데, 개인마다 기준이 다를 것이라 마냥 공감받기는 어려울 것으로 본다. 공공기관을 다니는 직원으로서 내 직장이, 나아가 공공영역에서 일하는 것이 좀 더 자부심 있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글을 마친다. 혹여나 맘에 안 드는 말이 있더라도 좀 더 너그러운 말로 피드백주시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