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결되지 못할 것에 대해 이야기 나누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만약, 같은 문제를 3번 이상 나에게 말한다면 약 95%의 확률로 "그만 얘기해. 나 너무 스트레스받아"라고 듣게 된다. 해결되지 않는 문제가 있다면 해결해야 하고, 말 못 하는 게 있다면 어떻게든 말을 붙여볼 수 있도록 한다-가 내 성격. 그렇기에 해결에 중점을 두기보다 공감과 정서 안정에 중점을 두고 이야기를 시작하려고 하는 사람은 나에게 조금 버겁게 느껴진다. 우선 그 사람의 감정을 내가 받아들여야 하니까.
사람의 감정을 받아들이는 건 힘들다. 내가 그 순간으로 들어가는 기분이라서 썩 유쾌하지 않다. 만약 업무에서라면 풀 수 있는 경우가 많은데(조언을 얻기 위한 고민 상담이 많기 때문일지도?) 그게 사람과의 관계라면 풀기 힘든 경우가 많다. 꽤나 컴플렉스하기 때문에 조금은 오랜 시간이 걸리거나 한 다리를 건너서 풀어야 하기도 하고 간접적으로 문제를 해결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또한 내가 문제는 풀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라는 변태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기에 그런 걸지도 모르겠다.
맞다. 사람과의 관계에서는 논리가 작동하기 힘든 경우가 많기 때문에 힘들다. 논리로는 풀 수 없는 것이 분명 있다. 아니, 논리적으로 풀 수 있어도 감정이 커지다 보면 그게 힘들다. 게다가 업무 스트레스가 함께 오면 더 답이 없어진다. 최근에 내가 이랬었다. 나는 문제를 푸는 걸 좋아하는 사람. 하지만 감정과 함께 뒤섞이니 받아들이기가 힘들고 위가 아주 따끔따끔 아프고 잠에도 들지 못하는 상황이 있었다. 작년 12월부터 생긴 문제가 1월 말에 와서 빵 터졌는데, 이게 아주 부정적인 에너지로 가득 찼던 터라 몸이 견디지를 못했다.
이때 내가 위에서 이야기한, 그 스트레스를 주는 사람이 됐었다. 이 감정을 풀고 싶은데 어떻게 풀어야 할지 모르겠고, 정말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는 요상한 상태에 놓여있었다. 누군가에게 말을 해서 풀고 싶은데, 내가 이상한 사람처럼 보일까 봐, 열등감에 가득 찬 사람으로 보일까 봐 지레 겁을 먹었다. 문제를 보면 풀어야 한다고 했으면서, 감정을 말하면 스트레스받는다면서 내가 그런 사람이 됐었다. 그리고 이 감정을 누군가에게 풀고 싶은- 내가 싫어한다고 했으면서 그런 행동을 하고 싶어 하는 파렴치한 사람이 됐다.
그 무렵 주위에 얼마나 부정적인 에너지를 뿜고 다녔는가! 문득 예민해지는 감정은 고스란히 업무에서 드러났고 그 모습을 느끼는 나도 스트레스를 받고, 아주 악순환의 고리를 완성해가던 무렵- 더 이상은 이러면 안 되겠다!라고 생각하고 충동적으로 회사 분과 상담을 잡았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우선 말이라도 붙여보자라는 심정으로. 말을 붙이기 무섭게 그날 함께 점심을 먹자는 제안을 해주셨고, 생각보다 빠르게 문제 해결을 위해 한 걸음 다가설 수 있었다.
그날의 결론은, 내 문제를 좀 더 날카롭게 생각해보고 문제 해결을 위한 가설을 세워보라는 것. 그냥 흘러가는 말이 될 수도 있었던 것 같은데 놓치지 않고 연휴에 피그마로 뚝딱뚝딱 만들었다. 내 문제와 가설들을.
그래서, 어떻게 되었냐 하면 현재 진행 중이다.
문제와 가설들을 보여드린 순간부터 해결책이 뚝딱 나오기는 했고, 뭔가 극단적인 해결방법인 것 같으면서도 중장기적으로는 나에게 매우 좋은 기회라고 생각해서 그 해결책을 따르기로 했다. 그 길에서는 좀 더 좋은 에너지를 얻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래야 다음 글은 좀 더 밝아질 것 같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