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벌, 자그마치 100벌이다. 1년 365일 동안 내가 산 옷이. 100벌은 한 쇼핑몰에서만 센 것으로, 추정컨대 약 200벌은 산 것 같다.
옷에 대한 애정의 역사는 곧 꾸밈의 역사. 두더지와 뱀이 나오던 학교를 나와 꾸밈에 눈을 늦게 떴다. 그저 공부하고, 먹는 게 전부였던 내 고등학교 시절을 잘 나타내는 에피소드가 있다.
고3 신체검사 날, 몸무게를 재는데 체육 선생님이 '아... 조금 줄여서 써줘야겠다….'라고 읊조리셨다. 조금 기대는 했는데, 배려의 결과물은 96kg.
대학 때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만, 문제가 생겼다. 꾸밈에 눈을 뜨게 된 것. 지금처럼 다양한 사이즈의 옷을 찾기가 힘들었던 때라 자연스럽게 '화장품'으로 눈길을 돌렸다. 그나마 자유롭게 꾸밀 수 있는 건 얼굴이니까. 그때도 지금과 비슷하다. 난 맥 VIP였고 섀도우가 300개였다.
이렇게 만족할 줄 알았는데, 사람은 욕심의 동물이었고 나는 지독한 탐미주의자였다. 화장품으로는 만족이 안 됐다. 나를 더 꾸미고 싶었다. 당시 나에게는 롤모델이 있었는데, 그분의 인스타그램 피드를 보며 '저렇게 입으면 무슨 느낌일까?' '저 사람이 파는 옷을 입어보고 싶다'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클래식한 셔츠, 청바지만 입어도 단정하고 예쁜 사람. 힘주지 않았지만, 꽉 들어찬 멋이 있는 사람. 나도 그렇게 꾸민 듯 안 꾸민 듯, 멋이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래서 악착스럽게 살을 뺐다.
처음에는 단순히 동경으로 샀다면, 사면 살수록 애정이 생겼다. 탄탄한 마감, 좋은 재질 그리고 클래식하고 단정한 디자인. 호기심으로 한 두벌은 살 수 있지만, 애정이 생겨버려 한 쇼핑몰에서 100벌이라는 옷을 사게 됐다. 이번 달에도 벌써 4벌은 샀는걸. 이미 샀던 옷의 다른 색으로.
애정으로 산 옷은 내 스타일이 됐다. 단순 옷을 사는 행위로 말하기에는 너무 애정이 담긴 행위다. 그 쇼핑몰과 비슷한 스타일의 옷만 봐도 사람들은 나를 떠올린다. 옷은 사람을 가장 떠올리기 쉽게 해주는 요소. 내 취향을 정말 대놓고 드러낼 수 있으니까. 내가 어떤 사람으로 보이고 싶은지를 제일 드러나게 꾸밀 수 있으니까. 그래서 허투루 할 수 없다. 그러니까, 가장 애정이 담긴 거로 듬뿍 담아내는 것이 나의 일.
이상. 지독한 탐미주의자이자 맥시멀리스트인 나의 쇼핑에 대한 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