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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연 Dec 24. 2019

어서와. 마크로비오틱의 음과 양은 처음이지?

12월 셋째주의 마크로비오틱 밥상


 작업실을 찾아주었던 소녀가 직접 키우고 수확해 손수 만든 유자청을 나누어주고 갔다. 수업 전날 밤을 따끈따끈하게 녹여주는 향과 맛.

 다시 쿠킹클래스의 날이 밝았다. 12월초에 첫 수업을 가졌던 겨울의 마크로비오틱2회차 수업이다. 1회차 수업 후, 배운 메뉴 중 한가지라도 해보시라는 숙제를 내어드렸더니 다들 숙제를 해오시고, 실패담 또는 성공담을 나누며 서로 조언과 격려를 아끼시지 않는다. 내가 배워보고 싶은 응용을 하신 분들도 계실 정도. 평소 집에서는 즉석밥을 즐겨드시던 분이 즉석밥을 탈출해 냄비밥에 데뷔했다는 경사스러운 소식도 전해졌다. 오신 분들의 복습을 위해 내어드린 숙제였지만, 이처럼 수업에서 마크로비오틱을 만나고, 삶이 변해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나에게도 무척 고무적이다.


 2회차 수업은 마크로비오틱의 음과 양에 대해 알아보는 수업. 한편, 메뉴로는 두가지 스프와 두가지 덮밥, 그리고 첫시간과 다른 방식의 현미밥 짓기를 배운다. 내가 먹고 사는 모습 또는 팝업식당에서 내었던 음식들을 보며, 마크로비오틱을 배워 여러 반찬을 차려 먹고 살기를 꿈꾸는 분들도 적지 않지만, 요리에 익숙하지 않은 분들께는 쉬운 일이 아니다. 섣불리 시도했다가 오히려 요리에서 손을 떼기 십상이기에 오히려 권하지 않는다. 처음에는 한가지만 만들어도 식사가 해결되는 일품요리부터 시작하는 것을 권한다. 메뉴의 가짓수를 늘리는 것은, 그렇게 자연스러운 재료만으로 스스로 만든 음식에 감격하고 요리에 재미를 붙이는 경험을 한 뒤에도 충분하다. 

 보관이 오래 되는 가, 또한 무시할 수 없다. 육아와 직장으로 바쁜 사람들이 매일 요리를 하며 사는 것이란 불가능에 가깝다. 주말이나 일찍 퇴근한 날 많이 만들어 두고, 아침식사 또는 퇴근 후 조금씩 꺼내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있다는 것 만으로도 감지덕지인 것이 현실이다. 때문에 두번째 수업에서는 한가지만으로도 식사가 해결되는 메뉴인 덮밥과 한번에 많이 만들어두고 냉동해 둘 수 있는 스프를 알려드린다. 

이번주 메뉴는 뿌리채소된장으로 만드는 탄탄밥(탄탄면 소스를 얹은 덮밥), 단단덮밥(단단한 채소들로 만드는 달콤 짭짤한 덮밥), 무 포타주와 돼지감자 포타주. 뿌리 채소 된장은 마크로비오틱 쿠킹스쿨 리마의 전통적인 레시피로 체온을 조절하는데 도움이 되는 메뉴. (단 아무리 뿌리채소된장을 챙겨먹어도, 평소 식습관이 그릇되어 있는 상태라면 말짱 도루묵이다.) 봄동을 쪄내 뿌리채소된장의 맛도 보고 이 뿌리채소 된장을 응용해 만드는 탄탄소스도 배운다. 자극적인 사천소스, 땅콩버터, 타히니 없이 어느 가정에나 있는 재료만으로도 탄탄소스를 만들 수 있다.  

 무 포타주를 만들면서 무의 부위별로 추천하는 요리도 알려드렸는데, 이 또한 눈을 반짝이며 들어주신다. 겨울철 어느집 냉장고에나 있는 존재이기에, 천대받기 쉬운 채소이기도 하지만, 부위에 따라 갖고 있는 맛과 식감이 다르기에 잘만 활용하면 무 하나만으로도 다양한 요리를, 최고의 맛을 끌어내며 만들수 있다. 이처럼 마크로비오틱 뿐만 아니라 내가 알고 있는 재료의 성질, 특징 등도 알려 드리는데, 수업에 오시는 분들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도 재료와 친하지 않은 분들이 많아 이런 점도 흥미로워 하신다. 

 한편 무포타주는 돼지감자 포타주에 비하면 음의 성질을 살렸기에 양성체질에게 권장하는 레시피로 만들고, 반대로 돼지감자 포타주는 다른 재료를 사용해 양의 성질을 살릴 레시피로 만든다. 이처럼 포타주만 두가지를 만들더라도 음양을 이해하며 만들기에 이 수업에서는 금요일반 토요일반 가릴 것 없이 질문이 끊이지 않는다. 이럴 때마다 흐뭇해 하며 마음속으로 읖조린다. '어서와, 마크로비오틱의 음양은 처음이지? 이제 시작될거야. 마크로비오틱에 빠져드는 시간이' 

 재료 밑작업부터 조리까지 신경써야 할 점이 많지만, 수업을 하는 날이 오히려 나에게는 더 편하다. 이른 오후에 뒷정리까지 모두 마치고 작업실에서 조금 쉰 뒤에는 저녁 요가를 간다. 이 시간이 일주일 중 가장 좋아하는 시간이 될 것도 같다. 오전에 있던 수업을 돌이켜 생각해 보면, 내가 가진 능력을 갖고, 나에게 무리가 되지 않을 정도로 일을 하고, 나의 일에 감사함을 표현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약간의 피로가 쌓인 몸을 풀어주며, 이 사실을 온 몸으로 느끼는 시간은, 하루 종일 컴퓨터를 마주하고 일을 하던 직장인 시절에는 좀처럼 가질 수 없는 행복이었다.

 일요일 저녁. 고등학교 시절 친구들이 개업을 축하한다며 작업실을 찾아주었다. 연말 모임에도 지쳐있을테고, 일요일 저녁이니 편한 집밥을 차려줄 생각이었지만, 화끈한 언니들 답게 와인을 챙겨오겠다 하셔 급히 와인안주로 메뉴를 변경했다. 잡채에 들어갈 예정이었던 시금치는 논오일 두부마요에 버무리고, 역시 잡채에 들어갈 예정이었던 우엉으로는 냉동실 속 토마토소스와 함께 우엉 라구소스를 만든다. 우엉 라구소스는 템페와 자투리 채소들과 함께 뭉근하게 졸였다. 내 멋대로 만든 음식이니 요리의 이름은 없는데, 굳이 이름을 붙이자면 우엉 템페 라따뚜이 쯤이 되려나...단단덮밥을 만들고 남은 단호박은 포실하게 쪄낸 뒤 으깨어 커리향 단호박 샐러드를, 역시 단단덮밥을 만들고 남은 연근은 가볍게 데치고 유자소금에 절인뒤 곶감에 버무렸다. 스프는 수업에서도 인기있던 돼지감자 포타주. 과자같은 안주만 먹으면 뱃속이 궁금해 한밤중에 냉장고를 열었다 닫았다 할 것이 뻔하니 밥도 빼 놓을 수 없다. 양배추와 다진 파슬리에 마늘향을 입혀 볶은 고명을 넣고 페페론치노풍의 현미오니기리를 만들었다. 채식과는 거리가 먼 친구들이기에, 먹고난 뒤 배가 고프지 않을까 걱정했다지만 밥을 먹여두니 다들 배를 통통 두들기며 집으로 돌아갔다. 채식이라고 해서 너희들이 그동안 먹어온 풀떼기 샐러드만 있는게 아니란다… 

 남은 오니기리도 잘 싸서 다음날 아침식사로 들려보내니 쓰레기라고는 술병과 병뚜껑 뿐이다. 다 먹지도 못할거면서 이것 저것 시켜서 음식물 쓰레기가 나오거나, 맛도 스토리도 없는 그저그런 번화가 음식을 돈 주고 사먹을 필요도 없고, 따뜻한 공간에서 술잔을 기울이니 연말 모임이 이리도 편할수가 있구나. 작업실과 마크로비오틱 덕에 편안한 날들을 보내고 있는 올해의 연말이다.  


쿠킹클래스 관련 공지는 블로그에

마크로비오틱이란? 차근차근 알아가는 마크로비오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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