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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연 Dec 29. 2019

친해질 놈은 알아서 친해진다

12월 넷째주의 마크로비오틱 비건 밥상

 작업실을 찾아주는 사람이 많으니 점점 오고가는 온정으로 공간이 차고 있다. 대봉감과 유자청, 마가루, 참기름을 얻었다. 오랜 친구는 ‘보석금전수’를 보내주었다. 많은 돈을 벌기 위해 하는 일은 아니지만 개업을 축하하는 식물을 받으니 진정 사업가가 된 기분이다. 

 크리스마스 이브. 혼자 보낼 예정이었지만, 취향이 비슷한 동료와 함께 늘 궁금했던 음식점을 방문했다. 생협은 물론 농부님과의 직거래를 통해 엄선한 친환경 재료를 사용해 주로 아침식사용 음식을 판매하는 곳. 거의 모든 메뉴에 비건 옵션이 있다. 외식을 할때면 남길 수 밖에 없이 과한 양의 음식에 말도 안되는 가격을 주고 먹어야 할때가 많아 괴롭곤 한데, 많지 않은 양에 적절한 (재료비를 생각하면 너무 싸다고 생각한다) 가격을 지불하고 식사를 할 수 있다. 부족하다면 오니기리나 도넛 등을 추가 할수도 있다. 무척 감사한 공간인데, 가격이 너무 저렴해 걱정이다. 일반 소비자 입장에서는 그렇게까지 저렴하지 않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친환경 재료만을 사용해 식당을 해본 나로서는 재료비에 비하면 너무 저렴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이상의 가격을 매긴다면, 일부 손님들의 볼멘소리가 돌아올 것도 알고 있다. 이처럼 가치 있는 음식이 정당한 평가를 받기 어려운, 요즘 외식업의 사정이 늘 안타깝다. ‘가성비’ 좋은 음식을 찾는 소비문화에, 우리의 외식업계에는 개성없는 음식과 생명력없는 재료가 만연하고 있다.

 노지 채소들은 찾아보기 힘든 계절이 오고 있다. 이 때문에 마크로비오틱을 하는 나에게 그럼 한겨울에는 무엇을 먹느냐는 우문을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식물성 재료는 땅에서만 나는 것이 아니다. 강과 바다도 우리의 자연이다. 육지에 사는 사람들은 평소, 마른 해조류를 먹으며 지내지만 이 쯤에면 말리지 않은, 신선한 해조류를 맛볼 수 있다. 한살림에서 생 파래를 발견했다. 파래무침은 무 생채와 식초, 설탕에 버무려 만드는 레시피가 대부분이지만, 모처럼 얻은 귀한 생 파래를 설탕에 무치기는 아쉽다. 과일, 뿌리 채소만의 단 맛으로 새콤 달콤하게 만든 연근 파래무침에 언두부와 생파래로 만든 된장국을 곁들여 본다. 생크림케이크와 통닭, 스테이크를 즐길만한 크리스마스. 나는 밥에 반찬 한개와 된장국을 올린 식사를 했지만, 나에게 필요한 재료를 필요한 만큼만 먹을 수 있어 몸도 마음도 가벼운 크리스마스를 보냈다. 

  오전 베이킹 클래스를 가졌던 금요일. 수업은 이른 오후에 끝났지만 작업실을 떠나지 않았다. 오랜 친구가 작업실을 찾아주기로 했다. 함께 교복치마 밑에 체육복 바지를 입은 채로 말뚝박기를 하고, 시험이 끝난 날이면 노래방에 가던 친구가 어느새 결혼을 하고 아이를 가졌다. 추운날 산모를 든든히, 따뜻하게 먹이기 위한 상을 차렸다. 뿌리 채소 밥과 언두부와 미역 된장국, 튀김과 몇가지 반찬으로 차린 한 상. 

 (좀처럼 튀김을 즐기지 않는 나이지만, 음이 정점을 찍은 요즘 같은 계절만큼은 튀김도 상에 올려 본다. 마크로비오틱을 이해하며 조리하고 궁합이 좋은 반찬을 곁들인다면 튀김도 부담없이 먹을 수 있다. )

 연말의 금요일 밤. 모두가 번화가의 파티 음식을 즐기는 시간에 톳, 언두부 등 익숙하지 않은 재료들, 게다가 치즈, 달걀도 없이 식물성 재료만으로 차린 밥상을 친구에게 내어 주었다. 하지만 번화가의 파티음식, 내추럴 와인 한잔 없이도 오랜 두친구는 앞으로에 대한 기대와 걱정부터 시작해 묻지도 않았는데 서로 온갖 이야기를 끄집어 낸다. 쿠킹클래스를 하며 힘든 점, 시댁 이야기, 회사 이야기 등… 이렇게 편한 친구와 함께 편한 음식을 먹으며 따뜻한 작업실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자니, 조금은 우쭐한 마음 마저 든다. 지금쯤 저 테헤란로 또는 을지로 언저리에는 연말이니 동료들과의 ‘교류’ 를 위해 눈 앞에 술과 파티 음식을 놓고 허심탄회하게 대화해야 한다는 고리타분한 생각을 갖고 모여있는 누군가가 있겠지.친해질 놈은 알아서 친해지기 마련인데 말이다… 그렇게 만나서 술마셔 봤자 속아프고 살만 찔텐데...이미 다들 아는 사실이니, 이제 행동에 옮길 때가 되었다. 쓸데 없는 모임을 만들어 개성도 없고 윤리적이지도 못한 음식을 먹으며 그 누구도 행복하지 않은 연말을 보내는 것도 이제 그만. 불러도 아쉽지 않고 찾아가도 미안하지 않은 사람들끼리 소소하게 모여 한해를 마무리 하는 연말 문화가 자리 잡을 때가 되었다.


쿠킹클래스 관련 공지는 블로그에

마크로비오틱이란? 차근차근 알아가는 마크로비오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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