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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연 Mar 24. 2020

생명력이 넘치는 음식을, 넘치지 않을 만큼만 먹는 삶

3월 셋째주의 마크로비오틱 비건 밥상

3월초, 오랜만의 식당영업을 한 뒤 며칠간은 침대와 한몸이 되어 시간을 보냈다. 하루만 식당을 해도 이렇게나 힘든데, 어떻게 매주 이틀씩 혼자 식당을 했나 모르겠다. 몇개월 차이일 뿐인데, 나이를 한살 더 먹었다고 그새 체력이 부족해진것 아닌가 모르겠다. 

 코로나19의 영향으로 한동안 수업을 쉬었지만, 변함없이 열심히 밥을 해먹으며 지냈다. 세상이 시끌시끌해도 시간은 흐르니,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그 시간에 몸을 맡기는 것 뿐. 주방에서 재료를 손질하고, 이따금식 창밖의 산을 바라보면 시간과 몸이 하나가 되는 듯하다. 그 때문에도 수업은 없지만, 집을 떠나 매일 작업실로 출퇴근을 했다. 그릴한 표고버섯을 넣고 지은 현미밥에 따끈한 된장국과 반찬 몇가지를 곁들이니 뱃속이 따땃해지고 잠도 잘온다.

야들야들한 봄 양배추와 새송이를 넣고 솥밥을 지어먹기도 했다. 된장국은 두부와 근대를 숭덩숭덩 썰어넣어 끓인다. 채수를 내고 남은 표고버섯과 다시마가 터질듯 쌓였으니 오랜만에 다시마표고조림도 해본다. 마크로비오틱에서는 주로 채수를 낼 때에 표고버섯과 다시마를 사용하는데, 채수를 내고 남은 것들은 모아두었다가 간장에 졸여 다시마 표고조림을 만든다. 채수를 내고 남은 것이라 풍미는 줄었겠지만, 엄연히 생명력을 지녔던, 먹거리이다. 풍미가 떨어졌다고 해서, 사람이 먹을수 있는 것인데도 음식물 쓰레기 통으로 보내는 것은 이기적인 마음이 아닐까. 단순히 음식물 쓰레기를 줄이기 위해 먹는 것이 아니다. 내 눈앞에 주어진 생명력에 감사한 마음을 갖는다면 채수를 냈던 다시마, 표고버섯도 허투루 버릴 수 없다.


마크로비오틱 기초과정을 끝내신 분들이 이어서 듣고 있는 정규반 수업을 한달만에 재개했다. 코로나19로 외출이 줄고, 우울해져가는 시기가 아닌가 싶었는데, 마침 보기에도 예쁘게 알록달록한 재료들이 많은 수업이었다. 2회 분량의 수업을 모아서 하는 날인 만큼 유난히 재료도 다양하고 그만큼 메뉴도 풍성하다.


-콜라비밥과 달래간장

-알리오올리오풍 파슬리 주먹밥

-쑥 미나리 막장국

-미나리 비지찌개

-유채나물 흑임자 발사믹무침

-브로콜리 참깨두부무침

-우엉 샐러리조림

-당근카츠와 금귤봄동샐러드

-양배추 김치

많다...

수업에서 우엉샐러리조림을 알려드렸더니 샐러리 잎이 한다발만큼 남았다. 샐러리잎도 생명력을 가진 샐러리 이기에 버리지 않고 사용한다. 기름과의 궁합이 좋아, 주로 전을 부쳐 먹는다. 봄동, 당근도 채썰어 넣으면 맛의 균형도, 음양의 균형도 좋지다. 사람이 소화, 흡수 시킬 수 있는 식재료, 생명력이 깃든 식재료라면 마크로비오틱에서는 모두 버리지 않고 먹는다. 수업을 하다보면 특정 식재료를 먹어도 되는지 안되는지에 대해 질문을 받는 경우가 적지 않다. 마크로비오틱에는 '절대 안돼'는 것은 없기 때문에 본인이 판단했으면 하지만, 기준으로 두면 좋은 것은 '자연에 해를 가하지 않은 재료인지 아닌지'와 '생명력이 깃든 재료인가 아닌가' 이다. 이 음식이 자연에 해를 입히며 자랐는지 아닌지, 땅과 물의 기운을 한껏 받아, 뚝 분질러도 생명수가 퐁퐁 솟아날 것만 같은 재료인지 아닌지를 생각해보면 스스로 답을 낼 수 있다.

2월에 시작한 4회과정 첫걸음 클래스도 마지막 수업을 맞았다. 코로나19영향으로 수업을 한번 쉬고, 한회 수업에서 2회분량을 알려드렸더니 이번 수업도 유난히 풍성하다. 좋게 말하면 풍성하지만, 사실상 과하다. 늘 이렇게 먹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마크로비오틱은 소식을 권한다. 적게 만들고 적게 먹으면, 내 몸에 남는것도, 조리과정 전후에 만들어 내는 쓰레기도 적다.


 새로운 공간에서 수업을 시작한지 4개월이 되었다. 내가 전달하고 싶던 것들이 제대로 전달되었는지 숨가쁘게 달려온 4개월을 잠시 돌이켜 본다.  우선, 마크로비오틱을 일상에 들여오는 구체적인 액션에 대해 알려드리는 수업을 해왔다는 점은 개인적으로 만족스럽게 생각한다. 식생활은 하루 아침에 바뀌는 것이 아니고, 차근차근 조금씩 바꿔가는 인생사업이라 생각하는 만큼, 수업을 들으신 분들도 조금씩 실천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한편, 마크로비오틱은 식생활을 넘어 삶의 방식이라는 점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지 않았나 하는 아쉬운 마음이 든다. 마크로비오틱을 실천하면 건강해진다는 것은 불변의 진실이다. 하지만 건강해지겠다는 마음으로 그저 먹거리만을 이 방향 저 방향으로 뜯어보고, 그것들이 자라온, 그리고 자라올 환경에 대해서는 눈길을 주지 않는 것은 마크로비오틱 답지 않은 마음이다. 


 계절과 체질, 그리고 재료의 성질을 이해하며, 더 조화롭게 먹는 것 역시 중요하다. 하지만, 음식을 마주하는 순간은 식탁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다. 주방에서 재료를 손질하며, 더 나아가서는 장을 볼 때부터 음식을 마주하게 된다. 삶의 방식으로서 마크로비오틱을 이해하고, 스스로 판단하는 힘을 키우기 위해서는, 식탁에 오르기 전부터 어떠한 마음으로 음식을 접할 것인지에 대해 생각해 보았으면 하는 마음이다. 앞으로 진행할 새로운 기초반과 정규반에서는 마크로비오틱은 건강한 식생활을 넘어, 평화로운 마음으로 자연과 공존하는 삶의 방식이라는 점을 어떻게 하면 더 전달할 수 있을지 고민중인 요즘이다.


 코로나 19의 영향으로 또 2주간의 타의적 휴가를 얻게 되었다. 눈앞에 할일이 없으면 무기력해지는 사람인데, 다행히 아주 중요한 숙제가 눈앞에 주어졌다. 덕분에 2주간의 휴가를 의미있게 보낼 수 있을 듯하다.


쿠킹클래스 관련 공지는 블로그에

마크로비오틱이란? 차근차근 알아가는 마크로비오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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