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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스 Sep 12. 2021

누군가 나를 인터뷰할 때

매일 인터뷰어로 살다가 갑자기 인터뷰이가 되었을 때

"그때 뭐하셨어요?" 내가 연락이 닿지 않을 때, 카톡에서 칼같이 답장이 없을 때, 나한테 이렇게 물어본다면 언제 어디일지는 모르겠으나 아주 높은 확률로 내 대답은 이거다. "인터뷰하고 있었어요. 질문 중이었어요."


늘 질문을 달고 사는 인터뷰어로 살다가 반대로 내가 인터뷰이가 될 때 한 번씩 새삼 느낀다. 이거 입술 한 번 떼기가 쉽지 않구나? 그런데 심지어 카메라와 마이크를 들이댄다고? 와 보통이 아니다. 고로 내게 대답해준 모든 인터뷰이들에게 다시 한번 감사해야겠다, 하고.


얼마 전 모교에서 연락이 왔다. 후배들을 위해 인터뷰를 해달란다. 무슨 내용인지도 모른 채 수락했지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재수 없이 대학에 입학했건만, 미루고 미루다 7년 만에 고졸 딱지를 떼어내기까지 학교에서 받은 것이 많았으므로 웬만해선 학교에서의 부탁을 거절하지 말자는 게 나의 신조. 하지만 질문 내용을 보니 아찔했다. 마치 다시 취업준비생이 된 기분으로 자소서를 쓰는 기분이랄까. 이거 쉽게 대답할 수 없겠구나.


수십 개의 질문지를 받아들고서 경건한 마음으로 카페로 향했다. 벤티 사이즈로 라떼까지 시켰다. 질문 내용을 하나씩 곱씹으며 나의 지난 3년을 돌아봤다. 아주 사적인 일기장을 옮겨 담아와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거 자소서가 아니라 반성문이 될 지도 모르겠는데?



언론인을 꿈꾸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매일 아침 뉴스를 보면서 온 가족이 하루를 시작했던 터라 자연스럽게 기자의 꿈을 키워왔던 것 같아요. 내가 기자가 되면 우리 가족이 내 뉴스를 보면서 하루를 시작할 수 있지 않을까 꿈꿨어요. 막연히 기자라는 직업에 호기심을 갖던 저는 우리 학교 미디어학부에 진학하면서 언론인이라는 꿈에 더 가까워졌습니다.  


언론고시를 준비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점은 무엇인가요? 그것을 극복하게 된 일화도 궁금합니다.

'이게 맞는 걸까? 잘하고 있는 걸까?' 이 답을 찾는 게 힘들었어요. 언론인을 준비하는 친구들이라면 다 공감할 텐데, 저희끼리는 필기 합격을 '장원급제'라고 표현했어요. 입사 시험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논술·작문 등의 필기 시험이 정량평가가 아니다 보니, 다른 시험처럼 내가 몇 점 맞았는지, 무엇을 틀렸는지 알 수 없거든요. 

몇 번 불합격의 고배를 마시다 보면 '이게 맞는 걸까?'라는 고민이 절로 들어요. 솔직히 그럴 때마다 술 마시고 욕하면서 풀었습니다만(웃음), 학교 언론고시반이 큰 도움이 됐습니다. 매주 같은 논제로 글을 쓰고 함께 퇴고까지 하다 보면, 처음 썼던 글보다 발전되거든요. 마찬가지로 필기 시험 논제에 대해서 명원재 선생님과 실원들이 함께 얘기하다 보면 내 패착은 뭐였는지, 어떻게 논증하는 것이 좋을지 조언을 얻을 수 있어 좋았습니다. 함께 공부하는 스터디원들 덕분에 숱한 슬럼프도 극복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사회부 기자로 활동하며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에피소드라는 가벼운 단어로 말씀드릴 순 없고, 가장 잊을 수 없는 취재원으로 소개할 수는 있을 것 같습니다. 수습 시절 살인사건 피해자의 유가족을 취재한 적 있습니다. 아들을 잃은 부모 앞에서 기자라고 입을 떼기도, 질문을 하는 것도 죄스러웠어요. 하지만 장례가 치러지는 3일 동안 매일 조문하고, 장지까지 함께했습니다.

피해자가 죽기 전에는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분들인데 어느덧 기자-취재원 그 이상이 되어 있더라고요. 아들처럼 억울한 피해자가 나오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서 제게 한 마디 한 마디 힘주어 말씀해주셨고 그 내용은 고스란히 기사화됐습니다. 다시는 아들의 얼굴을 볼 수 없는 부모에게 그 어떤 죗값도 미치지 못하겠지만, 대법원은 숨지게 한 이들에게 징역 9년을 선고했습니다. 이 세상에 다시는 억울한 죽음이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기자로서 꼭 지키고자 하는 자신만의 신념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초심 잃지 말자' 시간에 쫓기다가 원칙을 놓지 않도록, 기사 때문에 누군가의 신뢰를 깨지 않도록 항상 초심을 지키려고 노력합니다. 급하더라도 팩트체크에 소홀하지 않고, 제 기사가 향하는 방향이 어딘지 알고 신중히 씁니다. 팩트체크라는 기본에 충실하는 것도, 취재원과의 신뢰를 깨지 않는 것도 모두 초심을 잃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기자라는 직업을 계속 영위하게 만드는 원동력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보람' 입니다. 기자라는 이유로 저를 경계하고 싫어하시는 분들도 계시지만, 반대로 기자라는 이유로 제게 이유 없이 곁을 내어 주시는 분들도 많이 계세요. 이전에 한 번도 뵌 적 없지만 기자라는 이유로 다른 사람의 삶에 깊숙이 들어갔다는 생각을 하면 책임감이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기사 써줘서 감사하다고 말씀하시는 취재원, 기사 보고 응원해주시는 시청자들이 있어서 보람을 느낍니다. 그런 보람 덕분에 힘들어도 더 열심히 일하고 있어요!


기자의 꿈을 이루신 후, 느끼신 기자라는 직업의 현실과 이상의 차이가 있다면 어떤 점인지 궁금합니다.  

여러분은 기자가 어떤 직업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드라마나 영화에 나오는 주인공처럼 멋진 일이라고만 생각한다면 단언컨대 아니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저흰 늘 시간에 쫓기는 직업이거든요. 방송에 나오는 2분짜리 리포트 하나를 만들기 위해 그 외 시간은 화면 밖에서 취재하느라 정신이 없어요. 정장을 입고도 길바닥에 앉아 기사를 쓰고, 긴 머리 질끈 묶고 운동화가 헤질 만큼 현장을 돌아다녀야 하니까요. 건강과 체력이 중요한 험한 직업이라는 것도 미리 알고 계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앞으로 기자로서 넓게는 언론인으로서 이루고 싶은 혹은 하고 싶은 일이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선한 영향력을 주는 언론인이 되고 싶습니다. 기사 한 줄로도 세상을 바꾸는, 사회를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끄는 기자가 되는 게 꿈입니다. 재학시절 저는 5년 동안 낭독 봉사를 해왔어요. 시각장애인을 위한 오디오 북을 제작하는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5년이 지난 후 바뀐 게 무엇이었을까요? 안타깝게도 없었습니다. 봉사를 통해 잠깐은 도울 수 있을지 몰라도, 결국 제도를 바꿔야 하는 일이라는 걸 알았어요. 공무원이 아닌데 공적인 일을 하는 사람, 기사 한 줄로도 세상을 바꾸는 사람, 그게 기자였습니다. 아직도 제가 갈 길은 멉니다. 하지만 지치지 않고 선한 영향력을 줄 수 있는, 바른 언론인이 되고 싶습니다.  


언론인을 꿈꾸고, 준비하고 있는 학우들에게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솔직히 말씀 드리자면 언론인이 되는 것도 쉽지 않지만, 어렵게 되고서도 순탄치만은 않습니다. 하지만 절대 후회하지 않아요. 한 번 사는 인생, 하고 싶은 일은 꼭 하고 죽어야 하지 않겠어요? 제 경우엔 오래 걸리더라도 기자가 되지 않으면 후회할 것 같아서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무식하지만 플랜B도 없이 시작했고요. 

돈은 없지만 열정은 넘치고 인생은 길다고 생각하는, 저 역시 여러분과 같은 학생 1이었습니다. 해보고 안 맞으면 그때 그만둬도 늦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하고 싶다면 절대 포기하지 마세요. 곁에서 응원하겠습니다! 현장에서 만나요!


출처 : https://www.sookmyung.ac.kr/sookmyungkr/1269/subview.do?enc=Zm5jdDF8QEB8JTJGYmJzJTJGc29va215dW5na3IlMkY4MiUyRjE0OTg2OCUyRmFydGNsVmlldy5kbyUzRg%3D%3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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