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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이주노동자 사망연구 인터뷰

통계, 앎의 의지, 애도, 인간의 자

by 김승섭

https://n.news.naver.com/article/028/0002730425?sid=102


암장, 이주노동자의 감춰진 죽음③ 일터에 남은 사람들
김승섭 교수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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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노동자 사망 관련 연구를 진행한 김승섭 서울대 교수가 지난해 12월2일 오후 서울대에서 한겨레와 인터뷰 하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타이 사람 분추 프라바세눙, 베트남 사람 즈엉 반응웬, 방글라데시 사람 후세인 바케르, 인도네시아 사람 압둘 나스루딘, 네팔 사람 미노드 라이….


‘암장, 이주노동자의 감춰진 죽음’ 보도를 통해 한겨레는 한국에서 일하다가 병·사고·자살 등으로 숨진 이들의 이름 정도를 겨우 찾아 불렀다. 그의 생애 기억·관계·사랑·표정·성격·욕망·슬픔 등 한 사람을 이루는 복잡하고 구체적인 모습은, 그가 세상을 떠난 지금 알 수 없다. 그마저 운이 좋은 경우였다. 사망한 이주노동자 대부분은 이름조차 남지 않았다. 대한민국이 생산하는 어떤 행정통계로도 한국 땅에서 한 해 숨진 3340명의 노동자 중 94%(2022년 기준)의 기초적 사망자 정보를 파악할 수 없다.


국가인권위원회가 내놓은 김승섭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 연구팀의 ‘이주노동자 사망에 대한 원인 분석 및 지원 체계 구축을 위한 연구’(이하 연구)는 그 숱한 기록되지 못한 죽음에 천착한 보고서다. 보도의 바탕이 됐다.


연구는 현존하는 행정자료를 최대한 동원해 실제 이주노동자 사망 규모 추정부터, 사고사는 물론 질병·돌연사나 자살 등 다양한 사망 배경에 대한 분석, 복잡하고 값비싼 사망 이후 장례 과정, 사망을 목격한 이주노동자의 트라우마에 이르기까지 이주노동자 사망에 관한 방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다만 결론 대부분은 ‘정확히 알 수 없다’에 그친다. 최선을 다한 실패로 한국 사회의 ‘무지’를 고발한 셈이다.


한겨레는 보고서 공개 직후인 지난해 12월2일 연구를 이끈 김승섭 교수를 그의 연구실에서 만났다. 다음은 김 교수와의 일문일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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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3월 경기 포천의 한 돼지 농장에서 일하다 사망한 뒤 야산에 유기된 타이 출신 이주노동자 분추 프라바세눙의 장례가 고국에서 치러지고 있다. 유족 제공


―이주노동자 사망 연구는 우리가 무엇을 아는지 보다 무엇을 모르는지를 드러내는 과정이었다. 이주노동자 죽음 규모를 추정하게 된 계기는?


“산업보건을 연구하는 교수로서, 산업재해 통계를 보면서 느낀 불편함이 있었다. 사고성 재해로 인한 사망률은 지난 10여년간 꾸준히 호전됐다. 이 긍정적 변화가 실은 가장 열악한 조건에서 일하다 숨진 이주노동자가 국가 통계에서 상대적으로 배제돼 나타난 결과 아니냐는 의심이 가시지 않았다.


실제 한국 정부는 매년 이주노동자가 얼마나 다치고 숨지는지에 대한 공식 통계를 내지 않고 있다. 가장 위험한 노동을 값싸게 이주노동자에 맡기고 그들이 만든 음식과 재화를 사용하면서, 막상 그들의 삶과 죽음을 방치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연구를 시작했다. 가용한 자원을 최대한 모아 전체적인 그림을 추정해보고자 했다.”



―‘통계 선진국’인 한국에 이주노동자 죽음에 관한 통계가 없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국가가 어떤 집단의 삶과 죽음에 대해 통계를 낸다는 것은 그 집단을 시민으로 인정한다는 의미다. 이주노동자 사망에 관한 지식이 생산되지 않았던 것은 결국 우리에게 ‘앎의 의지’가 없었다는 뜻이다. 많은 송출국 대사관은 한국에서 죽거나 다친 자국 노동자 권리에 대해 목소리를 내면 ‘고용허가제 쿼터’를 잃을 수 있다는 우려로 침묵하곤 한다. 한국 정부가 무지를 유지하고 고통을 방치해도 외교적으로 큰 문제가 없는 구조인 셈이다.”



―사망자 수 추정은 어떻게 이뤄졌나?


“실제로 이주민 관련 현장 활동가들에게 한해 숨지는 이주노동자가 몇 명일지 물어보면, 보통 200∼300명 예상한다. 현장에서 체감하는 숫자가 그 정도였던 셈이다. 2022년 기준 이주노동자 사망자가 최소 3340명이라 답하면 다들 놀란다. 죽음을 체계적으로 기록한 통계가 없으니 활동가조차 감을 못 잡을 정도인 것이다. 그만큼 드러나지 않은 죽음이 많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번 연구에선 이주노동자 사망에 관해 행정적으로 상상할 수 있는 자료는 모두 받았다 . 현존하는 자료로는 최대치인데도, 손가락 사이로 모래가 빠져나가듯 많은 죽음이 빠졌다. 그나마 이주노동자 사망 자료를 가장 폭넓게 가진 곳이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인데, 역시 과소 집계됐을 가능성이 크다. 자신들이 이주노동자 사망 통계를 집계한다는 인식도 없고, 미등록 노동자는 관리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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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공사 현장에서 돌연사한 즈엉 반 응웬(왼쪽)의 모습. 유족 제공.


―연구는 ‘데이터의 함정’을 무척 경계하는 것으로 보인다


“누구의 죽음은 기록되어 사회적 애도를 받고, 누구의 죽음은 숫자조차 되지 못한 채 휘발된다. 외국인의 변사와 무연고사는 한국인보다 압도적으로 비중이 컸다. 한국인의 변사는 대부분 자살인데, 외국인의 변사는 과반이 사인을 모르는 ‘기타’로 분류된다. 여기서 ‘기타’는 다양한 원인이 모인 범주가 아니라, 원인을 알려고 하지 않아 생긴 일종의 서류 쓰레기통과 같다. 구체적 이유가 조금이나마 기술된 죽음은 경제적 보상이 연결된 경우 뿐이었다.


사망자 규모만큼 중요한 맥락은 사망자 대다수가 건강한 상태로 한국에 왔고, 젊을 때 숨졌다는 점이다. 한국에서 숨지는 정주노동자는 50살 이상이 압도적으로 많은 반면, 한국에서 숨진 이주노동자는 대부분 50살 이하다. 연령 보정 없이 사망률을 단순 비교할 수 없다는 의미다. 연령을 감안한 산업재해 사망률은 정주노동자와 이주노동자가 최대 3.6배 차이를 보인다. 이조차 언어·문화적 장벽으로 산재 신청 자체를 못한 이들과, 한국에서 일하다 크게 다치거나 병에 걸려 죽음을 앞두고 본국으로 돌아간 이주노동자는 배제된 숫자다.”



―한국 사회에는 ‘미등록’ 이주노동자라면 열악한 조건을 견뎌야 한다는 인식이 뿌리 깊다.


“왜 이주노동자가 ‘미등록’이 되는지 살펴야 한다. 사회적 배경을 삭제하고 왜 ‘허가받지 않은’ 노동을 하냐는 질문은 그 노동의 혜택을 받으면서도 그 노동에 무관심한 한국인의 시각에서 편리하지만, 폭력적이다.


예를 들어 지금 계절근로자로 오는 이주민 중 상당수가 6개월간 임금에 맞먹는 돈을 현지 브로커에게 주고 한국에 온다. 그리고 그 브로커들은 놀랍지 않게도 대다수 한국인이다. 단기계약 월급보다 더 많은 수수료를 내니까 이들은 당연히 계약기간이 끝난 뒤 미등록으로 살아갈 것을 각오하고 온다. 충분한 검토 없이 단기적으로 고용이 필요하다는 현장의 요구에 따라 만든 제도의 대가를 이주노동자들이 치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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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노동자 사망 관련 연구를 진행한 김승섭 서울대 교수가 지난해 12월2일 오후 서울대에서 한겨레와 인터뷰 하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한국 사회는 끊임없이 이주노동자를 ‘없는 사람’ 취급하고 있다는 느낌도 든다.



“연구하면서 발견한 것은 이주노동자가 살아서는 ‘미등록’(Undocumented)이 되기 쉽고, 죽을 땐 ‘사인 미상’(Unknown)이 되기 쉽고, 죽고 나면 ‘무연고’(Unrelated) 처리되기 쉽다는 점이었다. 삶과 죽음, 죽음 이후의 과정에서 한국 사회가 계속 이주노동자를 인간의 경계 바깥으로 밀어내고 있었다. 이주노동자를 살아서도 죽어서도,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사람으로 만드는 힘이 작동했다.


심지어 죽음과 죽음 이후 장례 과정에서도 이들은 애도 받지 못했다. 마땅히 공유되어야 할 사회적 이야기들이 사라져버리고 있다. 3천명이 넘는 이주노동자의 죽음이 일종의 참사라면, 이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누가 죽었고 왜 죽었는지 기록하는 것이 최소한의 시작이다.”



―이주노동자의 사망을 ‘예방’해야 하지만, 죽음 이후에야 이들의 고통을 발견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그건 연구하면서 만난 현장 활동가들의 고민이기도 했다. 가장 필요한 변화는 그들이 죽고 다치지 않도록 예방하는 것인데, 실은 죽음이 발생한 뒤에야 겨우, 그조차 드물게 개입이 가능하다. 작업환경 개선이 아니라, 이미 사망한 이주노동자를 위해 사업주의 사과를 받아내고 최소한의 보상금액을 받는데 활동이 집중되고 있어 안타깝기도 하다.”



―부조리한 장례 절차 등 ‘이주노동자의 죽음 이후의 불평등’은 매우 낯선 주제였다. 어떻게 다루게 됐나?


“연구팀에서 함께 일한 활동가가 한국에서 숨진 우즈베키스탄 노동자의 유해를 1년 가까이 보관했다는 이야기를 듣고서였다. 영안실에 계속 모시는 게 부담이 커서 화장을 했는데, 그의 동료와 가족들이 유해를 찾아가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슬람 국가에서는 화장하는 것이 종교적 교리에 어긋나기 때문이었다.


그 계기로 이번 연구의 한 챕터를 사망 이후 이주노동자가 겪는 어려움에 할애했는데, 상상도 못 한 수많은 이야기가 쏟아져나왔다. 예를 들어, 경기도민이 숨져 지역 내에서 화장하면 비용이 10만원 안팎인데, 미등록 노동자는 외부인으로 간주돼 100만원을 내야 한다는 식이다. 가장 열악한 사람이 죽음 이후에도 가장 큰 비용을 치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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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을 모아 동포의 장례를 치르는 인도네시아 이주민들이 이슬람 성원에 마련된 발인예식장에서 주검을 관에 담은 뒤 기도하고 있다. 인도네시아 커뮤니티 포럼 페이스북 갈무리


―보고서와 관련해 방글라데시 방문 연구도 수행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을 꼽는다면?


“방글라데시를 찾아가 한국에서 일하다 본국에 귀환한 이주노동자를 많이 만났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들 대다수는 ‘살아남은 사람들’이었다. 젊은 나이에 한국에서 일해 나름의 부를 축적하는데 성공한 사람들이다. 한국에서 일하다 죽거나, 중증 장애를 얻었거나, 큰 트라우마를 얻은 사람들은 어디에서도 만나기 어렵다. 그런 이들은 귀환 노동자 모임에도 나오지 못한다. 결국 한국에서 고통받은 사람들 이야기는 사라지고, 성공한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 이야기만 퍼져나간다. 역경을 이겨낸 계급 상승의 신화처럼 매력적인 이야기가 없지 않은가.”



―한겨레 취재 과정에서 만난 이주노동자는 도전적이고 삶에 대한 열망이 커 보였다.


“이주노동자에게는 살아남아야만 하는, 성공해야만 하는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1960년대에 독일 광부·간호사로 자원한 사람들, 1970년대에 중동 건설현장에 일하러 간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강렬한 삶의 의지와 자기통제 역량이 있는 사람들 아니었을까.


한국에 온 이주노동자들도 그렇다. 한국에서는 외국인이라는 신분과 언어장벽으로 위축돼서 그렇지, 이들이 자신의 언어로 말하고 행동할 때는 강하고 자신감 있다. 방글라데시에서 만난 방글라데시 노동자들은 목소리와 표정부터 달랐다. 어떤 이들은 심지어 ‘꼰대’같기도 하다. 한국에 온 지 7년 된 방글라데시 노동자가 나에게 ‘요즘 방글라데시 젊은 애들은 겨우 사장이 ‘야’라고 한 거 가지고 불만 갖는다’고 흉을 보더라.(웃음)”



―이주노동자들이 한국을 좋아한다는 점도 의외다. 열악한 노동환경에도 품고 있는 한국에 대한 애정은 이해하기 쉽지 않았다.


“어려운 문제다. 많은 이주노동자가 차별과 폭력을 두려워하면서도, 자신의 본국과 견줘 많은게 풍요로운 한국 사회에 살면서 복합적인 감정을 가진다. 게다가 가족들은 한국에서 보내는 돈으로 풍족한 삶을 누리고 있고, 본국엔 일자리도 없으니 일하다 다쳐도 쉽사리 본국으로 돌아가기 어렵다.


특히 한국에 오려고 가족들의 경제적 지원을 받았던 이들은 아무리 힘들어도 돌아가겠단 말을 입 밖에 내지 못한다. 또 한국에서 많은 이주노동자가 위험한 사업장에서 일하는 것은 분명 사실이지만, 몇몇 나라의 경우 이들이 본국에서 찾을 수 있는 노동 환경이 그보다 특별히 더 안전한 것도 아니다.


모든 인간이 그러하듯, 한국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들 삶 역시 복잡하다. 한국에서 일하다가 손가락 절단 사고를 당했던 방글라데시 노동자를 만나 ‘한국에 대해 무엇이 떠오르냐’고 물었더니 산재 얘기가 아니라 ‘해 질 무렵에 마시던 소주와 삼겹살을 잊을 수가 없다’고 했다. 방글라데시는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이슬람 국가인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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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 사람 루안(가명)이 가죽공장에서 일하며 손톱이 빠진 동료 이주노동자의 사진을 가리키고 있다. 임재희 기자


―보고서 전반에 이주노동자를 연민의 대상이 아닌, 복잡성을 지닌 한 사람으로 대하고자 하는 태도가 느껴졌다.


“복잡성은 고유한 역사가 있다는 뜻이다. 누군가의 자식으로 태어나 배우고 일하고 사랑하고, 그 역사 속에서 만들어진 한 사람의 존재를 인지하는 일이다. 그 과정은 숱한 모순과 이야기로 가득하다. 그 복잡성이 사라지면 쉽게 타자화되고, 이주노동자의 상실을 애도하기 위한 중요한 이야기들을 함께 지우는 효과를 낳는다. 당장 필요하고 시급한 정책들이 많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계속 문제를 새롭게 인식하고 과제를 바꿔 나가며 길을 찾아야 한다. 수많은 역사가 엮인 복잡한 이야기만큼 해결책도 복잡할 수밖에 없다.”


―이번 연구가 어떤 변화를 불러오기를 바라나?


“이번 연구가 한국인과 이주노동자가 다 같이 이주노동자 사망에 대해 공부를 시작할 좋은 이야깃거리가 되길 바란다. 그래서 이주노동자들도 읽을 수 있도록 요약문을 13개 언어로 번역해 보고서에 첨부하기도 했다. 언젠가는 한국에서 이런 연구를 이주민 당사자가 해야 하지 않을까. 그들은 한국인인 나보다 훨씬 더 용감하게 이주민의 삶과 죽음의 다채로움을 표현할 수 있을 거다. 많이 읽히고 사용되길 간절히 바라면서 불확실성 속에서도 가장 나은 걸 건져 올리려 최선을 다한 보고서다. 이를 통해 이주노동자 삶과 죽음의 복잡성이 함께 인지된다면 정말 좋겠다.”


이지혜 기자 god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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