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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림보 Jun 02. 2020

지루함의 회복



몇 년 전 재독 철학자 한병철의 ‘피로사회’를 읽으면서 탁월한 통찰에 깊이 공감했다. 이 책은 현대사회를 피로사회로 규정하면서 그 바탕의 성과주의를 비판한다.

특히 ‘자기 착취’에 주목한다. 과거에는 외부의 권력이 개인을 착취했다면, 현대사회는 성과의 극대화에 매몰돼 급기야 개인이 스스로를 착취한다는 것이다.

맞다. 과거엔 타인이, 주로 상급자나 교사, 부모, 선배 등이 명령하고 우리는 따르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느새 명령자는 바로 우리 자신이 됐다. 숙련된 조교처럼 우리가 자신에게 명령하고 있지 않은가? 우리는 스스로를 완벽주의로, 멀티태스킹으로 몰아가고 있다. 이런 것을 시스템이 잘 작동하고 있는 것으로 인식한다.


이런 자기 착취는 자유롭다는 느낌 속에서 이뤄지기 때문에 타자 착취보다 훨씬 더 효과적이다. 더 많은 성과를 올리며, 자신이 망가질 때까지 자신을 자발적으로 착취하게 된다. 경쟁의 양상 또한 남과의 상대적인 경쟁이 아니라 스스로를 끝없이 넘어야 하는 자신과의 ‘절대적 경쟁’에 빠져든다. 대한민국은 유별나게 더 그렇다. 우리는 자신을 착취하는 가해자인 동시에 피해자인 것이다. 불행하게도 모두가 세뇌됐고, 심심함, 지루함을 잃어버린 만성적인 피로사회가 돼버렸다.


물론 성실함과 노력은 권장해야 할 덕목이다. 하지만 늘 경쟁에 쫓기며 살고, 경험의 지혜보다도 수치화된 효율을 신봉하고, 타인의 평가에 조바심을 내야 하는 것이 좋은 삶인가. 무엇보다 스스로의 성과에 불만족하며 자신을 더욱 채찍질하는 것이 성실과 노력이라면 과연 누구에게 덕이 될까. 경쟁, 효율성, 성과주의 등의 신화 속에서 일터, 학교, 가정, 나아가 삶 전체가 너무 팍팍해졌다. 신자유주의와 디지털 미디어로 무장하고 학생이고 어른이고 모두가 살벌한 전사가 돼버렸다.

오죽하면 뇌에 휴식을 주자고 ‘멍때리기 대회’가 등장했을까. 요즘 유행하는 ‘소확행’이란 말도 이런 틈바구니에서 나왔다고 본다. 삶 전체를 확실한 행복으로 만들기 역부족인 현실 속에서 소소한 행복의 가치에 주목하자는 것이 아닐까.

삶의 일상조차도 즐기는 것이 아니라 ‘처리’하려고 하는 태도에서 벗어나 작은 일탈과 행복감을 회복하자는 것이다. 내 안의 나를 잘 돌아보고, 마음에 여백을 만들라는, 꽉 조여진 나사를 조금만 풀라는 뜻이다. 그래야 옆사람도 보이고 비로소 미소도 나눌 수 있을 것이다.


혁신적 아이디어는 쳇바퀴 돌 듯 일할 때가 아니라 빈둥거릴 때 나온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문화인류학자 제네비브 벨은 “지루함을 느끼는 순간에 뇌는 스스로를 돌아보고 새롭고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떠올릴 수 있도록 한다. 결국 지루함은 한없이 매력적인 주제이며 인간에게 이로운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미 100여 년 전에 철학자 하이데거는 ‘지루함을 잠재우려고 하기보다 지루함을 깨어나게 해야 한다’고 했다.


“아이, 심심해”라고 말해본 적인 언제인가?

잃어버린 지루함, 심심함을 되찾는 것이 우리의 당면한 목표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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