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금요일 저녁 상견례를 했다. 상견례는 부산의 한정식집에서 진행되었다.
우리 커플은 결혼 준비하면서 흔히 겪는 의견 충돌이 거의 없었다. 5년 넘게 연애하면서 이 사람과 결혼해도 되겠다는 확신이 있었고, 덕분에 결혼 전 우울증(Marriage blue)을 겪으며 날을 세우는 일이 없었다. 또 우리 둘 다 부모님께 독립한 지 오래되어, 부모님으로부터 정서적/경제적 독립하는 과정이 필요 없었던 점도 도움이 되었다. 결혼 준비에 부모님 도움을 전혀 받지 않았고, 감사하게도 부모님들도 특별히 원하는 바가 없으셔서 웬만한 예단과 예물은 대부분 생략했다. 그 외에 예민한 문제는 상견례 전에 각자 부모님과 합의해놓은 상태였다. 언뜻 보기에는 결혼 준비가 이렇게 순탄할 수가 없었다. 상견례도 양가가 하하호호 덕담만 나누면 될 것 같다.
나는 국가에서 인정받은 "장애의 정도가 심한 장애인"이다.
내 장애가 문제였다. 남자친구는 병역 의무를 끝낸 신체 건장한 청년이다. 이번 상견례는 장애인 딸을 시집보내느라 죄인이 된 우리 부모님과 휠체어 탄 장애인 며느리를 맞이해야 하는 남자친구 부모님의 만남이었다.
아들이 진지하게 교제하는 여자친구가 다리를 전혀 움직이지 못해 휠체어를 타는 장애인이라고 들었을 때, 남자친구 부모님 심정이 어땠을까. 남자친구는 그 전달 과정을 내게 온전히 전하지 않았다. 그 또한 부모님께 나의 장애를 알리기까지 얼마나 갈등했을까. 남자친구 부모님의 솔직한 심정이 어떤지는 알 수 없지만 두 분께서는 ‘둘이 좋다는데' 라며 우리 만남을 인정해주셨다. 우리 부모님도 예비 사돈의 심경을 모를 리 없었다.
상견례 자리에서 엄마는 연신 큰 결심 해주셔서 감사하다 했다. '큰 결심'이란 휠체어 탄 며느리를 받아들이기로 한 결정을 뜻할 것이다. 과거에 엄마는 남자친구 가족이 나와의 교제를 반대하거든 시집가지 말고 혼자 살라고 했다. 네가 뭐가 부족하냐며, 그런 대우받고 살지 말라고 하던 사람이었다. 남자친구 부모님은 ‘둘이 좋다는데 잘 살면 되죠.’를 여러 번 말씀하셨지만, 내게 항상 큰 소리 뻥뻥 치던 엄마도 예비 시어른 앞에서는 한없이 작아졌다. 엄마는 예비 시어른께 주변에서 무슨 말이 나오더라도 잘 막아달라고 부탁했다. 시부모님이 좋은 분이라고 해도, 주변에서 손가락질하고 걱정하는 이야기에 휩쓸릴 수 있기에 하는 부탁이었다.
나 또한 결혼하기 전에 가장 우려하던 부분이었다. 잘 지내다가도 나를 보며 “쯧쯧” 혀를 차는 사람, 초면에 불쌍해서 어떡하냐고 하는 사람, ‘휠체어 언제까지 타요?’라는 질문을 던지고 계속 타야 한다는 대답에 탄식을 금치 못하는 사람, 천국 가면 휠체어 안 타고 걸을 수 있다는 사람 등 별별 사람을 마주할 때마다 무척 혼란스럽다. 사회가 나를 ‘불쌍하다' 여기는데 혼자 당당한 척, 잘 사는 척 합리화하는 건 아닌가 해서 말이다. 이런 데 무뎌진 나조차 가끔 무너지는데, 시부모님은 어떨까 싶었다.
짐작은 했지만, 상견례에서 남자친구 아버님이 한 번도 말씀해주시지 않았던 이야기를 꺼내셨다. 얼마 전 남자친구 할머니께 손자며느리 될 친구가 다리를 움직이지 못한다는 이야기를 드렸다고 했다. "아이고, 어쩌겠노. 어쩔 수 없지." 하시다가도 "그래도 다리가 그래가 어떡하노." 아버님이 담담히 말씀해주신 남자친구 할머니의 반응은 그 시절을 90년간 살아낸 분이 보일 수 있는 가장 너그러운 것이었다. 휠체어를 타면서, 어릴 때부터 장애를 앓았던 40대 이상 장애인을 만날 기회가 종종 있다. 그분들은 “어릴 땐 집에서만 갇혀 지냈는데, 세상 참 좋아졌다.”라는 이야길 한다. 90년대까지도 가족 중에 장애인이 있으면 부끄러워하거나, 장애인이 집 밖에 나가면 손가락질하는 문화가 있었다고 한다. 그런 사회 분위기에서 삶의 대부분을 살아오신 할머님이 그 정도 말씀으로 끝내신 것만으로 참 감사한 일이다.
상견례가 끝나고 예비 시부모님께서 내 손을 꼭 잡아주셨다. 두 사람이 잘 살면 된다고. 우리 부모님, 그리고 예비 시부모님 마음이 어떠셨을까. 인식이 바뀌었다고 하더라도 그 시절을 살아오신 분들이기에 딸이자 며느리인 내가, 그리고 우리 두 사람이 걱정되실 것 같다. 그럼에도 우리 두 사람, 상견례까지 무사히 마쳤고 앞으로도 잘 살아보려고 한다. 내 손 잡아주신 그 손길 잊지 않으며, 효도하는 마음으로 살아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