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들어가서 씻고 저녁 먹자!"
"딱 10분만 응?"
"알았어. 딱 10분 만이야."
벌써 3시간 째다. 노래방도 아니고 10분 연장은 도대체 몇 번째인가? 해가 짧아져서 앞이 잘 보이지도 않는데 놀이터에 남은 아이 넷은 서로를 쫓고 쫓느라 들어갈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마침 아이를 찾으러 온 한 엄마의 기세에 힘입어 겨우 달래 데리고 들어왔다. 엘리베이터에서 보니 흥건한 땀이 등과 목은 물론이고 이마를 타고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렇게 아이는 오늘도 영혼을 하얗게 불태웠다.
들어가자마자 딴짓을 하려는 아이를 살살 꼬셔 옷을 벗겼다. 욕조에 넣어 물을 틀어주니 물놀이를 시작한다. 아이가 노래를 흥얼거리며 자신만의 시간에 빠져 있는 사이 주방으로 가 씻어둔 쌀을 안치고 불 위에 올리고, 간단하게 국을 끓이고 만들어 둔 반찬들을 냉장고에서 꺼내 그릇에 차례차례 담는다. 아이가 동선을 따라 마구잡이로 벗어둔 옷가지들을 따라가며 하나씩 걷어 세탁기에 넣는다.
아무리 발에 땀나게 뛰어다녀도 발 냄새 한 번 없더니 여덟 살이 되자 확실히 발에서 고린내가 나기 시작했다. 실내에 들어오면 내 아이라도 참기 어려운 냄새가 난다. 아이가 신은 양말을 애벌빨래해서 세탁기에 넣는다. 여름 내내 고무 재질로 된 발걸이 달린 슬리퍼를 신어서 편하게 보냈는데 이젠 더 이상 미룰 수가 없다. 돌아오는 주말에는 꼭 운동화를 빨아주어야겠다고 중얼거리면서 주방으로 돌아간다.
토요일이 되었고 아이의 운동화를 빨았다. 어린 시절 하던 방식대로 사용하던 칫솔에 물을 적당히 묻히고 빨랫비누를 싹싹 긁어 거품이 나기 시작하면 운동화를 구석구석 비벼 씻는다. 놀이터를 누비며 묻혀 온 온갖 흙먼지들이 비누거품에 씻겨 내려가며 운동화가 점점 말끔해진다. 스며들어 있던 고린내도 비누향기에 사라졌다. 다시 비누를 묻히고 헹궈 짜기를 반복하며 운동화 세탁을 끝냈다.
엄마는 어느 순간부터 운동화 빨래를 스스로 하게 하셨다. 다 컸으니 스스로 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는데 당시에는 입이 튀어나온 채 불평불만을 일삼으며 겨우 했다. 실내화며 내 운동화를 빨아야 할 때면 '누가 대신 좀 안 빨아주나?' 생각하며 미루고 미뤘다. 내가 대학을 졸업하고도 한참 후에서야 돈을 주면 말끔히 운동화를 세탁해 말려주는 서비스가 생겼지만 그땐 어림도 없었다.
그런 내가 지금 아이의 운동화를 스스로 빤다. 세탁소에 가져다줄까 하다가 비용도 아깝고 주말에 빨면 찾아오는데 시간도 걸려서 직접 빨기로 했다. 빨아서 제습기로 말리면 금세 마르고 더 편하다. 여분 운동화를 구매했는데 아이가 편한 것만 계속 신으려고 해서 소용이 없었다. 1주일에 한번 빨아서 말려 신는 수밖에. 확실히 자주 빠니 고린내도 한결 나아졌다.
결혼 초 남편에게 확실하게 선언했다. '와이셔츠를 빨아줄 수는 있지만 다림질까지는 못 해준다.'라고. 업무상 양복과 와이셔츠를 입고, 넥타이를 매야 하는 남편은 1주일에 2-3벌의 셔츠 빨래가 나온다. 목이나 팔목 등의 때를 지우는 애벌빨래도 충분히 번거롭기에 셔츠 다림질은 스스로 할 일이라고 처음부터 선을 그었다. 그는 한 벌 990원(요즘은 1200원)에 세탁과 다림질을 해 주는 세탁소에 몇 번 가더니 맡기고 찾아오는 일도 번거로웠는지 어느 순간부터 스스로 다림질을 하기 시작했다.
아이는 되고 남편은 안 되는 이유는 아직 아이가 어리기 때문이기도 하고, 평생 여성의 노동을 주로 받고만 살아온 남편이 적어도 가정을 꾸린 이후, 할 수 있는 일은 스스로 해결하길 바라는 마음 때문이기도 하다. 아이가 열 살이 되면 운동화나 실내화 빠는 일은 직접 시켜볼까 한다. 돈만 내면 얼마든지 세탁 서비스의 혜택을 누릴 수 있는 시대지만, 누군가의 노동으로 나의 편리함을 대체하는데 무감각해지다 보면 그 무게를 이해할 수 없을 테니까. 새로운 시대를 살아갈 남자아이에게 그 무게와 의미를 차근차근 알려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