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시작은 <나의 할머니에게>라는 소설집에 실린 백수린의 <흑설탕 캔디>로부터였다. 아빠의 해외 부임으로 할머니, 동생과 함께 프랑스에서 한 시절을 보낸 내가 그 시절 미처 눈치채지 못했던 할머니의 로맨스를 남겨진 일기로 짐작하는 이야기다. 그 이야기 속 젊은 날의 할머니가 연주했다던 슈만의 크라이슬레리아나 Op.16의 2악장은 작가가 이 작품을 쓰는 동안 영감이 되어 주었다고 했듯이 곧 내 앞에 펼쳐질 미지의 자유로운 시간을 앞두고 마음이 한가득 부풀어 오른 새벽마다 고요히 하지만 격정적으로 흘렀다.
호로비츠, 마르타 아르헤리치, 손열음과 예브게니 키신, 알프레도 코르토의 연주를 돌려가며 들었다. 8개의 악장으로 이뤄진 이 곡을 수없이 반복해서 듣는 사이 나는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어떤 감각을 서서히 되찾아 가는 중이었다. 기호에 지나지 않는 음표를 손으로 눌러 찰나 동안 실재했다 곧 사라져버리는 아름다운 무언가로 바꾸는 일, 바로 피아노 연주였다. 하루하루 크라이슬레리아나를 들을 때마다 일을 하거나 글을 쓰기 위해 자판을 두드리는 손끝이 만들어낼 수 있는 다른 일을 상상하며 기분좋은 현기증을 느끼고는 했다.
아이가 학교에 간 뒤 매일 피아노를 칠 생각을 하자 마음부터 둥실 떠올랐다. 오래되긴 했지만 체르니 50까지 배웠으니까 열심히 연습하면 휴직 끝날 때 즈음 크라이슬레리아나 2악장 정도는 더듬더듬 칠 수도 있지 않을까? 설렘으로 가득 차 집근처 피아노 학원 몇군데를 알아보았다. 성인 레슨은 주2회가 최대였고 레슨비도 생각보다 비쌌다. 부푼 풍선 같이 들떴던 마음이 현실을 생각하자 쪼그라들었다. '아이 학원을 하나 더 보내는 게 낫지 않을까? 결과가 확실한 일을 하는 게 합리적이지 않을까?' 고민이 꼬리를 물었다.
그때 오래 글쓰기를 같이 해 온 글벗이 말했다. "한 달만 해 보면 어때요? 아니다 싶으면 그만 두면 되니까."
그 말에 용기가 났다. '그래, 일단 해 보자.' 는 생각으로 염두에 두었던 피아노 학원 문을 열고 들어갔다. 키도 눈도 큰 서글서글한 인상의 원장님이 나를 맞아주었다. 한 달에 총 여덟 번, 매주 월, 목 9시부터 1시간, 레슨 35분에 연습 25분을 하기로 했다. 일주일에 고작 두 번인데 연습마저 고작 25분이라니 아쉬움이 가득했지만 속마음과 다르게 원장님께 말했다. "잘 부탁드립니다."
그렇게 나는 피아노를 치기로 했다. 마치 오랜 꿈을 꾸듯 머릿 속에서 거듭 재생되는 슈만의 '크라이슬레리아나'가 남긴 잔상과 감각에 이끌려. 예고에 가서 작곡을 배우면 어떻겠느냐는 원장님의 권유가 있었지만 가정형편 때문에 깨끗하게 포기하고 연합고사를 코 앞에 둔 어느 날, 아쉬움을 가득 안고 피아노 학원을 그만 둔지 28년 만에 다시 시작하는 피아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