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늘 바빴다.
때론 아이를 방치했고 그러다가 조바심에
닦달했다. 생활전선으로 뛰어들기 직전
부랴부랴 자녀들의 입에 음식을 욱여넣고
도망치듯 집을 나섰다.
음식도 신앙도 나의 모든 것들은 재빠르고 발빠른 엄마의 욱여넣음으로 처리되었다. 엄마는 자녀에게 이걸 왜 먹고 이걸 왜 믿어야 하는지 일일이 이해시키고 가르칠 시간이 없었다. 일단 넣었으니 되었다. 소화하고 소통할 여유까지 생각할 여력이 없었다.
아주 뒤늦게서야 그 욱여넣음이 엄마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음을, 그 덕분에 내 삶이 가이드라인 바깥으로 넘어가지 않을 수 있었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나의 한계를 마주한다. 욱여넣느라 대화 한마디 제대로 못한 어린아이가 고스란히 나에게 그대로 있음을, 이제는 천천히 씹어먹고 소화해도 괜찮다고 말해주어야 함을, 모르면 모른다고, 어려우면 어렵다고, 싫으면 싫다고 선명히 말해보라고 부드럽게 속삭이는 새로운 사랑이 시작된 것 같다.
이걸 알 수 있게 한 눈 또한 엄마의 오랜 시간 기도 덕분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