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공원 Aug 24. 2020

내 인생 구하기

'내던져진' 삶에서 스스로 설계한 미래를 향해 '내던지는’삶으로

전반적인 어조는 "정신차려라!". 거의 혼내는 듯한 말들이 계속되기 때문에 읽는 사람에 따라서는 못마땅하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이렇게 그냥 흘러가는대로 살면 안될 것 같아'라는 고민을 하는 사람이라면, 그런데 다른 여러 책, 강연에서 "이대로도 괜찮아, 잘하고 있는 거야"라는 말을 듣고는 '나는 아닌 것 같은데...'라며 갸우뚱 했던 사람이라면 자극제 정도의 역할을 해줄 수 있는 책.


하지만 그 이상의 소장가치가 있는 것 같진 않다. 그래도 산다면, 작가의 전작인 <시작의 기술>이 좀 더 낫겠다. 이 책보다 좀 더 구체적이고, 이 책에서 다루는 테마는 어차피 동일하게 다루어지니.



밑줄 긋기


당신의 어떤 모습이 싫다고 해서 바로 다른 모습이 될 수는 없다. 필요한 과정을 막 건너뛸 수는 없다. 그건 정서적으로 보면, 마치 친구가 오기 전에 얼른 죽은 바퀴벌레를 카펫 밑으로 쓸어 넣는 것과 같다. 겉으로는 멀쩡해 보여도 마음속으로는 죽은 바퀴벌레가 거기 있다는 사실을 당신은 알고 있다.


자기 수양이란 스스로 하겠다고 말한 일을 정말로 하고 싶지 않을 때조차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부정적인 기분이 들 때조차 긍정적인 행동을 하는 것이다.


'나는 할 일을 뒤로 미루는 사람이에요'라고 말할 게 아니라, '나는 할 일을 뒤로 미뤄요'라고 말해야 한다. 당신은 어떤 '사람'이 아니라, 어떤 '행동'을 할 뿐이다. 그렇기에 그게 당신이 하는 행동에 불과하다면, 다른 행동을 하면 된다. 이것은 건강상의 특징이나 질병 내지는 당신이 '갖고 있는' 무언가가 아니다. 망할 놈의 '병'이 아니다.


영혼은 자신의 '생각'이라는 색깔에 물든다.


당신의 성공을 뚜렷이 정의할 수 없다면 절대로 그 성공을 되풀이할 수도 없을 것이다.


당신이 '진실'이라고 가리키고 있던 것(어린 시절부터 바로 5분 전까지 일어난 모든 일, 모든 장면, 모든 사건, 기쁨, 속상함)은 하나의 '시각'에 불과하다. 그것은 유일무이한 진실이 아니다. 그것은 내던져진 삶에 참여하는 하나의 방식에 불과하다. 누구나 그런 방식이 있다.


파티나 모임을 회피하면서 내가 저들을 싫어하기 때문이라고 말하는가? 실은 '나는 어울리지 않아' 혹은 '나는 유별나', '나는 충분하지 않아'같은 겨론에서 오는 불편함과 압박감 때문에 모임을 피하는 건 아닌가? 까발려지는 것이 두려운 사람은 그렇게 할 수도 있다.
"우리는 평생 갇힐 인생의 사슬을 스스로 만든다."
-찰스 디킨스


당신은 바로 그곳에서 인생과 만난다. 인생을 보고, 냄새 맡고, 만지는 방식은 모두 거기서 때로는 영감을 얻고 때로는 영감을 잃는다. 당신이 마주치는 모든 사람, 모든 사물과 교류하는 곳이 바로 그곳이다.

나는 이것을 관점이 아니라 당신의 '경험점 point of experience'이라고 부른다. 마치 구글맵에 찍어놓은 핀 같이, 당신이 모든 것을 경험하는 장소 말이다. 당신만의 뚜렷하고 독특한 출발점인 셈이다. 당신이 갖고 싶은 미래가 어떤 것이든, 당신은 늘 익숙한 이 지점에서 출발한다.


인생은 겨우 한두 시간 사이에 투쟁과 해피엔딩이 모두 일어나는 영화가 아니다. 영화가 아니기 때문에 지루한 부분에서 잠이 들 수도, 유혈이 낭자할 때 눈을 가릴 수도 없다.

"조급함은 불가능한 것을 요구한다. 목표를 이루는 데 필요한 수단도 없이 목표에 도달하고 싶어 한다. 기나긴 여정을 견뎌야 하는 이유는 모든 순간순간이 꼭 필요하기 때문이다."
-게오르크 빌헬름 프리드리히 헤겔

먼저 애쓰고 버둥거리기를 그만둬라. 그리고 지금 있는 그곳을 받아들여라. (...) 경험점을 극복하려는 시도는 부질없다.


당신은 당신 무의식의 어두운 부분들을 무시할 수 없다. 그것들을 억누를 수 없다. 그것들은 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것들을 사라지게 만들거나 어떤 식으로든 바꿔보려고 시도하면 그것들은 종종 더 악화하거나 더 뚜렷해지기도 한다.
(...)
그것들에 관해 아무 얘기도, 아무 행동도 할 필요가 없다. 그냥 있는 그대로 둬라.


우리가 자신의 결론으로부터 도망치기를 그만둬야 하는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다. 결론들을 부정하거나 회피하거나 혹은 끝없는 노력을 통해 극복하려는 시도를 그만둬라. 당신의 결론 속으로 파고들어 가라. 결론들을 조사하고 탐구하라. 지도 위에 당신의 경험점이 어디인지 찾아내라.

그렇다. 전부 다 인정하라. 그 결론들은 당신의 일부일 뿐, 전부가 아님을 깨달아라.


인정은 연습이다. 의식적인 훈련이다. 기계적인 반응과 여러 촉발제로부터 당신을 자유롭게 하라고, 스스로에게 약간의 공간을 내어주어 자기 방해와 자기 회의로부터 자유로운 인생을 만들라는. 때로는 매일, 매시간, 매분마다 자신을 일깨우는 행동이다. 그래야만 인정이 허용한 공간에서 살 수 있다.


끝에서부터 시작하라.


미켈란젤로는 대리석을 깎아 조각상을 만든 것이 아니라 대리석 덩어리에서 '다비드'가 아닌 것을 모조리 제거하는 방법으로 조각상을 완성했다고 한다.
(..)
그는 매일매일이 조각가였다. 언젠가 조각가가 되려고 노력한 게 아니었다. 그는 조각가라면 가질 만한 문제들로 자신의 삶을 채웠다.


마르틴 하이데거는 내가 내던져진 방식을 이해하고 나면 인생이 활짝 열릴 거라고 생각했다. 그때까지는 '내던져짐'이 내 정체성을 규정한다. 하지만 그게 작동하는 방식을 알고 나면 진정한 자유를 찾을 수 있다.


당신은 이런 행동을 하루에 두 번 해야 할 수도 있고, 하루에 200번 해야 할 수도 있다. 진정한 변화는 그렇게 해야 만들어진다. 정말로 원하는 것을 위해 진지하게, 모든 것을 걸고, 송두리째 자신의 존재를 던져야 한다. 특히나 당신이 패배했을 때, 우울할 때, 혼란스러울 때, 또는 어떤 식으로든 스스로를 배신할 핑계를 찾고 싶을 때는 더욱


실수를 했다는 사실 자체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돌덩이를 계속 조각해 이미 존재하는 미래를 만들어나가는 일이다. 당신이 설계한 미래를 존중하는 것이다.

다비드는 이미 미켈란젤로의 마음속에 있었다. 그가 한 일은 자신이 만든 미래를 드러낸 것이다. 지금 당신이 해야할 일도 그것이다. 미래를 드러내라. 한 번에 한 조각씩, 매일매일 드러내라.


당신은 망가지지 않았다. 고칠 것은 아무것도 없다. 당신은 고쳐야 할 의자가 아니다. 거기서 나와 당신의 미래를 드러내라. 당신의 미래를 위대한 무언가로, 인생을 바칠 만한 무언가로 만들어라.





참고로 <시작의 기술>은 비슷한 주제의식에 대해


나는 의지가 있어.

나는 이기게 되어 있어.

나는 할 수 있어.

나는 불확실성을 환영해.

생각이 아니라 행동이 나를 규정해.

나는 부단한 사람이야.

나는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고 모든 것을 받아들여.


와 같은 7가지 단언을 외칠 것을 제시하고, 이를 기준으로 하나씩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매거진의 이전글 기술이 발전한 미래 세계에서, 인간답게 살아가는 방식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