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월 31일, 지금 이 시간 전 세계 주식시장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핫이슈-게임스탑 사태! 이 난리의 결말이 어떻게 될지는 아직 확신할 수 없지만, 이 사건은 주식의 ㅈ도 모르는 내가 봐도 주식의 역사에 길이 남을 야화가 될 것임이 틀림없어 보인다.
게임스탑(GameStop)은 미국의 한 게임 소매업체다. 전국에 여러 개의 오프라인 점포를 갖고 있는 이곳은 주로 신작이나 중고 게임 타이틀을 판매하는 곳으로, 한때 무척 성장했었으나 지금은 온라인 플랫폼들에 밀려 시장에서 사라지고 있는 작은 업체에 불과하다. 하지만 약 2주 전, 게임스탑이 오프라인 소매업을 중단하고 온라인으로 옮겨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자 겨우 주당 4달러 수준이었던 주가가 단기간에 40달러까지 올랐다.
이때 미국의 몇몇 헤지펀드들이 개입하면서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상승한 주가가 곧 추락할 것이라 생각한 일부 헤지펀드들과 기관 투자자들이 대량으로 게임스탑 주식에 공매도를 걸었다. 공매도란 갖고 있지 않은 주식을 빌려서 판매하는 행위로, 주식 가격이 떨어지면 그 차익을 취한다. 한마디로 특정 주식이 곧 하락할 것임을 예상하고 거기에 베팅하는 거라고 보면 된다. 주로 공매도는 주가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헤지펀드나 기관들이 종종 시행하여 어마어마한 수익을 남기곤 한다. 하지만 이번에는 해당 펀드 운용사들에게 최악의 결과를 불러오고 말았다.
일부 헤지펀드 관계자들이 "게임스탑은 이미 망한 기업이나 마찬가지"라며, "지금 게임스탑 주식을 사는 사람은 멍청이"라는 발언을 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공매도 세력들에게 오랫동안 불만을 갖고 있던 미국 전역의 시민들이 크게 분노했고, 이들에게 복수할 궁리를 하기 시작했다. 여기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로, 월스트리트의 헤지펀드 및 투기 세력들은 지난 2008년 서브프라임 사태의 주범이었음에도 선량한 시민들에게 천문학적인 피해를 떠넘기고서 법적인 책임도 요리조리 피해서 빠져나가버렸다. 이른바 먹튀를 해버린 이 비양심적인 금융인들에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강한 반감을 갖고 있었다.
둘째로, 그들이 이번에 공매도를 건 게임스탑은 많은 사람들이 어릴 때부터 게임을 즐기기 위해 들르던 추억이 있는 곳이었다. 그런데 공매도 세력이 게임스탑을 희생량으로 삼아서 또다시 크게 한탕해 먹으려 한다는 소식이 레딧(미국의 온라인 커뮤니티)에 퍼지자, 이에 분노한 시민들이 금전적 손해를 감수하고서라도 게임스탑 주식을 구매해서 주가가 떨어지지 않도록 방어하기 시작한 것이다.
처음엔 거대 자본을 등에 업은 공매도 세력 앞에서 아무리 개미들이 모여봤자 별 소용이 없을 것으로 보였지만, 무려 300만 명이 넘는 개인 투자자들이 단시간에 주식을 사들이자 주가가 급등하기 시작했다. 또한 전기자동차회사 테슬라의 오너인 일론 머스크도 예전에 공매도 세력에게 놀아난 전적이 있었던지라, 트위터를 통해 개미들을 응원하며 공매도 세력에게 강력한 카운터 한 방을 먹일 것을 독려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일론 머스크의 트윗은 강력했었다. 하지만 도지코인 이후로 그는...)
겨우 2주 만에 게임스탑의 주가는 700%나 상승했다. 1월 초와 비교하면 상승폭은 한때 최대 1,600%에 달했다. 공매도를 걸었던 헤지펀드 운용사들은 거의 1천억 달러, 약 100조 원에 이르는 어마어마한 손실을 떠안을 수밖에 없게 됐다.
사실 공매도는 순기능보다도 작전세력들에 의해 악용될 가능성이 더 높다는 문제제기와 함께 오래전부터 끊임없이 논란의 대상이 되어왔었다. 국내에서도 기관들과 외국인 투자자 등의 큰 손들이 공매도를 악용해 개인 투자자들과 상장기업들의 피를 빨아먹는다는 비판이 항상 제기되고 있었다. 오늘날 주식시장의 룰은 현실적으로, 그리고 암묵적으로 이 세력들이 공매도로 이득을 취하는걸 막기 어렵게 되어 있었는데, 이번에는 그들의 작전이 제대로 망쳐져버린 것이다.
상식적으로는 공매도가 걸려서 곧 하락할게 분명한 주식을 구매할 바보는 없기에, 오랫동안 월스트리트에서는 이를 이용해 개미들의 피를 빨아 단기적으로 큰 수익을 얻으려 공매도 제도를 애용해왔다. 그런데 이번에는 시민들의 푼돈들이 모여서 거대 헤지펀드를 이겨내는 현상이 일어난 것이다. 온라인 커뮤니티 레딧에서는 일종의 정의구현을 일구어낸개미들이 승리의 환호성을 올리고 있고, 월스트리트에서 가장 가까운 이스트 리버와 브루클린 브릿지 주변의 수온을 언급하는 드립을 신나게 치고 있다. 특히 사태 초기에 게임스탑 주식을 다수 매입한 일부 투자자들은 급등한 주가로 인해 2주 만에 수백억 원을 벌었다.
하지만, 이번 사태의 후폭풍은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이다.
우선, 미국에서 개인 투자자들이 많이 사용하는 무료 증권거래 앱 로빈후드는 이번에 금융거래 조작 등의 위법 혐의로 금융당국의 조사를 받게 됐다. 게임스탑의 주가가 계속 오르자, 로빈후드에서 갑자기 아무런 공지도 없이 게임스탑 주식의 구매 버튼을 일방적으로 비활성화시켜 닫아버렸기 때문이다. 작전 세력 측이 로빈후드 운영에 직접 개입하여 일반인들이 주식을 더 구매하지 못하도록 압력을 행사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강하게 일고 있다. 로빈후드 측에서는 갑자기 급등한 거래량으로 인해 증권거래를 위한 의무 예치금이 갑자기 10배나 올랐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던 조치였다고 뒤늦게 해명했다.
레딧에 제보된 로빈후드의 스크린샷. 게임스탑 주식 구매 버튼이 비활성화되어있다.
로빈후드는 다음날 게임스탑 주식의 구매 버튼을 원래대로 재활성화시켰지만, 헤지펀드 측과 물밑 접촉이 있었을 거라는 강한 의혹 때문에 조만간 수사를 받을 예정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어플 사용자의 대부분인 개인 투자자들에게서 신용을 잃었다는 것이 가장 큰 타격일 것이다.
과연 이번 사태가 단순히 개미투자자들의 완전한 승리로 끝날까? 안타깝게도 그렇지만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처음에 개미들은 그저 사악한 월스트리트의 작전 세력들에게 빅엿을 먹이겠다는 일념 하나만으로, 투자금을 잃을 것을 감수하고 주식을 구매했을 테다. 하지만 곧 공매도 상환 기간이 종료되어 헤지펀드가 발을 빼고 나면 다시 게임스탑 주가는 원래 가격이었던 4~40달러를 향해 곤두박질 칠 것이다. 그 과정에서 적당한 높이에서 손을 빼는 소수의 사람들을 제외하고, 단타 싸움에 밀린 수많은 개인 투자자들은 큰 손해를 입을게 자명하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최소 수십조 원의 피해를 입은 헤지펀드와 기관들이손해를 만회하기 위해 가진 주식을 일제히 매도하면 주가는 대폭 하락할 것이다. 그 여파는 우리나라를 비롯한 전 세계 주식시장에도 영향을 끼치게 된다.
한편 미국의 금융당국은 난감한 상황에 빠졌다. 지금까지 손 놓고 있었던 공매도 제도에 대한 대대적인 손보기에 들어가야 할지 말지, 그리고 주가 폭락을 막기 위해 헤지펀드들에게 금융지원을 해줘야 될지 말아야 할지를 두고 고심 중이다. 이번 사태의 대처 방향에 따라 신임 대통령 조 바이든의 집권 초기 지지율이 요동치게 된다. 우리나라에서도 해외주식 구매 열풍이 부는 와중에 터진 이번 사태를 보고, 덩달아 게임스탑과 AMC 엔터 등의 관련 주식을 매수한 국내 투자자(서학 개미)들도 많다고 한다.
과연 이번 사태를 통해 공매도 제도 자체가 큰 변화를 겪게 될지, 아니면 찻잔 속의 태풍으로 별 영향 없이 마무리될지는 아직 더 지켜봐야겠지만, 오랫동안 이어져온 기존 주식시장의 공식이 순식간에 무너졌다는 점, 그리고 그것이 일반인 투자자들에 의해 이뤄졌다는 점에서 이번 사태는 많은 후유증을 남길 듯하다.
이상, 평생 주식이라고는 1원어치도 사본적 없지만 항상 주식시장을 주시하고 있는 주알못의 정리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