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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옌데 Mar 07. 2021

정말로 더운 나라 사람들은 일을 열심히 안 하나요?

사람이 아니라 제도가 문제다

  브라질 사람들의 식과 문화는 한국과는 달라도 너무 다다. 15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상파울루에서 살면서 한국입장에서는 도무지 이해하지 못할 답답한 상황도 많이 겪었지만, 이러한 '다름'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많은 걸 배우기도 했다.


  브라질에 출장을 가거나 무역을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남미 사람들 노동을 대하는 태도와 가치관 궁금해 한다. 정말로 더운 나라 사람들은 일을 열심히 안 할까?


  사실 국민성 꽤 민감 주제다. 특히 선진국보다 개발도상국을 언급할 때 더욱 조심스럽다. 약간이라도 부정적인 뉘앙스가 섞이면 곧장 외국인 비하나 차별 발언으로 받아들여지기 일쑤다. 하지만 최대한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사례들에 내가 15년간 직접 겪은 다양한 경험을 추가한다면 이 글의 신뢰도가 좀 더 높아지지 않을까 싶다.


  한 나라의 국민성은 길고도 긴 시간 동안 축적되어 생 개념이지만, 반화는 절대 금물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대다수의 브라질 사람들이 지닌 특징을 다뤄보고, 이를 바탕으로 한국 사회를  객관적 시선으로 바라보는 게 이 글의 목적임을 알아두었으면 한다.




  한국인들이 브라질에서 가장 답답해 하 느려터진 업무 처리 속도다. 브라질에서는 일반 사기업에서부터 공기관에 이르기까지 대체로 모든 일처리가 한국보다 훨씬 느리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 2020년 세계은행 통계따르면, 사업하기 좋은 나라 랭킹에서 브라질은 190개 국가 중 124위를 차지하고 있다. (고로 한국은 5위였다.) 한국에서 개인사업자 등록을 신청하면 최발급까지 빠르면 하루, 늦어도 이틀 정도가 소요된다. 하지만 브라질에서는 평균 180일이 걸린다는 걸 안, 사업가들이 쉽사리 브라질 시장 진출할 엄두 못한다.


  브라질은 복잡한 형태의 연방제 공화국이다. 수도 브라질리아의 연방정부, 27개의 주정부, 그리고 5,570개의 시정부로 구성된 3단계의 행정 구조를 갖고 있다. 각의 주정부가  다른 세율과 독립된 사법체계를 갖고 있어서, 행정 처리 및 관리가 아주 어렵고 복잡하다. 한국 정부가 2002년부터 도입하고 발전시켜온 온-나라 BPS 행정관리 시스템이나, 대민서비스에 특화된 정부24 포털과 같은 빠르고 편리한 디지털 정을 아직 라질에서는 기대하기 어렵다. 지금도 여전히 거의 모든 지방 정부 아날로그 행정을 고수하고 있다.


  오래전부터 주정부에서 디지털 거버넌스 도입 시도 있었지만, 고질적인 예산 문제와 기존의 경직된 공무원 조직의 반발에 부딪혀 번번이 무산되고 말았다. 그럼에도 계속해서 정부 대민 시스템 디지털화 사업을 벌이고는 있지만, COVID-19의 확산을 제대로 막지 못한 브라질 정부의 예산과 행정력이 거의 바닥난 상태다. 당분간 국민들이 체감할 정도의 선진 행정 시스템을 빠른 시일 내에 갖추기는 어려워 보인다.


  정부는 그렇다 치고, 기업들은 어떠한가. 브라질 기업과의 협업을 위한 주재원 미팅에 통역으로 참여한 경험이 많다. 현지에서 미팅을 잡고 사무실을 찾아갈 때면 매번 담당자가 자리를 비우고 있기 일쑤였다. 왜 자리에 없는지를 물어봐도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다. 담당자가 돌아오길 하염없이 기다리다 보면 그 다음에 잡아놓은 일정들 전부 뒤로 밀리는게 흔한 일이었다. 뒤늦게 담당자가 나타났을 때 늦어서 미안하다는 형식적인 사과라도 한다면 그나마 다행이다. 말도 없이 자리를 비운 이유도 알고 보면 자기 집 월세나 공과금을 내러 은행에 다녀왔거나, 근처 카페에서 잠깐 지인을 만나고 오는 등의 사소한 일들이다.


  이걸 이해하려면 아직도 브라질에는 브라질리언 타임이라는 변수가 존재한다는 걸 알아야 한다. 90년대까지도 한국에 존재하던 일명 '코리안 타임'의 브라질 버전이다. 브라질에서는 공적 업무를 제외하면 개인 간의 약속 시간에 너무 정확하게 맞춰서 도착하는 건 례가 될 수도 있다. 보통 15분에서 30분, 길게는 두세 시간 정도 늦 오기도 한다. 다가 원치 않잡힌 약속일수록, 소에 일부러 늦게 타나는 경향이 있다.


  내가 브라질에서 학을 다닐때도 비슷한 상황을 많이 겪었다. 그룹과제를 하려고 오후 3시에 학교 도서관에서 다 같이 모이기로 약속을 잡아놓으면, 나의 친애하는 동기 녀석들은 대충 5시쯤에 느지막이 나타나곤 했다. 그 당시에는 화도 많이 났었지만, 이제는 그게 내 실수였었다는 걸 충분히 이해한다. 나도 눈치껏 5시쯤에 갔었어야 했내가 너무 고지식했었던 것이.


  제는 시대가 변해가면서 브라질리언 타임 많이 줄어들고 있는 추세지만, 아직은 완전히 사라졌다고 말할 수 없다. 왜 전히 이런 문화가 냐고 묻는다면, 이렇게 대답할 수 있겠다.


여기서는 그래도 돼.
여긴 브라질이잖아?
(Aqui é Brasil, né?)





  사실, 브라질리언 타임보다도 기업들의 생산성과 경쟁력을 바닥으로 끌어내리는  큰 요인이 있다. 지나치게 한쪽으로 치우친 노동법이다. 브라질의 노동법은 세계 그 어느 나라보다도 노동자의 권리를 엄격하고 강력하게 보장하고 있다. 모든 출퇴근 시간은 정확히 기록되고, 추가 업무를 하면 무조건 추가 수당을 줘야 한다. 구멍가게부터 대기업까지 예외가 거의 없다. 한국에서는 종종 당연한 듯 무시되도 하는 이런 들을 제대로 지키지 않으면, 노동자는 즉시 사업주를 고소해버린다. 이런 일들이 너무 흔하다 보니, 브라질에는 노동 관련 소송 전문적으로 처리하는 노동법원이 따로 있을 정도다.


  브라질 노동법원에서는 매년 수천만 건에 달하는 소송을 처리한다. 얼마 되지 않는 판사의 수에 비해 소송 건수가 압도적으로 많다 보니, 수백 건의 비슷한 사건들을 하나로 묶어서 일괄 판결하는 게 보통이다. 여기서 노동자들의 승률은 90%가 넘는다. 모든 소송을 일일이 세세하게 들여다볼 수 없다 보니 웬만하면 사용자보다 약자의 입장인 노동자의 손을 들어주는 게 관행이다.


  브라질에서 기업 법무팀이 맡는 역할은 회사가 소송을 안 당하도록 전에 예방하는 게 아니다. 그보다는 회사가 소송에 져서 지불해야 할 상금과 정부에 낼 과태료를 얼마나 효과적으로 줄이느냐가 관건이다. 이런 현실을 잘 아는 브라질 직원들은 업무 시간에 개인적인 잡무를 처리하는 것 또한 자신들의 당연한 권리로 인식한다. 직원들이 업무 시간에 개인적인 일을 보거동료와 잡담을 지 못하게 회사가 압박하거나 강요한다면, 그걸 빌미로 언제든지 소송을 당해도 이상하지 않다. 조직적으로 파업을 행사하는 강력한 노조는 덤이다. 은행, 관공서, 대중교통, 물류 등 인프라 전반에서 대규모 파업이 흔하게 일어난다.


  사실 한국의 노동법 브라질 못지않게 매우 체계적이고 합리적이며 노동자 친화적인 기준으로 만들어져 있기는 하다. 다만 한국에서는 실제 노동현장에서 잘 지켜지지 않는다는 게 문제다. 노동법을 위반한 회사를 상대로 일개 직원이 소송을 제기하는 일은 무척 번거로운데다가 시간과 비용도 많이 소모되고, 결정적으로는 노동자가 최종적으로 승소한다 해도 얻별로 없다. 노동법 위반으로 기업이 처벌받는다 해도 가벼운 벌금형에 그치는 경우가 많아서, 기업이 그다지 준법 정신을 기를 필요가 없는 환경이다. 대다수 한국 기업가들에게 노동법은 그저 젖소 주변을 맴도는 똥파리처럼 귀찮고 번거롭게 느껴질 뿐이다.


  국내 중소기업의 경우 노동법 위반 여부를 감찰할 근로감독관의 역할도 극히 제한다. 사소한 위반사항은 쉬쉬하고 넘어가는 게 일상이 되버린 것이 한국의 중소기업의 현실이다. 대한민국의 노동법 사실상 유명무실하다. 그런 면에서는 한국의 노동자들이 브라질 사람들보다 더 열악한 권리 하에 일하고 있다고 도 무방하다.




  하지만 브라질의 노동법이 지나치게 노동자 위주로 되어있는지 내막 또한 확하게 알아야 한다. 각 주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2021년 기준으로 브라질 평균 최저임금은 월 1,100 헤알이다. 상파울루 주의 최저임금은 평균보다 약간 더 높지만, 그마저도 1,200 헤알을 넘지 않는다. 이를 한화로 환산하면 법으로 정한 최저급이 겨우 24만 원도 안 된다. 최근 10년간 헤알화 가치가 3분의 1 이하로 급격히 폭락했기 때문이다. (2011년 3월에 1헤알당 680원에 달했던 헤알화 가치는 2021년 3월 7일 기준으로 198원으로 떨어졌다.) 2011년에 1,200헤알은 한화로 약 75만원의 가치가 있었다. 최근 10년만에 헤알화의 가치가 무려 3분의 2나 허공으로 사라진 셈이다.


  그런데 오늘날 상파울루의 물가는 서울의 물가와 큰 차이가 없다. 흔히들 개발도상국은 물가가 낮을 거라고 생각하기 마련이지만, 브라질의 물가는 2000년대 이래로 꾸준히 빠르게 상승해서 지금은 한국의 체감물가 수준을 넘어섰다. 특히 식료품과 부동산, 가전기기의 가격이 상당히 높아졌다. 경제학자들은 브라질의 법최저임금이 현행보다 최소한 3배에서 6배 정도 더 올라야 한다 우려의 목소리를 쏟아내고 있다.


  렇듯 기본적인 국민소득 수준을 국가가 책임져주지 못하게 되, 그 대신 정부가 노동자의 법적인 권리만이라도 강력하게 지켜주자는 논리가 설득력을 얻 됐다. 물론 오늘날 브라질 노동법의 근간을 세운 사람이 악명 높은 독재자였던 제뚤리 바르가스(쿠데타로 집권한 후 20년간 브라질 대통령으로 재임, 이후 레임덕을 겪다가 권총으로 자살함. 1930~1945/1951~1954 집권)는 사실도 무시할 수 없다. 바르가스가 개편시킨 이후로 오늘날까지 유효한 현재의 노동법은 강경 지지층의 결집을 위해 다분히 정치적으로 추진 포퓰리즘 정책의 환이었기 때문이다.


  안그래도 사업주 입장에서 방정부, 주정부, 시정부에서 각 따로 부과하는 잡한  따라 거의 직원 월급의 100% 정도에 달하는 세금 지출을 감당하고 있다. 월급 100만원의 직원 한 명을 고용하려면 세금 또한 100만원씩 내야 되는 셈이다. 게다가 아무리 사업주가 노동법을 나름 충실하게 잘 지킨다고 해도, 언제 어떤 직원에게 영문도 모른채 소송을 당하거나 금전적 피해를 입을지 몰라서 항상 전전긍긍해야 한다. 결과적으로노동자와 사용자 양쪽 모두 만족하지 못하는 상황 주요 원흉으로 현행 노동법이 지목되고 있다.


  이런 배경을 제대로 이해한다면, 브라질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개발도상국의 낮은 노동 생산성을 단순히 그 나라국민들이 못 배우고 게을러서 그렇다는 어리석은 편견으로 바라보지 못할 것이다. 결국 국민성이란 문화나 기후, 생활습관보다도 그 나라의 법률, 제도, 경제에 더 크게 영향을 받는다. 적절한 기회와 보상만 주어진다면 한국인보다도 더 열심히 밤을 새워 일하는 사람들이 바로 브라질 사람들이다. 다만 지금의 노동환경 내에서는 굳이 그럴 필요가 없을 뿐이다.


  열심히 일해도 고소득이 보장되지 않는 사회에서 굳이 전력을 다해 일하지 않는 건 자연스럽고 당연한 결과다. 그래서 생존을 위 최소한의 노동을 하면서 나머지 시간을 어떻게든 더 많은 즐거움과 휴식을 추구하며 살아가는 브라질 사람들의 생활방식을 우리의 잣대로 비난할 수 없다. 그 사회 시스템 에서는 제아무리 똑똑하고 능력 있는 사람이라 해도 그보다 더 나은 방식의 삶을 살기가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


  사실 진짜 문제는 따로 있다. 옛날부터 걷어 차인 지 오래인 사회 계층 간의 사다리, 그리고 철옹성처럼 정치와 언론과 사법부를 견고하게 장악한 범죄 카르텔이 저지르는 부정부패다. 그건 개발도상국뿐만 아니라 선진국이라 해도 하루아침에 극복할 수 없는 강력한 장애물이다. 정도만 다를 뿐이지, 사실상 카르텔과 다를 바 없는 각종 관피아들이 여전히 설치고 있는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다.




  최근 코로나19 사태로 벌어진 경제위기를 견디지 못하고 수많은 교민들이 브라질을 떠나고 있지만, 여전히 3만여 명에 달하는 많은 수의 교민들과 주재원 그들의 가족들이 브라질에 거주하고 있다. 대다수의 주재원들은 보통 2~4년 정도 현지에 거주하다가 귀국하는데, 그 짧은 기간 동안에 언어는커녕 라질 국민성과 문화의 까지 완전히 체득하기 쉽지 않다. 가치관과 생활방식에 대한 충분한 배경지식이 없어서 오해와 편견만 잔뜩 쌓인 분들도 많이 보았다.


  하지만 아무리 비합리적으로 보인다 해도 그건 그 나라의 역사와 환경이 오랜 시간에 걸쳐 빚어낸 결과물이다. 우리는 외국인으로서 그저 최대한 인정하고 이해하고 대처해나가는 수밖에 없다. 섣부르게 타국인의 사고방식을 고치려들거나 비난한다면 부작용만 생길 뿐이다.


  애초에 내 코가 석자인 한국인이 감히 누굴 비난한단 말인가. 크고 작은 불의와 불합리한 관행에 눈감는데 익숙하고, 조직 논리를 앞세워 공익신고자를 대놓고 배척하고, 경쟁에 따른 서열과 착취를 쉽게 정당화하는 한국 사회가 다른 나라를 할 형편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 사회가 아직 갖추지 못한 많은 미덕들을 브라질 국민들은 가지고 있다. 삶의 정신적 여유와 안정감, 타인과의 비교나 경쟁에서 자유로운 높은 자존감, 남의 외모나 사생활을 쉽게 지적하지 않는 기본적인 예절과 존중은 반드시 우리가 브라질 국민들에게서 본받아야 할 부분임이 틀림없다.


  우리나라의 시민의식 수준이나 노동 생산성도 여전히 선진국의 반열에 올랐다고 단언하기에는 많이 부족하다. 그런데도 남의 나라를 손가락질하며 못 배우고 게으르다고 비하한다면, 그 사람이야말로 가장 무식하고 배움에 게으른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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