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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옌데 Mar 27. 2021

어째서 브라질 사람들은 다 미남미녀인가요?

내재된 인종차별과 여전한 빈부격차

  내가 라질에서 오래 살다 온 걸 아는 사람들이 나에게 가장 많이 던진 질문 중 하나는 "브라질 여 정말로 전부 미녀들이냐"는 것이었다. 브라질,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태양이 작렬하는 해변가 비키니 미녀라고 많이들 한다. 브라질 관광청이 어떻게 했는지는 몰라도, 한국에서만큼은 열일했었나 보다.


   질문의 내 답변은 당연히 "아니요"다. 하지만 이에 반문하는 사람들도 있다. 내가 해외에서 만났던 브라질 사람들은 거의 다 예쁘고 잘생겼던데요?




  해외 유학을 가게 되면 현지 대학의 부설 어학당에서 중동, 남미, 아시아 지에서 온 다양한 국적의 유학생들을 마주치게 된다. 특히 미국 대학에서 브라질 유학생들의 비중이 상당히 높다. 통계에 따르면 외국으로 유학을 떠나는 브라질 학생 중에서 무려 70%가 미국을 행선지로 택한다고 한다. 지난 수 세기 동안 미국 정부가 걸핏하면 남미를 제집 앞마당처럼 여기면서 브라질 내정에 간섭하려 들었던 탓에, 대부분의 브라질 사람들은 미국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다만, 국민감정과는 별개로 많은 학생들이 비싼 학비를 부담해 가며 미국 유학길에 오른다.


  연애에 개방적인 브라질 사람들은 대체적으로 외국인과의 국제연애에도 거부감이 없다. 유학 도중 그들과 이성교제를 가졌던 한국인들의 경험담도 심심치 않게 접할 수 있다. 브라질 유학생의 외모는 짙은 피부색의 남미 인디오의 피가 섞인 혼혈 있겠지만, 대부분 벽안의 유럽 더 가깝다. 


  전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슈퍼모델 중 한 명인 지젤 번천을 비롯하여 미국과 유럽에서 활약하고 있는 브라질 출신 모델들의 상당수 역시 유럽인의 유전자를 더 많이 갖고 있다. 브라질의 이미지가 해변의 비키니 미녀들로 고착화된 것도 이들의 영향이 크다. 하지만 정작 브라질에서 이런 외모를 가진 사람들은 소수에 불과하다. 당연하게도 이런 현상의 이면에는 브라질 사회에 뿌리 깊게 박혀있는 빈부격차와 인종차별이 숨어있다.




  브라질이 못 사는 나라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2019년까지만 해도 브라질의 GDP(국내 총생산량)는 한국보다 더 높았다. 코로나 팬데믹 직격탄을 맞고 무너진 경제가 여전히 회복을 못 하고 있지만, 2억 1천만이 넘는 인구가 가진 내수시장과 기초적인 제조업 기반 어느 정도 보유한 덕택에 베네수엘라처럼 한간에 무너질 나라는 아니다.


  게다가 브라질의 농축산물 생산량은 미국에 버금간다브라질의 인구보다도 농장에서 방목되는 소의 숫자가 더 많을 정도다. 또한 현재 한국에서 유통 중인 순살 닭고기의 약 80%가 브라질산이다. 그 외에도 커피, 콩, 옥수수, 철광석 등등 풍부한 식량과 천연자원을 대규모로 생산하는 데다가, 대서양 연안에서 원유까지 뽑아 올리는 산유국이기도 하다. 의심할 여지없이 라틴아메리카 최대의 경제대국이다. 그리고 의외로 우주항공산업 강국이라는 점 감안하면, 브라질을 그저 단순히 가난한 나라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


브라질 알칸타라 우주발사센터 전경. 적도와 가까운 위치 덕분에 정지위성 발사에 매우 유리한 여건을 갖췄다.


  다만 상위 1%에게만 치중되어 있는 부의 집중이 지극히 심하다. 빈부격차가 큰 걸로 유명한 중국이나 미국보다도 브라질의 지니 계수(소득분배 불평등을 나타내는 경제지수)가 더 높다.


  브라질에서 '진짜 부자'라면 출퇴근을 헬리콥터로 하는 건 기본이다. 상파울루는 전 세계에서 자가용 헬리콥터가 가장 많이 날아다니는 도시다. 상파울루의 악명 높은 치안상황과 극심한 교통체증을 매일 겪을 바에는, 브라질 부자들은 차라리 교외에 대저택을 짓고 값비싼 헬리콥터로 이동하기를 택한다.


  헬기를 주유하는데 드는 비용만 해도 매달 약 3만 헤알 이상(약 천만 원)인데, 이는 브라질 법정 최저임금의 30배가 넘는 금액이다. 브라질이 산유국이긴 해도 엄청난 세율 탓에 휘발유 값이 한국만큼이나 비싸다. 상파울루의 전반적인 생활물가 또한 서울의 물가와  이가 없을 정도로 높다.


  렇듯 리콥터 출퇴근을 예삿일로 여기는 브라질 갑부들의 재산 규모는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다. 브라질에서 가장 많은 땅을 가진 대지주 가문의 일족이 보유한 땅을 다 합치면 경상남북도 전체보다 더 크다. 가히 대륙의 스케일이라 부를만하다. 한국의 재계 30위 이내 재벌 정도는 되어야 브라질 부자들 사이에서 명함이라도 내민다. 백억 원짜리 빌딩 하나 가진 정도로는 부자 축에 끼지도 못한다.


  극심한 불평등은 브라질의 역사 내내 깊게 뿌리내고 있다. 포르투갈의 식민지로 된 이래로 지금 21세기에 이르러서 여전히 경제적으로 사회계층이 하게 분리되어 있다. 브라질을 이루는 근간은 크게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다. 아프리카에서 납치되어 남미로 팔려온 흑인 노예의 후손, 그리고 중산층 및 대지주의 위치를 차지하이탈리아, 독일, 포르투갈 출신의 유럽 백인 이민자의 후손들이다.


같은 나라 안에서도 지역에 따른 편차가 크다. 남부 지역의 도시 그라마두(왼쪽)와 북부 지역의 도시 포르탈레자(오른쪽)의 모습.


  대규모 플랜테이션 농장이 발달했던 북부지역에는 아직도 아프리카계 흑인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다. 이들의 평균 월 소득 수준은 2020년 기준으로 법정 최저임금(1,100 헤알 = 약 24만 원)의 겨우 2~3배를 밑돈다. 반면에 목초지와 산간지역이 많은 남부에서는 유럽계 백인이 절대다수를 차지하며, 이곳의 생활수준은 남미보다는 유럽에 더 가깝다. 그리고 상파울루나 히우 지 자네이루 같은 중부 공업지대에서는 모든 인종과 계층들이 완전히 뒤섞여있어, 단순히 피부색만으로 소득 수준을 가늠하기 지 않다.




  객관적으로 볼 때, 브라질은 다른 나라들에 비해 인종차별이 훨씬 덜한 곳이다. 물론 브라질을 포함한 대부분의 중남미 국가들에서 흑인에 대한 차별에는 민감하지만, 전히 동양인을 향한 인종차별에는 문제의식이 크게 부족한 게 사실이다. 교육이나 소득 수준을 떠나 엘리트이건 빈민층이건 상관없이, 누구나 무심코 동양인을 비하하 발언이나 행동을 하기도 한다.


  지만 백호주의와 국수주의가 혼합되어 발달한 호주 같은 영미권 국가나, 개발도상국 출신의 외국인 노동자들만 유독 심하게 차별하는 우리나라와는 다르게, 브라질에서는 기본적으로 피부색과 국적, 성별, 기호에 따른 차별을 공개적으로 놓고 저지르 경우는 그리 흔 않다. 강력한 법적 제재가 뒤따르기 때문이다.


  1950년도에 차별금지법이 상정된 이래로, 브라질에서는 모든 종류의 차별이 법적으로 금지되고 있다. 그 이전에 지어진 오래된 아파트들에는 항상 2개의 엘리베이터가 있었는데, 하나주민 전용이고 다른 하나는 가정부나 일꾼들만 사용하는 서비스용이었다. 가정부 전용 엘리베이터 내부에는 거울도 없을뿐더러, 심지어 엘리베이터 문조차도 금속 대신에 싸구려 나 플라스틱 재질로 만들어 차별하는 경우도 있었다. 차별금지법 도입 이전에 가정부집주인과 같은 엘리베이터를 이용할 권리조차 없었다.


  지금은 이런 구분이 사라졌고, 이제 오래된 아파트 벽에는 엘리베이터 이용에 차별을  경우 으로 처벌된다는 문구가 의무적으로 붙어있다. 다만, 이나라에서 선출된 대통령(자이르 보우소나루)이 심각한 인종차별주의자라는 사실이 그저 떨떠름할 따름이다.


  전 세계에서 모여든 다민족으로 구성된 나라인 탓에, 인종차별 해소는 정치적으로도 중요한 문제였다. 브라질은 1964년에 이르러서야 민권법을 제정한 미국보다 14년이나 더 앞서서 차별금지법을 도입했다. 이는 오늘날까지도 소득 수준과 인종에 상관없이 모든 브라질 사람이 누구나 한 사람의 인격으로 대우받게 하는 법적 근거를 마련했다. 상파울루에서는 비싼 양복을 입은 부자가 길거리에 누워있는 걸인과 1대 1로 한담을 나누는 모습이 종종 목격된다. 여전히 차별금지법 도입이 논란의 중심에 서 있는 우리나라와는 크게 비교된다. 거리에 부랑자가 지나가면 혹여 눈이라도 마주칠까 조심스러 한국사람에게는 그런 모습이 문화충격으로 다가온다.




  하지만 브라질 사회에서 인종차별은 겉으로 잘 보이지 않는 형태로 유지되고 있다. 남부의 백인은 상대적으로 부유하고 북부의 흑인은 찢어지게 가난한 현실이 몇 백여 년이 지나 전혀 변함이 없 것이 이를 뒷받침한다. 흑인을 비롯한 유색인종들은 취업, 승진, 면접 등등 사회 곳곳에서 보이지 않는 별과 경제적 불이익을 당하고 있다.


  브라질 경찰들도 유독 유색인종들에 더 폭력적 혹독하게 대응하는 경향이 분명히 있다. 미국에서 Black Lives Matters 운동이 한창이었을 때, 브라질에서도 경찰의 과잉진압으로 흑인이 사망하는 사고 일어났다. 그로 인해 그동안 쌓여온 감정이 폭발한 Vidas Negras Importam 시위가 전국적으로 촉발되기도 했다.


  브라질 정계와 재계의 은 대부분 유럽계 백인 후손들이 차지하고 있다. 일례로, 지난 2015년 총선에서 당선된 브라질 국회의원 중 70% 이상이 백인이었다. 아프리카계 흑인 국회의원의 비율은 겨우 3.5%에 불과했다. 심지어 소수 아시아계 이민자 출신 의원의 수가 흑인 의원보다 더 많았다.


  그래도 일부 극우 인사들은 브라질에 인종차별이 전혀 없다는 허황된 주장을 여전히 되풀이하고 있는데, 이를 반박하는 확실한 반증이 있다. 2014년 브라질 월드컵 개최 당시, TV 중계 화면에 비친 경기장 관중석의 응원단 중 99%는 유럽계 백인들이었다. 가난한 북부 출신 아프리카계 브라질 국민들은 값비싼 경기 입장권을 구매할 경제적 여력이 없었던 것이다.



  브라질이 축구를 잘하기로 유명한 이유도 이와 관련이 있다. 빈민가의 유색인종 출신 어린이가 출세할 수 있는 은 세계적인 축구선수로 성공하는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펠레, 히바우두, 호마리우, 네이마르 모두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축구로 인생역전을 일궈낸 축구선수들이다.


  물론, 2000년대 초반의 룰라 대통령 재임 시절에는 적극적인 빈민구제 복지 정책과 더불어 어난 각종 대내외적 호재들(식품 및 원재료 가격 상승과 수출량 확대, 대규모 유전 발견, 올림픽과 월드컵 유치 등), 그리고 BRICS 국가들에 대한 기대심리가 부른 활발한 외국인 투자가 서로 맞물려 빈부격차가 상당히 완화된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그 당시에 수천만 명의 극빈층들의 생활 수준이 차상위계층으로 격상되었고, 룰라 퇴임할 때의 지지율은 무려 80%에 달했다.


  하지만 룰라는 복지 정책과 지지율에 신경 쓰느라 국내 산업 기반을 튼튼하게 다지거나 정-경-언 유착 카르텔을 척결하는 데에는 소홀했고, 결국 2008년 서브프라임 사태의 여파 이후로 브라질 경제는 아직도 반등하지 못하고 있다. 년 더욱 심화되어 가는 경제 위기와 치안 악화, 의료 붕괴, 정치적 혼란 속에 놓인 브라질에서 인종 간의 빈부격차가 유의미하게 줄어들 날은 요원해 보인다.




  이제 처음의 주제로 돌아가 보자. 해외로 유학을 떠날 수 있을 정도의 경제적 여건을 갖춘 가정은 대부분 브라질 남부의 유럽계 백인 출신이다. 당사자들은 쉽게 인정하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해외로 유학을 떠날 수 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이미 브라질에서 제력 상위 5% 이상의 상류층에 속한다.


  게다가 그중에서도 극소수인 최상류층 집안의 자녀들은 어릴 때부터 가족 또는 친척이 머무는 외국으로 매년 떠나느 해외여행에 익숙하다. 이런 여행들은 자연스레 관광 쇼핑, 어학연수를 겸한다. 이들은 패션과 코스메틱, 피트니스 등등 외모를 가꾸는 데에 많은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 그 덕분에 브라질의 하이엔드 서비스 분야는 경기불황 속도 꾸준히 활황이다.


  이제는 해외서 마주치는 브라질 유학생들이 거의 다 예쁘고 잘 생긴 백인이었던 이유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외모에 투자할 수 있을 정도로 경제적 여건이 좋은 브라질 사람들이 해외로 유학을 나오구나'라고 상식적으로 판단하기보다, 그저 눈에 보이는 대로 '브라질 사람들은 대체로 다 미남미녀들인가 보다'라고 단순하게 생각하기가 훨씬 더 쉽다는 거다. 브라질지리적으로나 문화적으로 너무 먼 나라여서 그만큼 우리에게 주어진 정보가 부족하긴 하만, 그렇다고 몰이해가 정당화되어서는 안 된다. 특히 브라질 관련 비즈니스를 하는 사람에게 심층적인 이해가 중요하다는 건 두말할 필요도 없다.


  단편적인 부분을 보고 확대 해석하기는 쉬워도, 한번 잘못 박힌 편견을 뒤집기는 어려운 법이다. 우리가 항상 사회 현상을 지속적으로 관찰하고 신중히 판단하는 버릇이 필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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