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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옌데 Jun 13. 2023

도플갱어 괴담

격월지 FEARLESS 6호 - 나와 같은 사람과 마주친다면?

  사실 나는, 나와 똑같이 생긴 사람을 실제로 마주친 경험이 있다.


  조금 더 정확히 말하자면 외모가 나랑 98% 정도 닮은 사람을 만난 적이 있었다. 때는 거의 20여 년 전, 평소처럼 수업을 들으러 학원 교실에 들어섰을 때였다. 거울 속에서나 보던 내 모습과 똑같이 생긴 학생이 태연한 모습으로 교실 앞자리에 앉아있었다. 난 심장이 멎을 정도로 놀라서 잠시 그 자리에 선 채로 얼어붙었다. 비쩍 마른 체구, 동양계의 얼굴에 길쭉한 코와 짧은 턱, 좁은 눈두덩 위에 올라간 얇은 금테 안경까지, 아무리 봐도 그 남자의 얼굴은 나와 전혀 다를 바가 없었다.


  인터넷에 가끔씩 연예인 닮은꼴이라고 올라오는 사진들을 보면 언뜻 구분이 힘들 정도로 비슷하게 생긴 사람들도 있지만, 이건 그런 수준이 아니라 정말 내가 봐도 나랑 똑같은 얼굴이었다. 그는 일본계 브라질인이었는데 나랑 체격과 나이까지도 똑같았다. 아마 우리 가족들도 그를 보면 단번에 나랑 구분하지 못했을 거다.


  독일의 도시전설로 전해져 온다는 도플갱어 설화에 따르면, 어떤 사람에게는 자신과 똑같이 생긴 도플갱어가 존재하고, 그중 한 명과 마주치게 되면 둘 중 하나 혹은 둘 다 목숨을 잃는다고 한다. 어린 마음에 나는 그가 내 도플갱어가 아닌지 며칠 동안 꽤 심각하게 고민했는데, 다행히 그도 나도 목숨을 잃지는 않아서 내심 안도했다.


  나와 똑같이 생긴 사람과 마주치는 건 흥미롭고도 흔치 않은 경험이었다. 그때 처음 느낀 감정은 순수한 놀라움과 공포였지만, 진짜로 무섭다기보다는 조금 불쾌하고도 야릇한 기분, 마치 요르고스 란티모스의 부조리극을 보고 난 느낌과 비슷했다고나 할까. 가끔 내 모습이 찍힌 사진이나 영상을 볼 때마다 다른 사람의 시각에서는 내가 이렇게 생겼겠구나라고만 생각했는데, 그걸 상상 속이나 이미지가 아닌 뚜렷한 현실에서 볼 때의 느낌은 사뭇 달랐다.


  어쩌면 나랑 똑같은 사람이 이 세상 어딘가에 또 있을지도 모른다는 공포심에 몸서리친 적도 있다. 혹여나 그 사람이 내 얼굴과 이름을 도용해서 몹쓸 범죄를 저지르고 전부 나한테 뒤집어 씌울지도 모르는 일이다. 피해망상 속에서나 있을 법한 일이지만, 이제는 얼굴 인식만으로도 스마트폰 잠금이 풀리는 건 물론이고 내 개인정보마저도 1원도 안 되는 가격에 전 세계 여기저기에 팔려 다니는 신세가 된 지가 오래된 세상이라 전혀 불가능한 일만은 아닐 거다.


  나라는 사람이 한 명 더 있다면 무슨 일이 생길지도 궁금했다. MBTI 테스트에서 T성향이 강하게 나온 아내에게 만약에 나랑 똑같은 사람이 한 명 더 있어서 남편이 두 명이 된다면 어떨 것 같은지를 물어보았는데, 예상외로 회의적인 대답만 잔뜩 돌아왔다. 두 명의 남편 중에 누가 아내한테 더 잘해줬는지, 또는 누가 더 사랑받고 있는지 쓸데없이 서로 비교해 대고 질투하거나 다툴게 뻔해서 골치만 아플 것 같고, 게다가 남편이 프리랜서니까 한 사람한테 들어오는 일을 두 명이서 나눠서 한다고 수입 총액이 더 늘어나는 것도 아닌데 매달 드는 식비나 공과금 같은 고정 지출은 더 늘어나니까 좋을 게 없다고 딱 잘라 말했다. 완전히 F성향인 나는 '만약에 여보야가 두 명이라면 난 두 배로 더 좋을 텐데'라는 대답을 준비해 놨지만 아쉽게도 그 말을 할 기회는 오지 않았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이 세상에서 내가 두 명이 될 가능성이 전혀 없다는 건 변치 않는 사실이다. 이거야말로 우리가 스스로를 더 아끼고 사랑해야 할 이유다. 이 희소성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더욱 소중하게 만든다. 그 누구도 나의 사랑하는 아내의 자리를 대체할 수는 없듯이, 나 또한 그 어느 누구로도 대체될 수가 없다. 생각해 보면 거의 모든 동물이나 식물들은 제아무리 개체의 개성이 강하다고 해도 엔간해선 동일한 종으로 대체가 불가능하지 않다. 그런 점에서 호모 사피엔스는 꽤 위대한 종족이라고 할 수 있겠다.


  만약 자신 스스로가 그다지 내세울 것도 없고 언제든지 다른 사람으로 대체가 가능하다고 믿는 사람이 있다면, 먼저 도플갱어가 사실이 아닌 전설에 불과하다는 사실에 감사해야 하며, 외모뿐만 아니라 능력과 성격 등의 개성적인 면에서도 다른 누군가로 쉽사리 대체될 수 없는 사람이 되는 데에 중점을 두고 살아가야 할 이유가 우리 모두에게 있다고 확실하게 말할 수가 있겠다.


  도플갱어 괴담은 어쩌면 자신을 사랑하고 아끼지 않는 사람들에게 전하는 경고일지도 모른다. 그럴 기회만 생긴다면 언제라도 삶을 쉽게 포기할 준비가 되어 있었던, 예전의 나 같은 사람들에게 말이다.




FEARLESS는 격월로 발간되며, 연남동과 성산동, 합정동 등 홍대 부근의 일부 서점 및 북카페에서 무료로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배포처: 책방 서로, 아침달, 스프링플레어, 무슨서점, 독서관, 아인서점, 책방 밀물, 헬로인디북스, 색소음, 도깨비 커피집, 서울청년센터 마포오랑, 공동체라디오 마포FM

instagram@fearless_mg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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