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값(이자)의 결정과 금융기관의 미래
돈값(이자)은 은행대출이냐, 신용카드 대출이냐, 담보가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많은 차이가 난다. 앞서 쓴글에서는 신용이 좋은 최전무나 신용이 낮은 장그래씨나 2000만원짜리 소나타를 빌릴때는 같은 렌트비를 지불하다가 현금으로 2000만원을 빌릴때는 신용도와 담보에 따라 5만원과 40만원의 이자를 내야하는 모습이 나왔었다. 아래 표를 보면 금액으로 봐도 8배 차이가 나지만, 각자가 이 금액을 벌기 위해 지불해야하는 시간을 보면 최고 32배의 차이가 남을 확인할수 있다. (모든이에게 공평하게 주어지는 기준으로 비교하기 위해 세상 모든이?에게 가장 공평하게 주어지는 재화는 다름아닌 '시간'이라고 생각했다.)
굳이 극단적인 차이를 나타내는 지불 시간까지 안가더라도, 장그래씨의 두달치 이자 금액은 최전무의 1년치 이자보다도 많다. 약속한 이자를 몇달밖에 못내고 엎어져버려... 사회에서는 신용이 불량하다고 낙인 찍힌 사람이 그 몇달동안 낸 이자가 실제로는 '신용이 매우 우수한'사람으로 칭송받는 사람이 2년동안 낸 이자보다 더 많다?는 불편한 진실은 돈값(이자)에 대한 근본적인 실체를 궁금케 한다.
가령 목적지까지 가는 길에 5번의 통행료를 내야하는 고속도로가 있다고 치자. A라는 사람은 1회 통행료가 200원이어서 총 1000원을 내고 목적지에 무사히 도착했는데, B라는 사람은 1회에 500원씩 내야 해서 목적지까지 가지도 못하고 중도탈락을 해버렸고 사회에서는 퇴출을 당한다. 실제 우리 사회는 애당초 짐이 무거웠든 가벼웠든 일단 약속이행을 못해 디폴트default가 발생하면, 그동안 낸 이자가 많든 적든 일정시간 (약3개월)이 지나면 그 사람은 신용불량으로 낙인 찍혀 정상적인 경제활동을 할수 없도록 퇴출시켜 버린다. (참고로 우리나라 신용불량자수는 한때 경제활동인구 8명중에 한명, 370만명에 육박했었고 현재도 100만명 정도가 된다)
신용은 약속을 잘 지키는 것이지 돈을 많이 내는 것과는 무관하다는 의견이 우세하겠지만, 애당초 출발선이 다른 상황에서 약속을 잘 지킨다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에 대해서는 한번 생각해봄직하다고 생각한다.
어쨋든 그럼 금융시장에서는 애당초 왜 이렇게 돈값(이자)에 많은 차이가 나고 사람을 대놓고 차별하는 것일까? 돈값을 결정하는 몇가지 요소를 한번 생각해보자.
1. 엎어질 확률 (디폴트 가능성)
이자는 결국 돈떼일 위험이 얼마인지로 귀결된다. 즉, 거슬러 올라가면 돈을 빌려간사람이 디폴트에 빠질 가능성과 그경우 얼마의 손해를 보는지의 문제가 된다. 우리나라에서는 NICE나 KCB와 같은 신용정보회사(CB)들이 눈 시뻘겋게 뜨고 돈떼일 위험에 대해 사람별로 점수도 매기고 등급을 미리 매겨놓는다. 1~10단계까지 우리의 신용은 투뿔 한우등급처럼 매겨져 있고 실시간으로 업데이트 되고 있다. 사람이 돈이 궁해지고 위험해질때 나타나는 일련의 행동들을 나름 빅데이터?로 오랜시간 연구해서 기가막히게 알아 맞힌다고 한다. 제때 제때 이자를 못내 연체가 생기거나 카드론이나 현금서비스를 받거나 대출이 많으면 신용등급이 낮아지는 시스템이다.
2. 얼마나 돈을 날릴지 (디폴트시 손해액)
신용대출
금융기관에 와서 내 별명이 '김신용'이요 라고 큰 소리 땅땅치며 돈 빌려갈땐 언제고 어느순간부터 돈없다고 '배째라'고 나온다면 큰일이다. 채권자는 이때부터 소위 빚쟁이가 돼서 채무자를 괴롭히기 시작한다. 요즘은 채권 추심이라 불리는 빚독촉도 영화에서처럼 깡패들이 나와 채무자를 창피주거나 위협하고 괴롭히지는 않지만 합법적인 압박을 주는 것은 사실. 그렇지만 요즘은 추심에 의한 사회적 피해가 공론화되면서 빚쟁이가 함부로 찾아가서 돈내놔라 드러눕고 실력행사를 했다가는 큰코 다친다. 채무자가 증거를 남겨놨다가 신고한다고 오히려 채권자(추심업체)를 위협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받아야할 돈이 많다면 법적인 조치를 밟아 은행통장이나 월급을 압류하고, 최악의 경우 차압이라도 할수 있겠지만, 그렇게 해서라도 받을수 있는 돈이 있다면 다행. 그렇지 않은 경우 돈을 일부 떼이고 받던지 제2, 제3의 기관에 할인된 가격에 채권을 넘겨야한다. 데미지가 큰 편.
담보대출
하지만 돈을 빌려줄때 담보를 잡으면 문제해결은 훨씬 점잖고 수월해진다. 특히 집과 같은 부동산을 담보로 잡아 놓으면 문제가 발생했을때 부동산을 경매처분할수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은행에서 담보를 잡고 건물에 침을 발라 놓을때에는 빌려준 금액만큼이 아니라 그 금액의 120% 정도를 넉넉하게 채권을 확보해둔다. 경매 진행하는 동안 못받는 이자까지 미리 고려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집을 담보로 돈을 빌려주는 경우, 1금융권에서는 집값의 60% (현재는 한시적으로 70%)까지, 2금융권은 70%까지 돈을 빌려준다. 한국의 아파트 평균 낙찰가는 80~90%가 넘어가기 때문에 집을 담보로 돈을 빌려주면 원금을 떼일 가능성은 낮은 편이다. 그래서 금융기관들은 집을 담보로 돈을 빌려줄때 2~3%의 낮은 이자만 받고 빌려줄수가 있다.
3. 금융기관들의 이자율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우리 금융시장은 1금융과 2금융으로 양분되어 있고 두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디폴트가 아예 안나는 우량고객 (1금융)이나 안전한 담보대출을 맡던지 아니면 디폴트 각오를 하고 화끈한 이자를 받는 전략(2금융)을 쓰든지 말이다. (참고로 금융기관은 1금융권 (시중 은행)과 2금융권 (저축은행, 새마을금고, 협동조합등)으로 나뉘고 대부금융을 3금융 정도로 부르는것 같다.)
1금융권에서는 신용이 좋은 사람을 우대한다. 우량고객은 지점장님이 직접 나와 달달한 커피도 타주면서 이자도 싸게주고 달력도 하나더 챙겨주면서 우대해주지만 신용도가 낮으면 돈을 빌릴때 이자를 조금씩 올린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자 더 준다고 아무한테나 돈을 빌려주는건 아니다. 은행에서는 일정등급 (예를들면 1~4등급) 까지만 대출을 해주고 그 수준을 넘어서 버리면, 덜컹 아예 돈을 빌려주지 않는다.
이럴때는 어쩔수 없이 2금융권을 찾게 된다. 축적해둔 자본이 부족한 젊은세대나 사업을 하는 사람들은 1금융권 은행에서 빌려주는 한도가 아쉬울 때가 있는데 요즘은 DTI라는 것도 있어서 빌린돈을 갚을수 있는 소득을 증명하지 못하면 은행 이용은 더 어려워진다. 어쨋든, 조금은 더 느슨한(?) 2금융권으로 발길을 돌리게 되면, 1금융권에만 익숙하던 고객은 곱절로 뛰어오르는 이자때문에 순간 아찔하게 된다. '우리은행'에서 주택담보대출 2.8%에 돈을 쓰던 사람이 '너희저축은행'으로 넘어가면 금리가 5~8%가 되는 식이다. 그것도 담보대출이면 양반이고, 신용대출이라면 이자는 4~5%에서 2금융권 신용대출은 최대 20% 중반까지 올라간다.
지금이 어떤 세상인데 방법 좀 찾아봐!!
사실 1금융과 2금융의 구분은 종래의 공급자 위주의 발상에서 나온 개념이라 생각된다. 하지만 기술과 금융의 발전으로 다양한 고객의 needs에 따라 고객중심으로 금융 서비스도 변화될수 밖에 없는 것이 시대의 흐름이기에 최근들어서는 저금리의 1금융과 고금리의 2금융 사이에 1.5금융이라는 중금리 시장이 들어서고 있다. 기존 2단짜리 시장에 중금리가 추가되면서 이제는 3단, 4단짜리 시장이 만들어지는 셈이다. 기존의 금리단층(이자가 뚝 차이남)에 문제를 제기하고 중금리 시장개척을 '돌격 앞으로~' 선봉에서 외쳤던 이들은 P2P (Peer to peer)대출 중개회사들이다. 그 전까지만 해도 과연 중금리 시장이 가능할까에 대해 회의가 많았지만, 최근 P2P 대출이 폭풍성장을 하면서 중금리 시장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고 K-뱅크와 카카오 뱅크같은 인터넷뱅크가 나오게 되면서 이제는 1000만명에 달하는 중신용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사잇돌, 사이다등의 중금리 상품들을 1금융권과 2금융권에서 먼저 내놓고 있는 상황이다.
그래서 금융의 미래는 뭐 어떻게 된다고?
은행은 예전에는 7%에 돈을 빌려주고 예금주들에게 4.5%의 이자를 돌려주면서 중간에 2.5% 정도의 예대차마진을 수입원으로 삼아왔다. 시내 요지에 지점을 열고 빵빵한 에어컨을 돌리고 지점장님이 맥심모카골드를 꺼내오시려면 은행은 돈을 많이 벌어야 했다. 그런데 저금리가 지속되면서 은행에서는 살을 깎는 노력으로 예대차 마진을 1%초반까지 떨어뜨리고 있지만, 기준금리가 1.25%까지 떨어지다 보니 예금주가 갖고가는 것(이자 1%초반)보다 은행이 갖고 가는게 더 많게 되어 버렸다. 예금주들은 자기돈을 맡아서 불려주는 은행이 자신들보다 더 많은 이익을 받아간다는데 대해 근본적인 의구심을 가질수 밖에 없게 된셈. 이런식으로 가다간 수백년간 이어져온 근대 은행업 (뱅킹)이 10년후에는 어떤 모습으로 바뀌어 있을지는 모를 일이다. 지점에 가보면 예전보다 사람이 훨씬 안보인다던지 카드로 계산을 하기 시작하면서 현금쓸 일이 확연히 줄었다든지의 차원이 아니라 지금의 초저금리가 지속된다면 뱅킹산업은 매우 빠른 속도로 변할지 모른다.
그러한 변화를 단편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중의 하나가 위에서 언급한 P2P대출이다. 기술기반의 플랫폼 회사가 여러 투자자들로부터 돈을 모아서 돈이 필요한 대출자에게 한방에 빌려주는 방식이다. 중간에 불필요한 비용항목이 적다 보니 은행보다 비용적인 경쟁력이 있고 그 혜택을 돈을 빌려주는 사람이나 빌리는 사람에게 나눠줄수 있다. 이렇게 1금융과 2금융의 사이에 1.5금융을 만들게 되면 예금주들은 1%초반의 이자가 아닌 4~7%로 서너배의 수익을 기대할수 있고 돈을 빌리는 사람들은 2금융보다 훨씬 낮은 이자로 금융을 사용할수 있게 된다. 마치 우리가 인터넷에서 최저가 물건을 사고 직구매로 거품을 줄여나가듯, 금융도 초저금리 시대에 맞는 적자생존식 돌파구를 찾고 있다.
다만, 금융의 본질은 사실상 규제 비지니스regulation business이기 때문에 정부의 의지와 계획에 따라 흘러갈수 밖에 없다. 그리고 금융은 신뢰(credit)의 싸움이기 때문에 투자자들이 안심하고 돈을 맡길수 있는 시스템과 실질적인 투자성과로 사람들을 납득시키고 시장의 신뢰를 얼만큼 쌓느냐에 따라 장차 신금융의 입지가 정해질 것이다. 하지만 큰 시대적 흐름은 확연하다. 우리가 은행에 갈일이 점점 줄어들게 되면서 필연적으로 중간자가 사라진 금융non-intermediary, 비은행권금융non-banking, 비제도권금융non-institutionalized의 부상은 전세계 어디서나 비슷하게 나타나고 있다. 파도를 손바닥으로 가리지 못하듯, 이러한 세계적 금융의 흐름에서 한국만 동떨어져 규제 일변도로 새로운 아이디어를 두더지 잡기 (튀어나오면 망치로 줘패서 집어넣는 게임)식으로 언제까지 막거나 외면할수는 없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