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개점휴업 Sep 17. 2023

강릉으로 이주하고 싶은 신도시쥐

: 10박 11일 시골언니@강릉 전체 여정 후기

시골언니@강릉 프로그램 참여하는 게 올 하반기에 기대되는 이벤트 중 하나였기 때문에 계속 돌이켜 보고 혹시 건질 문장을 놓치지는 않았는지 자꾸만 살펴보게 된다. 매일 일기 쓰느라 정신이 없었다면 평상시의 내가 남겼을 감상은 이 포스팅으로 갈음해 본다.


프로그램 개요

https://www.ffd.co.kr/marketF/?idx=210


�프로그램 안내에는 드러나지 않지만 알아둘 것

- 10박 11일 동안 좁은 방을 2명이 함께 사용하고 4명이 같이 보내는 시간이 많다. 그야말로 누가 올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예민한 편이라면 확실히 신중하게 다시 생각해 볼 만하다. 나는 같이 프로그램을 했던 사람이 무척 좋았고 앞으로도 종종 볼 거라 확신하지만 이런 행운이 모두에게 오는 기회는 아니라는 생각도 든다.

- 내일상회와 함께하는 프로그램에서 중요한 키워드 중에 '제로웨이스트'가 있다. 프로그램 밖에서의 내가 이런 지향으로 살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10박 11일 동안 그러한 운동이 어떤 의미인지 생각해 보고 직접 실천해 볼 수 있다. 물론 얼마 정도의 온도감으로 임할지는 개인의 선택이지만 보다 열린 마음으로 참여하는 게 도착해서 판단하고 거리 두기를 하는 것보다는 훨씬 느낄 수 있는 맥락이 풍부할 듯하다. 나아가 비건 지향의 식사까지 도전해 보는 것까지 함께 염두하면 좋겠다.

- 매일 자동차를 타고 이동할 수 없고 자전거를 타거나 버스를 이용하는 게 좋다. 개인 차량이 있다고 하더라도 골목길에 주차가 늘 쉬운 것은 아니고 제로웨이스트 운동을 염두에 한다면 이 또한 지양할 포인트이다. 강릉 자체가 서울에 비하면 밀도와 면적이 넓지 않을 수 있지만 이동에 제약이 생긴다는 점도 알아 두면 좋다.

- 이주를 진지하게 생각해 보고 있다면 사전에 강릉문화센터, 청년센터두루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미리 알아보고 계획을 공유하면 일정에 반영을 할 수 있다. 시키는 대로 한다기보다는 여지가 많기 때문에 어떤 경험이 될지 생각해 보면 좋다.

- 여행이라기엔 체험에 가깝고 체험이라기엔 느슨한 시간도 있지만 함께 밥을 해 먹고 공간을 10박이나 나누는 동안 청소도 하는 걸 감안할 때 전혀 느슨하지 않았다. 하루가 꽉 차 있어서 매일 프로그램 참가자들끼리 모여서 소회를 나눴는데 할 이야기가 무척 많았다.


그래서 가장 좋았던 것

- 개인일정을 잡아서 별도 행사에 다녀온 것도 좋았다. 그간 강릉에서 나와 결이 맞거나 <비빌언덕>이 될 수 있는 사람을 찾아왔는데 쉽지 않았다. 결이 맞는 사람들은 시골언니에서 만나고 부동산 정보라거나 어떤 직업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한 다양한 선택지를 <비빌언덕> 프로그램에서 확인할 수 있어서 좋았다.

- 에너지가 채워진 기분이 들었다. 뭐라고 표현하기 어렵지만 '자연스럽다'는 단어를 계속 생각했다. 만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주제가 낯설지 않았고 오히려 매일 접어놔야 했던 마음이 아닌가 생각했다. 그리고 멀지 않은 거리에 자연이 있다는 것이 새삼스럽게 또 위안이었다. 도시에 사는 인간이 자연으로부터 소외되었다는 글을 읽는 적이 있었는데 뭔 소린가 했던 그 말을 계속 떠올리며 걸었다.

- 그 채워진 에너지로 그다음에 할 일을 생각해 내게 된다. 여성환경연대 후원을 한다거나 텃밭을 다시 하려는 마음을 먹거나 토종씨앗연구도 해볼까 하는 상상력이 다시 열리게 된다. 나는 내 세계의 지평이 한 발자국씩 커지는 걸 느낄 때 즐겁다. 어려운 문제를 해결했을 때 너무 힘든 상황에 처했을 때 이전의 경험으로 그걸 삼켜낼 때 같은 건데 강릉에서의 10박으로 조금은 더 상상력이 열리는 마음이 든다.

- 그렇게 정 붙이고 싶어 하던 동네에 '아는 사람'이 생긴 게 기쁘다. 인연이야 쌓인 만큼 시간에 흩어지니 방법을 찾아야겠지만 강릉에 다시 가게 되었을 때 꼭 가야 할 곳 그리고 맥주 한잔하자고 할 사람이 생긴 건 기대하지도 않았던 수확이다.

- 경험을 했다는 사실 자체에서 위안을 받거나 하루이틀로 강릉이나 누구를 안다고 말하고 싶지 않다. 그런 찍먹 하는 태도에 개인적으로는 신물이 나있는 상태였어서 느린 속도로 방해받지 않고 관계를 꿰어가는 과정이었어서 무척 즐거웠다. 누구에게 날 해명할 필요도 느끼지 못했다는 게 서울과 업계에서의 경험과는 생소한 점이었다.


다시 했다면

- 기본적으로 생활적인 면에서 아쉬웠던 건 새벽시장 두부와 콩물을 빨리 먹었다면 매일 아침에 7시에 기상했을 것이다 정말 맛이 좋다. 모기가 많으니 에프킬라 일찍 사둘 걸 하는 후회도 했다.

- 아침에 조금 더 남대천을 자주 볼 걸하는 생각도 한다. 바다도 좋지만 강릉은 산이 정말 좋다. 이게 초록색이 더 좋아질 나이? 가 된 건지는 알 수 없지만 바다의 변화무쌍한 모습만큼 휘몰아치는 습지와 할 일 하는 천변도 멋지다. 

- 조금 더 프로그램에서의 재미를 확인하기 위해 서로 기술을 알려주는 경우가 있는데 나에게는 그게 없었다. 뭘 해야 하지 하는 생각을 잠깐 했는데 답을 차지 못했다. 이건 내가 다음 인생 단계를 준비할 때의 질문과 닿아있다. 내가 사무실을 떠나서 무슨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인지 모르겠다. 업계에서 회사에서 이 직무로는 개인적으로 무슨 일을 하면 좋겠다던지 소위 각이 보이는 일은 어느 정도 가닥이 잡히는데 그 생명이 얼마나 될지 몰라서 그다음을 생각 중이다. 회사에서 벗어나서 개인인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기술이 있으면 좋겠다. 타로카드 리딩이건 사주를 봐주건 코바늘 뜨개질이건 조금은 생활에 필요한 것이라면 좋겠다.


�그래서 나는 명료함을 얻었나?

첫날 에인절카드를 뽑아 이번 일정을 상징하는 단어를 정했는데 'Clarity'였다. 내가 번역한 건 명료함이었는데 과연 내가 명료함을 얻어왔는가 하는 질문으로 마무리한다.

- 어떤 장소에의 이주한다는 의미를 조금 더 확장적으로 생각하게 됐다. 물론 물리적으로 적을 옮겨 이주하는 것은 그렇지 않은 것과 큰 차이가 있겠다. 하지만 가서 혼자 방 안에만 지낸다면 과연 서울에 지내는 것과 다를까 하는 이야기를 프로그램 참가자와 나눴다. 그렇다면 그 공간에서의 맥락을 어떻게 만들어내느냐의 문제인데 그건 결국 상호작용과 추억이다. 내가 강릉에서 남긴 추억이 결국 강릉이기 때문에 분명 언젠간 이주하겠다는 생각을 이번에도 했지만 추억을 더 쌓았으니 한 발자국 더 가까워진 듯싶다.

- 내가 가졌던 두려움 중 하나는 인구 980만의 서울에서도 나와 마음이 맞는 사람을 찾기가 이렇게도 어려운데 20만 인 강릉에서 찾는 게 과연 쉬울까 생각했다. 마음 맞는 사람은 결국 인생에 대해서 하는 고민이 같다는 점부터 시작하는 게 아닐까 싶다. 오히려 30대니까 모여보세요 와 같은 접근은 이미 나이에 따른 생애주기가 너무 달라져버린 시점에는 의미가 없다. 차라리 나와 10살 이상이 차이가 나더라도 같은 것에 분노하고 같은 것을 기뻐할 수 있다면 빠르게 친구가 된다는 생각을 또 새삼했다. 내가 이런 사람이라면 내 안의 질문을 찾고 그 질문을 들고 있는 사람들을 찾아 나서거나 그런 모임을 만들면 된다는 생각을 했다.

- 이 여정은 내가 무덤덤한 편이 아니라면 경험하기 어려웠을 거고 운 좋게 업계 사람이라 재택을 그나마 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구체적으로야 세워봐야겠지만 그 덕분에 강릉으로의 이주 계획도 세워볼 수 있으니까 말이다.

- 위에서도 이야기했지만 나와 온도감이 비슷한 사람을 만나서 무척 좋았다. 그래서 자주 강릉이나 이 프로그램에 참가했던 사람들과의 에피소드가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러려면 아무래도 사무직으로서가 아니라 기능을 갖춘 개인이 되고 싶은데 무얼 하면 좋을지 고민을 해봐야겠다. 예전에 도전하려고 했던 미싱일을 해보거나 뭔가를 찾아야겠다. 이 직업이 결국엔 다음 직업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아서 요새 가장 많이 하는 고미 중에 하나이다.

- 그게 사업이나 부동산 투자라는 것도 답일 수 있지만 전자의 경우에는 개인적으로 아이템을 찾다 보면 나오지 않겠나 하는 생각과 함께 내가 사업할 사람이 많은가 의문이라 미루는 중이다. 내가 가진 자본금이나 성향을 생각할 때 후자가 생활을 유지할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일에 자아를 의탁해 삶에의 의미를 찾을 수는 없지만 세상과 연결되는 방식 중 하나라는 걸 새삼 또 느낀다. 어떤 세상에 연결될지는 직업을 통해서도 결정되지만 연결 자체가 되려면 무언가를 찾기는 해야 한다.

- 왜 강릉인지에 대해서는 더 이상 스스로 물을 필요도 없어 보인다. 그야말로 '어쩌다 보니'이고 그저 마음에 무척 자연스럽다 지금은.

매거진의 이전글 8일/9일/10일째 확실히 또 올거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