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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란바람 Apr 26. 2018

08.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협박

   “응. 가. 할. 거. 야!!!”


 아직 잠이 덜 깼는데, 바지를 붙잡고 엉거주춤 서 있는 아이를 보고는 깜짝 놀라 후다닥 화장실로 달려갔다. 하지만 화장실에 들어간 지 1초 만에 준영이는 씨익 웃으며 그냥 밖으로 나왔다. 꽂힌 말이 있으면 종일 반복하는 습관이 있어서 그냥 ‘지연 반향어인가 보다’ 하고 무심히 넘겼지만 그 이후에도 응가 협박은 계속 이어졌다.   

‘세상에 침대에서 X 싸겠다는 말보다 더 무서운 협박이 어디 있는가!’

 어느 날은 스마트폰으로 뉴스를 보고 있는데 금방이라도 큰일이 날 것처럼 다급한 표정을 지으며 또 "응가할꺼야"를 외쳤다.

“안 마려운 것 같은데, 이상하네~좀 전에 화장실 갔다 왔는데 왜 또 마려워?”

속는 셈 치고 함께 화장실에 갔지만 역시나 변기에는 앉지도 않고 바로 나와서는 웃으며 장난감을 내밀었다.

“크크크, 엄마랑 같이 놀고 싶어서 그랬구나. 그럴 땐 ‘같이 놀자’ 이렇게 말하는 거야. 따라 해 봐~같이 놀자.”

“같이 놀자”


 7살, 집중적으로 배변훈련을 할 때 소변은 물을 먹이고 시간 간격을 보면서 연습을 해서 어느 정도 떼어가는데 대변은 도무지 타이밍을 잡기가 어려웠다.  

‘너무 서두르지 말자, 아이가 준비되었을 때 하자’고 마음을 먹었지만 학교 입학이 다가오자 또 조급해졌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화장실이 가고 싶은 듯한 표정을 포착하고 바로 뛰어가서 첫 성공을 했다. 그 뒤로 화장실에 가겠다는 말만 하면 무엇을 하고 있든지, 벌떡 일어나 바로 반응을 해주었고, 성공하는 횟수가 점점 많아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큰 볼일에 관해서는 언어로도 표현을 하기 시작했고, 실수를 거의 하지 않게 되었다. 먼 길을 각오했는데 큰 고비를 넘었다는 기쁨에 박수를 치고, 케이크를 사고, 요란한 축하파티를 하며 아이를 대견해했다.

 그러니까 아이에게, “응가할꺼야” 는 엄마, 아빠의 시선을 가장 빠르게 집중시킬 수 있는 말이었던 것이다.

 언어 표현이 제한적인 준영이가 엄마, 아빠랑 놀고 싶은데 관심을 안 주니, 자기 딴에는 꾀를 내어하는 거짓말이라고 생각하니 너무 웃기고 기특했다.   

  그리고 한 편으로는 조금 미안한 생각도 들었다. 이제 어느 정도 컸다고 초심을 잃고 느슨해진 엄마의 마음을 아이가 정확하게 꿰뚫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아직 관심과 사랑이 더 필요해요.”
 

 날씨가 안 좋거나 미세먼지가 많아서 바깥활동을 하기 어려운 날이면 또래 노출을 위해 준영이와 함께 키즈카페를 다닌다. 아직 놀이규칙에 대한 이해와 언어 표현이 부족한 아이가 혹시 다른 아이들의 놀이를 방해하거나 이로 인해 장애인에 대한 편견을 심어줄까 봐 우리는 항상 같이 뛰고놀았다. 2~3세 아기들을 데리고 온 부모들은 큰 아이들 때문에 다칠까 봐 열심히 따라다녔지만 6세 이상되는 아이를 따라다니는 부모는 거의 없었다.

 때로는 아이들을 놀게 하고 삼삼오오 이야기를 나누거나, 혼자 와서 책을 보고 스마트폰을 보는 사람들의 여유가 부럽기도 했다. 하지만 아이들이 많은 곳도 두려워하지 않고 잘 노는 준영이가 고마워서 공짜로 주는 음료를 쭉 들이키고는 남편과 번갈아가며 같이 뛰고, 올라가고, 구르며 신나게 놀았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나는 키즈카페의 스타가 되곤 했다.

우오오오. 거인이 나타난 키즈카페

 


 

- 아줌마, 저는 이것도 할 줄 알아요.   

- 저는 이렇게 높이 뛰고 여기서 텀블링도 할 수 있어요.

- 이건 원심력 때문에 그래요. 저번에 Y에서 봤어요

- 아줌마, 쟤는 몇 살이에요? 저도 같이 놀아요


준영이를 따라다니며 같이 놀다 보면 소인국에 온 거인을 본 것처럼 내 주변으로 아이들이 몰려들었다. 그리고 아이들은 자기가 얼마나 많이 알고 잘할 수 있는지 큰 소리로 자랑을 하거나 같이 놀자고 조르기도 했다. 대부분 살갑게 호응을 해주지만 준영이가 어딘가로 휙 사라질까 봐 초조해하는 기색이 보이면 낯선 아줌마를 귀찮게 하는 것을 눈치챈 엄마들이 다가왔다. 그리고는 아이에게 ‘어머 얘가 왜 그래’ 하는 핀잔을 주며 아이를 데리고 가곤 했다. 그럴 때마다 많이 자라서 또래 친구들과의 놀이에 흥미를 느끼게 된 아이들도 여전히 어른의 관심과 사랑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느꼈다.

 스마트폰을 사용한 이후부터 타인을 향한 집중력이 떨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밥을 먹다가도 대화를 하다가도 전화나 메시지가 오지도 않았는데 수시로 폰을 들여다보는 습관을 고치는 것은 무척 어렵다.


  하지만 준영이에게 응가 협박을 더 받기 전에 자주 시선을 맞추고 온전한 관심을 주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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