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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란바람 May 11. 2018

11. 노는 건 질 수 없지!

지금 행복한 삶을 위한 도전

 서른이 넘어가자 기다렸다는 듯 많은 시련이 몰려왔다. 결혼식을 앞두고 발견된 친정아버지의 폐암 말기 진단과 이별, 둘째 아이와의 이별, 그리고 준영이의 장애진단까지 눈 앞에 닥친 난관을 헤쳐나가기 위해 숨 돌릴 틈이 없었다. 정신없는 순간들이 지나고 아이의 장애도 조금씩 인정하게 되면서 마음의 안정이 찾아왔고, 지금까지 내가 지나온 삶을 가만히 돌이켜보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성실함을 최우선으로 했던 삶에 대한 가치관도 자연스럽게 변하기 시작했고, ‘지금 행복한 삶’에 대한 집착이 생겼다.


“그래, 오늘 지금 행복하기로 하자”  

 내 삶에 조금씩 여유를 주고, 지금 행복하기 위한 시간을 두는 것과 내일을 준비하는 삶의 균형을 맞춰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거의 내가 지금의 삶을 단 한 번도 꿈꿔본 적이 없듯이, 현재에 아무리 고민하고 노력해도 다가올 미래를 상상하는 것은 어렵고 아득하게만 느껴졌기 때문이다.

나는 점점 제대로 잘 노는 것에 시간과 마음을 쏟기 시작했다. '노는 것만큼은 질 수 없지!!!'


몸이 움직이면 마음도 따라 움직인다.

 

  ‘지금 행복한 삶’을 위해 내가 가장 먼저 도전하기 시작한 것은 여행이었다.

  집에서 먼 곳, 가까운 곳 가리지 않고 돌아다녔고, 때로는 집 안에 텐트를 펼치고 집안으로의 여행을 떠날 때도 있었다. 매일 변화 없이 단순하게 살아가는 것이 편안함을 주기도 하지만 때로는 새로운 환경에 놓여서 미처 몰랐던 것을 발견하는 즐거움도 컸고, 단출한 짐을 꾸려 떠난 여행지에서는 내일에 대한 걱정보다는 오늘 무엇을 먹을까? 어디를 갈까? 뭘 하고 놀까 와 같은 단순한 생각을 주로 하게 되니 마음이 가벼워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몸을 부지런히 움직이면, 수시로 찾아드는 타성과 우울감으로부터 벗어나 마음도 활기차게 움직이는 기분이 들었다.   

  남들에게는 돈과 시간이 있으면 떠날 수 있는 여행이지만, 장애가 있는 아이와 여행을 다니는 것은 '용기'가 더 필요한 일이었다. 아이가 괴상한 소리를 내거나 갑작스럽게 울 때, 길바닥에 드러누워 고집을 피울 때마다 흘깃거리는 남들의 '눈치'를 덜 의식하고 침착하게 행동해야 했다. 남의 상황을 배려하지 말라는 의미가 아니다. 누군가를 불편하게 했다면 이해를 구하거나 사과를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단지, 남이 나와 내 아이를 어떻게 생각할까 하는 '보이기 위한 삶'으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한다는 거다.

 비행기 안에서 너무 자지러지게 울어서 여기저기서 건네 오는 과자를 받으면서 '한국인의 정'에 몸둘 바를 모르던 날들도 있었다. 우는 아이를 업고 달래며 돈 쓰고 아까운 휴가 쓰고 이게 무슨 짓인가 싶은 자괴감이 드는 날들도 있었다.

 하지만 경험이 쌓이고 시간이 흐르니, 우리 가족은 여행의 고수가 되었다. 평소 제한적으로 먹던 단짠단짠한 과자가 주어진다는 것을 알게 된 아이는 능숙하게 비행기를 탔고, 숙소에 도착하면 집 보러 부동산에서 온 아저씨처럼 방마다 새로운 구조를 파악했다. 아주 멀리서 들리는 불꽃놀이에도 무서워하던 아이는 이제 손에 잡고 타오로는 불꽃을 즐기기도 했고, 모래놀이를 너무 좋아해서 숙소로 돌아가려면 더 놀고 싶어 하는 아이와 한참을 실랑이를 벌여야 한다.  '노는 것도 습관'이라고 자주 다니다 보니 짐을 싸는 것도 한순간이고, 다녀온 뒤 여독도 덜해졌다. 무엇보다 자주 떠나다 보니 어디를 가고 무엇을 먹는가 보다 머무는 순간순간을 온전하게 즐기게 됐다.

  그러다 보니 우리의 여행은 날씨와도 큰 상관이 없었다. 비가 내리면 비가 내리는 대로, 비가 멈출 때를 기다렸다가 그 틈새를 이용해서 노는 게 더없이 재미있었고, 바람이 불면 부는 대로 산발이 된 머리로 노는 것도 웃겼다. 처음에는 어느 지역에 가면 뭐가 맛있다더라 하고 맛집을 찾아다니고 기다렸지만, 지금은 그런 계획도 하지 않는다. 여행이 일상이 되고 나니 식비도 만만치 않고, 어딘가로 먹으러 나가는 것도 귀찮은 일이 되어서 보냉 가방 한가득 먹고 놀 음식으로 채우기 시작했다. 지나가다 무심코 들어간 밥집이 싸고 맛있으면 그게 또 얼마나 신나는 일인지 "와 여기 6천 원인데, 예전에 만 오천 원 주고 먹었던 식당보다 훨씬 맛있다"며 남편과 함께 득템의 순간을 만끽했다. 숙소를 잡지 않고 차 막히는 시간을 피해 아침 일찍 떠났다 텐트를 치고 놀다 저녁 먹고 돌아오는 당일코스 여행도 다니기 시작했다.

 이런 여행이 주는 즐거움 중 또 하나는 바로 사진이었다. 아이와 함께 여행지에서 찍은 사진이나 동영상을 보면서 아이의 관심을 끌고 추억을 이야기하는 건 훌륭한 언어 수업시간이 되었다. 동화책을 읽어주는 것보다 익숙한 장면과 기억을 더듬어가며 그 날 우리가 무엇을 보았는지, 얼마나 즐거웠는지 이야기해주는 시간을 아이는 더욱 즐거워했다.   

태안의 어느 해수욕장에서
"와, 준영아 여긴 어디야?"
"바다"

"바다에 누가 있어?"
"아빠"
"그리고?"
"준영이"

"저 하늘 위에는 뭐가 있어?"
"새 짹짹"
"아! 짹짹하고 우는 새가 있구나!"

 반드시 어딘가 멀리 떠나야만 여행은 아니다. 일상으로부터 벗어나 즐거운 경험을 하고, 함께 있는 순간을 온전히 즐길 수 있다면 그곳은 매일 보는 풍경이지만 새로운 여행지가 되었다. 별똥별이 쏟아진다는 뉴스를 보면 돗자리와 얇은 담요를 들고 아파트 뒤뜰에 나가 밤하늘의 별똥별을 기다리면서 두런두런 이야기도 나누고, 비가 오다 그치면 우비를 입고 평소와 다른 풍경의 놀이터에서 젖은 미끄럼틀을 타고 젖은 모래를 맨 발로 걸어보기도 했다.

 주말 아침에는 밀린 잠을 푹 자고 싶고, 누워서 책을 읽으며 쉬고 싶기도 하지만, 내가 온 힘을 다해 다니는 가장 큰 이유는 아이에게 더 많은 경험을 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아직 내 힘이 아이의 힘보다 클 때, 우는 아이를 내가 안아주고 업어줄 수 있을 때, 남들의 시선 속에 아직 어리니까 하는 이해가 담겨 있을 때 많은 것을 보고 느끼게 해주고 싶다. 그러면 나보다 키가 더 크고 힘이 더 세어진 날이 왔을 때, 장애가 있더라도 부모의 도움을 조금 덜 필요로 하고 세상의 규칙을 조금 더 이해하는 사랑받는 청년이 되어 있지 않을까 하는 바람으로 나는 또 용기를 가지고 뚜벅뚜벅 세상 밖으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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