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유치원에 갔더니 담임선생님이 아주 들뜬 목소리로 오늘 준영이가 패션모델을 하겠다고 자원을 했다며 사진을 찍어 보여주셨다. 아이들과 함께 옷을 만들어보고 패션쇼를 하는 이벤트를 했는데 선생님이 “모델 해 볼 사람?” 했더니 위풍당당하게 준영이가 손을 번쩍 들고 “저요!!!”를 외쳤다고 한다.
평소 거추장스러운 걸 참지 못하는 편이라 걱정하셨는데 옷도 잘 걸치고 시범대로 파워워킹을 선보여서 깜짝 놀라셨고 선생님들과 친구들이 모두 즐거워했다고 전해주셨다.
그 뒤로도 노래를 가르쳐주고 불러볼 사람? 하면 또 번쩍 저요! 를 외쳐서 동요 선창을 해보기도 하고 잘 하지 못해도 씩씩하게 손을 드는 준영이로 인해 유치원에서는 여러 에피소드가 생겼다.
사실 준영이가 손을 들고 ‘저요’를 외치는 건 일종의 반향어이고 루틴(일상적 규칙)이다. 어려서부터 호명 반응이 거의 없던 아이였다. 그래서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진단받고 호명 반응을 유도하는 연습을 많이 했다. 특히 집에서는 아이가 즐거워하는 놀이나 과자를 가지고 일상적인 호명에 관한 상황 연습을 꽤 많이 한다. 엄마는 선생님이 되고 아빠는 아이의 친구가 되어 같이 손을 들고 대답하는 풍경이 우리집에서는 일상이 되었다.
- “과자 먹을 사람? 손 번쩍 들어요”
- “저요!”
- “너 누군데?”
- “준영이요”
주로 이런 상황극이나 이름을 부르면 “네!”를 대답하고 돌아보는 연습, 나이가 몇 살인지 어느 학교에 다니는지 등 일상적으로 자주 쓰이는 상황에 대비한 연습을 많이 한다.
그러다 보니 “**할 사람?”이라고 하면 거의 자동적으로 “저요”라고 대답하는 패턴이 생겼는데 그 습관이 유치원에서도 나온 것이다. 물론 준영이가 선생님의 말을 이해하고 정말 하고 싶어서 손을 든 것일 수도 있지만 표현을 못하니 진실은 알 수가 없다.
어쨌든 중요한 건, 스스로 많은 친구들이 있는 가운데에 내가 해보겠다고 손을 들고 당당하게 “저요”를 외쳤다는 것이다. 그리고 시켰을 때 거부하지 않고 선뜻 일어나 상황에 맞는 행동을 수행했다는 것이 선생님과 나를 아주 뿌듯하게 했다.
또 자신이 무엇인가를 했을 때 선생님이나 친구들이 즐거워하고 기뻐했다는 것도 어렴풋이 아이는 느꼈을 테고 이러한 다양한 경험의 축적은 아이를 내적으로 성장시킬 것이라 생각한다.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다양한 치료를 받았고 매일 치료시간이 끝나면 그 날 수업에 대한 피드백을 들었다.
“오늘은 이 수업을 했는데 집중을 너무 못해서 나머지 10분은 그냥 좋아하는 장난감을 가지고 놀았어요”
자신의 감정을 말로 표현하지는 못하지만 아이는 점점 이런 타인의 평가에 예민해지는 것 같다. 본인이 잘 모르는 것을 물어보거나 시키면 아주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거나 기가 죽은 듯한 모습을 보여서 치료 수업도 많이 줄였다. 그러고 나서 집에서 다양한 놀이와 상황 연습을 하는데, 요즘 많이 알려주는 말은 ‘몰라요’ 다.
잘 몰라도, 잘 하지 못해도 괜찮아
그럴 땐, 울지 말고 모른다고 말하면 되는거야
숲 어린이집에 다닐 때 원장님께서 자랑스럽게 말해주신 게 생각난다.
“우리 유치원은 학교 입학 때까지 문자 교육을 하지 않아요. 작년에 졸업한 원생 아이가 학교에 입학했는데 혼자 한글을 모르니까 담임선생님이 의아해하며 어느 유치원을 다녔는데 한글을 모르냐고 물어봤답니다. 그랬더니 우리 아이가 당당하게 저는 한글 배우려고 학교 왔는데요!라고 대답했다고 해요. 그런 상황에서 기죽지 않고 당당하게 자기 생각을 말할 줄 아이로 키웠다는 게 정말 뿌듯하고 기특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