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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술치료사 레이첼 Nov 18. 2015

새로운 이름을 갖는 다는 것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마음에게

 11년동안 취업 스킬, 이미지메이킹, 커뮤니케이션 등 스킬 위주의 강의를 해오던 내 마음 한 구석에는 늘 ‘성공’을 위한 강의보다는 ‘성장과 성숙’을 위한 강의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자리잡고있었다. 그동안의 경력이 소용없게되더라도 사람들을 더 가깝게 만나 그들의 마음 속 이야기를 나누는 상담 분야에 대한 갈증이 커진 것은 너무나 가깝고 소중한 나의 지인때문이었다.


 그는 10여년 전 사고로 형을 잃었고, 나는 그와 가깝게 지내는 동안 한번도 형에 대한 이야기를 듣지 못했다. 아니, 형의 존재조차 알지 못했다. 그를 알고 시간이 한참이 지나서야 우연히 어머니를 통해 형의 존재를 알게 되었고, 그 후로도 수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는 나에게 형의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형과의 추억을 마음 속에 꽁꽁 숨겨두고 꺼내지 못하는 그와는 달리 그의 어머니는 너무나 편안하고 행복했던 큰 아들의 어린 시절을 회상했다. 아들의 이야기를 하는 동안 보이는 인자하고 부드러운 표정에서 당시의 아픔이 너무나 건강하게 치유되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아픈 기억 어딘가에 머물러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는 그가 형을 편안하게 추억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은 자연스럽게 나의 강의 무대를 옮겨 사람들의 마음의 이야기를 듣는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했다.


 기존의 일을 거절하는 것도 쉽지 않았고, ‘저 이제 다른 일을 합니다’라고 알리고, 새로운 분야에 대한 신뢰를 얻는 일은 더욱 만만찮았다. 단지 새로운 것을 하고싶다는 의지만 있을 뿐, 나에겐 상담관련 자격증도, 전문 지식도 충분하지 않은 상태였던 것도 사실이다. 더군다나 ‘무엇’을 할 것인지도 명확하지 않았다.

 전략이 필요했다. 내가 기존에 가지고 있는 것들을 활용해 도전해보기로 했다.

 첫 번째, 인맥! 그동안 나에게 기회를 주고 믿어줬던 분들을 찾아 뵙고 하고자 하는 계획을 말씀드렸다. 무엇보다도 내가 이 일에 확신을 가지고 있음을 설명해드리고자 했다. 조언을 들으며 다양한 분야로의 진출을 고민할 수 있게 되었을뿐더러 관련된 분야의 일이 생기면 나를 제일 먼저 기억하고 연락해주는 분들이 생겼다. 지인들과의 만남은 스스로에게 ‘잘 해왔다’, ‘잘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주었다.

 두 번째, 무대! ‘아예 새로운 판을 짜든지, 기존의 판에서 새로운 것을 시도하여 서서히 다른 판으로 옮겨가 영역을 넓히든지’. 고민을 해본 결과 기존의 판에서 나의 색을 입히는 것이 자격증이나 관련 지식이 많지 않은 나에게 더욱 효율적이라고 판단했다. 그래서 대학교를 대상으로 일을 구상했고, 새로운 시작에 대한 두려움을 줄일 수 있었고, 같은 무대를 다른 시각으로 보는 재미 또한 얻을 수 있었다.

 이 두가지 준비만으로도 새로운 발판은 충분히 마련이된 듯했다. 완벽한 준비를 하겠다는 마음 보다는 차츰 준비하며 더 깊이 있게 천천히 가보고 싶었다.


 허술한 듯, 그저 감성만으로 시작된 나의 고민은 얼마 되지않아 바로 첫 프로젝트를 실시할 수 있게 되었다. 지인의 추천으로 서울 소재 한 대학의 취업 관련 행사에서 ‘마음에서 온 이야기(from. Heart)’라는 이름으로 응원의 메시지를 주고 받을 수 있는 프로그램을 기획했고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사회인, 대학생, 연예인, 교직원 등의 참여로 약 200여 개의 응원메시지가 행사 부스를 가득 채웠고, 참가자들에게서 응원을 받고 마음이 따뜻해졌다는 평가를 받았다. 또 ‘응원 메시지를 쓰는 동안 나에게 하는 말 같아 울컥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어 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했던 기획의도가 그들에게 전해진 것이다. 이 프로젝트가 내가 하고자하는 궁극적인 일과 완전히 맞아떨어지는 일이 아닐수는 있지만 고민한 일이 시작되고 이루어지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기회였음은 분명했다.  

대학생 응원프로젝트 '마음에서 온 편지(from.Heart)


 새로운 시작은 설렌만큼 두렵고 캄캄하다. 하지만 그 시작이 기대될 수 있는 것은 내가 지금까지 잘 해왔다고 믿는 믿음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느꼈다. 새로운 시작이 두렵다면 내가 가진 것들, 내가 해온 것들을 점검해보기를 권한다. 사실 나는 8개월 쌍둥이를 둔 세 아이의 엄마다. 도전은커녕 기존의 것도 이어나가기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영역으로 발을 대딛을 수 있었던 것은 상황을 부정하거나 조급해하지 않고 할 수 있는 것들부터 시작했기 때문이다. 내가 가지고 있는 그 이야기들은 하나하나 모자이크 조각이고, 그것이 모여 지금의 나라는 작품이 만들어진 것이다. 미래를 위한 우리의 지금 고민 역시 위대한 설계자인 신이 아름다운 작품을 만들기 위해 준비해둔 조각의 일부일 것이다. 아직 형체를 알아볼 수 없어도 괜찮다. 뒤돌아보면 모든 조각들이 멋진 계획이었음을 깨달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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