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한국 사회와 건축
한국 건축이 어떻게 발전해왔는지, 어떠한 흐름을 가졌는지, 어떤 대가들이 존재했는지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
그저 단순히 단상들을 늘어다 놓고, 그것에 대해서만 이야기하고자 한다.
지금을 정확히 파악할 때, 우리가 해야할 일이 명확해질 것이니까.
“거대담론도 사라지고 존경했던 사람들의 추락도 많이 보고 하니까 뭔가 사표(師表)로 삼을 만한 대상을 성급하게 구하고 싶어하는 마음은 이해가 가지만, 사표나 스승이라는 건 당대에는 존립할 수 없는 겁니다. 어떤 개인의 인격 속에 모든 게 다 들어간 사표가 있다면 공부하긴 참 편하겠죠. 그렇지만 그건 낡은 생각이에요. 집단지성 같은 게 필요하고 집단지성을 위한 공간을, 그 진지를 어떻게 만들 건가가 앞으로의 지식인들이 핵심적으로 고민할 과제예요.”
-김훈, Yes24와의 인터뷰 중.
다른 것보다 거대 담론이 사라지고 있다는 점에서 동의한다. 하지만 거대 담론이 움직일 수 있는 세대가 존재하고 있다는 점에서 '거대 담론의 효용성'까지 부정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지금 한국의 10~30대는 거대 담론으로 희생된 개인이 이슈가 되고, 그 개인이 나일 수 있다는 것에 상당한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중 대부분은 그러한 담론이 만들어낸 피해를 직접적으로 받고 있다. 문민정부에서 시작하여 아직까지 이어져오고 있는 대기업 키워주기가 바로 그들이 느끼는 가장 현실적이고 직접적인 피해일 것이다. 너도나도 공기업, 공무원을 하려고 노력한다. 한국 정부는 대기업 키워주기를 통해서 경제를 성장시켰다. 한때는 대기업이 안정적인 직장이었던 시기가 있었지만, 이제 대기업마저도 안정적인 직장이 되지 못한다. 10~30대에게 남아있는 선택지가 그리 많지 않다. 이러한 경험은 자연스럽게 부모와 선배 새대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진다. 더욱 불행한 사실은 이나라 교육시스템은 청년들 사이에 '경쟁'만 남겨놨다는 것이다. 집단지성의 공간은 참 좋은 것이지만, '경쟁'만 하던 청년세대에게 건설적인 토론을 통해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나갈 공간에 대한 필요성과 그것을 만들어 낼 의지가 존재할까? 물론 소수는 존재하겠지만, 그것이 모든 청년에게 불편함과 동시에 필요에 대한 인식에 미칠 수 있을까싶다. 개인적으로 그런 공간이 만들어지면 참 좋겠지만...
숫자는 진실의 모든 것을 말해주지 않는다. 한국의 빈곤율은 약 15~20% 수준이다. 중위소득 50% 이하일 때 ‘빈자’로 분류되는데, 2인 이상 가구 중위소득이 300만원이고 그 절반이 150만원이므로, 한국 인구의 15~20%는 월 150만원 미만을 버는 가정에서 살고 있는 셈이다.
매년 바뀌는 통계 기준으로 인해 들쭉날쭉하긴 하지만, 절대빈곤층으로 분류되는 ‘기초생활수급권자’는 약 150만 명이다. 사실상 기초수급권자이지만, 아들 또는 형제가 어디선가 돈을 번다는 이유로 혜택에서 제외된 ‘기초수급 경계집단’은 약 400만 명이다. 전체 인구 가운데 열의 하나가 근근이 산다. 그런 가족의 구성원인 10~30대가 마냥 푸른 시절을 보내고 있겠는가.
(...)
한국에는 미국, 유럽, 남미의 대도시에 현존하는 슬럼이 없다. 슬럼의 초기 모델이었던 ‘달동네’조차 사라졌다. 도시 개발이 이들을 몰아냈다. 60년대 청계천, 80년대 상계동, 90년대 난곡 등을 거치며 빈민촌의 거의 전부를 도시에서 밀어냈다.
이것이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 알 수 없으나, 그 효과는 확실하다. 한국인들은 빈곤을 체감하지 못한다.
동서고금의 혁명 대부분이 슬럼에서 시작했다는 점을 떠올린다면, 한국은 확실히 빈곤층에 의한 혁명 가능성을 거세했다. 한국의 빈곤층은 슬럼에서 봉기하여 궁전을 장악하는 도적떼가 될 수 없다.
모든 자살을 빈곤과 직결시킬 수는 없지만, 자살은 결국 고립의 결과이고, 고립의 절대다수는 사회경제적 빈곤과 연결돼 있다. 칼을 들어 행인을 찌르는 것과 제 목을 찌르는 것의 차이는 백짓장 한 장보다 얇다. 심리적으로는 물론 물리적으로도 고립된 한국의 빈자는 살인 대신 자살을 택한다. 브라질의 슬럼이 참혹한가, 한국의 지하방이 참혹한가.
혐오를 재생산하는 사회가 되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혐오'는 사회경제적 빈곤과 유의미한 연결고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사회 전반적으로 확대 재생산되고 있는 '혐오'의 이면에는 결핍과 고립이 존재한다. 소위 '갑질'이라고 일컫는 '갑을'문화 또한 마찬가지다. 약자를 멸시하고 상대적으로 자신의 반대편의 사람을 비난하지 않고는 버틸 수 없는 삶이 한국에 만연해있다. 여기에는 공동체 문화가 사라지고 있는 현실 또한 큰 영향을 미쳤으리라. 정부가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소셜믹스(한 단지 안에 분양과 임대주택을 혼합 배치해 저소득층 차별을 없애고 사회적 통합을 꾀한다는 취지의 정책) 또한 삐그덕거릴 뿐이다. 분양자들은 저소득층 주민들을 철저히 배제한다. 그리고 문제의 원인을 저속득층과 그들을 지원하는 정부에게 돌린다.
프루이트 이고이는 근대 최고의 거장 르 꼬르뷔지에(Le corbuisier)의 도시계확안인 '빛나는 도시'의 연장선에서 계획되었다. 이 단지는 모더니즘의 완성이자 주택단지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고 극찬받았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프루이트 이고이가 위치한 세인트 루이스는 도시화가 가속화되면서 이주민들을 위한 거주공간이 필요했고, 도시의 슬럼가를 밀어버리고 프루이트 이고이 아파트 단지를 계획했다. 하지만 이곳을 가득 채운 것은 극빈층 밖에 없었고, 아파트 단지 자체가 슬럼화되기 시작했다. 주 정부는 프루이트 이고이에 세금을 쓰는 것을 기피했고, 아파트는 망가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결국엔 철거로 이어졌다. 건축사에서는 프루이트 이고이 단지 철거를 근대 건축의 대미라고 여기기도 한다.
프루이트 이고이의 철거가 가지는 의미는 다양하다. 대형 미디어 또한 이 사건을 많이 다루었다. 여기서 프루이트 이고이의 철거가 가지는 의미를 논하려는 것은 아니고, 단지 우리에게는 이러한 주제를 논의할만큼의 이슈와 담론이 없다는 것을 이야기하고싶다. 슬럼가가 사라진 우리의 도시 속에서 빈민층은 도시 밖으로 쫒겨나거나, 고시원 같은 곳에 숨어들기 시작했다. '주거'와 관련된 사회의 거대한 문제가 도시의 화려함 속에 가려지기 시작했다. 애초에 저소득층을 위해 지어지는 아파트는 많다. 하지만 투기 자본주의가 그것을 단순히 저소득층에게 돌아가는 것을 놔두지 않는 것에 있다. 투기 앞에서 자본의 윤리는 무너진다. 서울에는 서울시민이 한 가구당 한 집을 가질 수 있을만큼 많은 주거 공간이 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집을 구하지 못해 떠돌아다니는 것은, 한 사람이 너무 많은 집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드러나지 않은 문제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도 느리지만, 드러난 문제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도 꺼려한다. '삼풍 백화점'이나 '세월호', '와우 아파트'가 그렇다. 수많은 안전 사고에도 책임지는 사람은 없고, 피해자만 속출한다. 얼마전까지만해도 나는 정치의 주된 언어는 '선택'이라고 생각했는데, 요즘에는 '배제'같다. 부정적 의견들을 적극적으로 배제하고나면, 남은 선택지를 고르는 것이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에게 인간적인 선택지가 적극적으로 '배제'되는 현실을 본다. 긍정의 언어는 마약같다. 나만 그렇게 행동하면 사회가 정말로 그렇게 변할거 같다. 하지만 개인의 긍정적 선택의 이면에 타인에 대한 인간적인 선택지가 베제되는 현실은 외면한다. 긍정의 기만이다.
서비스업종에서 일하는 모든 청년 노동자의 공통점이 있다. 그들은 유니폼을 입는다. 유니폼은 빈곤을 탈색시킨다. 예부터 귀족은 하인들이 제 옷을 입도록 내버려 두지 않았다. 불쾌하기 때문이다. 가정부는 주인이 마련해준, 레이스가 달려 보기에 좋은 ‘메이드 드레스’를 입는다. 이제 빈곤 청년은 기업이 마련해준, 화려하여 금세 눈에 띠는 유니폼을 입는다.
우리 곁에서 일하는 빈곤 청년은 자신의 가난을 ‘화장’한다. 화장하지 않으면 우리는 그들을 곁에 두지 않는다. 아름다운 용모에 짙은 화장을 하고 단정하게 유니폼을 입은 백화점 화장품 매장 직원의 거의 전부는 시급 4천 원짜리 계약직이다.
그래도 빈곤 청년들은 ‘탓’을 하지 않는다. 정부·정당·노조·언론에 기대를 걸지 않는 동시에 그들에게 제 인생을 책임지라고 요구할 생각이 없다. 부모 사업이 망해버렸으니, 학교 다닐 때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았으니, 좋은 학교를 졸업하지 않았으니, “어쩔 수 없다”고만 말했다.
고교 졸업 뒤 낮에는 아르바이트를 하고 밤에는 졸린 눈을 부비며 공부하여 전문대를 졸업했지만, 여전히 대형마트에서 계약직으로 일하는 스물여섯 살 점원의 말을 나는 잊을 수가 없다. “세상은 공평한 거 같아요. 저는 공부를 못했거든요. 그래서 이렇게 된 거죠.”
빈곤 청년들은 ‘경쟁’을 내면화하고 있다. 경쟁에서 이겨야 한다는 열성은 없지만, 경쟁에서 낙오했으니 어쩔 수 없다는 열패감을 자연스레 수용한다. 그들의 열패감 또는 무력감을 기성세대가 탓하는 것은 적반하장이다. 그들을 그렇게 만든 것은 이른바 ‘386세대’ 또는 ‘민주세력’이다.
나는 최근의 '여혐'논란이 '386세대'와 '민주세력'의 연장선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10-30대에게 가장 좋은 것을, 10-30대보다 더 잘 안다고 생각한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부터 10-30대를 위한 정치 권력은 존재하지 않았다. 민주화 시대에는 그저 그들이 앞으로 나와서 싸웠다. 나는 그들이 이뤄낸 성과를 부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들이 만들어낸 성과는, 그들로 하여금, 그들이 옳다라는 관념을 만들어낸 듯 하다. 그들이 하란대로 하면, 민주주의는 완성되고, 경제민주화는 달성될 것 처럼 말한다. 그들은 여전히 유신세력과 싸우고있다. 그들은 여전히 투사이다. 세상은 변했는데 말이다. 신자유주의가 대중의 삶을 이렇게나 흩으려놓고 있는데, 이제 더 이상 학생들은 공권력에 저항하기 위해 광장으로 나올 수 없는 상황에 처해있는데, 그들은 과거의 망령을 붙들고 있다. 그들에게 현재란 없는 것 같다. 그렇기에 그들에게 대중이란 여전히 '계몽'의 대상이고, 옳은 것이 무엇인가를 가르쳐야하는 존재이다.
그렇다면 왜 우리나라에서는 청년들이 그렇게도 기피한다는 3D업종의 임금이 낮게 책정되어 있는 것일까? 한 해 수십만 명씩 쏟아져 들어오는 외국인 근로자가 그 이유 중 하나다. 외국인 근로자가 없다면 3D 업종의 기업들은 수요와 공급이 만나는 적절한 균형점까지 임금을 올릴 수밖에 없다. 하지만 턱없이 낮은 임금으로 고용할 수 있는 외국인 근로자가 존재하는 한, 굳이 우리 청년들을 비싼 값에 고용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 외국인 근로자들은 아무리 낮은 임금이라도 몇 년만 일해서 돈을 모아 고국에 돌아가면 꽤 풍요로운 삶을 누리게 될 것이라는 꿈을 꿀 수 있다. 하지만 우리 청년들이 외국인 근로자 수준의 저임금을 받게 되면, 결혼해서 가정을 꾸리고 자식을 낳아 키우며 사는 기본적인 삶조차 영위하기가 쉽지 않다. 이런 차이를 도외시한 채 '외국인 근로자들은 3D업종이라도 마다하지 않고 몰려오는데, 정작 같은 일을 하려는 한국 청년은 찾을 수가 없다'며 우리 청년들을 나약하다고 비난하는 것은 너무나 부당한 일이다.
'스펙타클 사회' 속에서 삶은 전시되는 것이지, 누리는 것이 아니게 되었다. 기 드보르나 한병철씨는 이러한 현상을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있지만, 개인적으로 이러한 현상이 개인과 개인 사이의 연결을 더 다변화 시켜주는 하나의 요소라고도 본다. 물론 부정적인 부분에 있어서 한병철씨와 드보르의 지적이 유효한 지점은 존재한다. 물론 몇십년전의 사람이 현대 사회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는 것이 매우 놀랍고, 그의 통찰력에 소름끼치는 부분이 있지만. 사회는 그러한 방식으로 변하고 있고, 우리는 그러한 삶의 방식에서 관계에 깊이를 더해가는 노력을 해야할 것이다. 여하튼 건축업에 종사하다보면, 30대 젊은 사장의 깔끔한 일처리와 사업 수완에 칭찬을 마다않는 현상을 한번씩 목도한다. 문제는 그러한 이들이 드물다는 것과 그들이 그곳에서 자그마한 변화를 이끌어가는 것에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는 점에 있다. 받는 돈만큼이나 복지와 업무 환경이 중요한 시대가 되고 있다. 하지만 3D업종은 그러한 변화에 둔감하며, 그러한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낮은 임금의 외국인 근로자가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점을 볼 때, 독일 건설 노동자의 외국인 노동자 임금 정상화를 위한 집단 파업에는 큰 의미가 있다. 그들은 외국인 노동자가 임금을 착취당하는 현실에 분노하지 않는다. 같은 가격이면 소통이 어려운 외국인 노동자보다 자국 노동자를 고용할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외국인 노동자 또한 같은 임금을 받아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중국과의 가격 경쟁에서 밀리기 시작하자, 우리 정부는 외국에서 저임금 근로자를 대거 불러들여 중국과의 원가 경쟁에 나서는 정책을 택했다. 그 결과, 기업들은 우리 청년들을 고용해 장기간 교육훈련을 거쳐 뛰어난 기술 인력으로 육성하는 것보다 당장 임금이 낮은 외국인 근로자를 고용해 비용을 낮추는 편이 단기적으로 훨씬 유리한 전략이 되고 말았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외국인 근로자는 3년 이상 고용하기 힘들기 때문에 기술을 전수하기가 어렵고, 전수한다고 하더라도 그들이 자국으로 돌아가면 오히려 우리의 잠재적 경쟁자가 되었다. 결국 외국인 근로자의 저임금 공세에 우리 청년들이 밀려나면서 '뿌리 산업'에서의 기술혁신 주체도 함께 사라지고 만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 미담은 개인적 차원에서만 존재하고, 국가적/사회적 차원에서 존재하지 않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대중들은 즐거운 삶과 더 나은 우리를 위해 움직이는데, 대중을 이끄는 정치인들은 이 나라를 반대로 끌어가고 있는 듯 하다.
문화예술위원회가 커미셔너를 맡고, 서울시립대 김성홍 교수가 예술감독으로서 총괄해 준비한 한국관 전시는 2016년 베니스비엔날레 건축전의 전체 주제인 ‘전선에서 알리다'(Reporting from the Front)에 대응해 지난 50년 동안 서울의 변화를 가장 압축적으로 설명하는 키워드이자 집단적 욕망을 드러내는 지수(指數)인 ‘용적률’을 한국건축의 최전선으로 해석했다.
한국관 전시주제인 '용적률 게임: 창의성을 촉발하는 제약'은 지난 50년동안 ‘건설한국’의 동력이자, 한국인의 내면에 깊이 자리 잡고 있는 용적률을 향한 욕망을 사회경제적, 일상적, 창의적 관점에서 조명한 전시이다.
한국에서는 많은 건축주와 대지소유주가 건축의 보여지는 질보다 보이지 않는 가치에 돈을 지불한다. 건축 그 자체는 실제 부동산 시장에서 가치가 매겨지지 않는다. 건축의 평균 수명은 인간읜 평균 수명보다 훨씬 더 짧다. 만약 더 큰 용적률을 제공하는 건축물을 제안할 수 있다면, 건물을 무너뜨리고 재건축하는 것을 추구한다. 건축물의 구조 안정성 테스트가 실패 했을때 심심치 않게 축하 현수막을 볼 수 있는 것은 곧 건축물 폐기가 인증된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아라베나가 '최전선에서 알리다'라는 주제를 선택했을 때에는, 사회적 문제의 건축적 해결방안을 모색하고자 했다. 하지만 이를 어쩌나, 한국에서 건축은 한국 사회의 문제를 집약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용적률'이야 말로 한국 사회가 가지고 있는 욕망과 배제의 현 주소이기 때문이다.
용적율 게임이 한국에 특별히 의의를 가지는 것은, 전례업는 경제적 성장의 역사 때문이다. 1962년, 건축과 도시계획이 처음으로 수립되었을 때, 한국의 1인당 GDP는 100달러보다 적었다. 이후 50년 동안 1인당 GDP는 300배 정도 성장하였고, 부동산 가격은 600배 가량 뛰었다. 이것은 "압축 성장"과 동시에 초-고밀도 국가 도시 산업 허브 - 특히 서울과 같은 거대 메트로폴리탄 지역 -의 형성을 유도하였다. 지구/지역 기반의 건축법과 변칙과 여러 다른 종류로 이뤄진 도시 요소의 결합은 한국 도시 건축가로 하여금 용적율 게임으로 특정지어지는 삶의 공간이 자포자기 식으로 복잡하게 성장하는 현실을 피할 수 없었다.
2008년 금융위기 후 ‘부동산 불패 신화’가 깨지면서 작지만 의미있는 변화가 감지되어 왔는데, 소수의 토지주와 건축주들이 최대 면적을 짓는 것이 최고 투자수익을 담보할 수 없다는 사실에 눈을 뜨기 시작하면서 아파트와 고층건물 사이의 중간 건축에서부터 변화가 일어났다. 그리고 홀로서기를 시작한 젊은 건축가들이 이 시장에 뛰어들기 시작한 것이고, 한국관은 그 과정 속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창의성에 주목했다.
변화는 가장 낮은 곳에서부터 시작한다. 땅콩집이 주목받기 시작하면서, 주택이 변하기 시작하고, 저층의 근린생활 시설이 변화하기 시작했다. 건축은 이제서야 문화가 되기 시작했다.
김성홍 교수의 말처럼 좁은 대한민국 땅덩어리에 지어지는 모든 건물은 태생적으로 용적률의 마지막 한 방울까지 죄다 짜낼 것을 요구받는다. 특히 오랫동안 집은 ‘사는 곳’이 아니라 ‘파는 것’이라는 생각이 만연한 이곳에서, 모든 건물은 최소한의 투자로 최대한의 수익을 뽑아낼 것을 강요받는다. 심지어 건축가들은 법이 허용하는 용적률보다 더 많이 짓는 ‘마술’을 요구받기도 한다. 용적률뿐 아니라 일조사선, 도로사선이 마구잡이로 대지 위를 가로지르는 상황에서 건축가들은 건물은 자신이 아니라 건축 법규에 의해 만들어진다고 자조적으로 말하기도 한다. 용적률을 꽉꽉 채운 건물에서 건축가에게 남겨진 것은 ‘껍데기’뿐인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이번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은 용적률을 ‘창의성을 촉발하는 제약’이라고 한다. 건축주의 욕망과 공적인 법규가 극단적으로 대치하는 상황에서, 건축가는 불가능한 창조에 몰두하게 된다. 어떻게 보면 용적률을 모두 채우고 남겨진 그 얇디얇은 껍데기에 ‘깊이’를 부여하려고 싸우고 있는 것이다.
사실 결말을 어떻게 지어야 할지 생각하지 않았다. 한국 사회의 단면을 다루며, 지금 당장 필요한 변화에 대해서 이야기하면 뭔가가 떠오를거라 생각했는데. 한국의 건축가들은 베니스 비엔날레에 가서 한국의 특수한 사회적 현상이 만들어낸 '건축적 문제'를 다루고 있었다. 물론 나는 그들의 문제제기가 아라베나가 제시한 주제의 맥락에서 크게 벗어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용적률'은 분명히 한국 사회가 가지고 있는 문제의 제도적/법적 발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이러한 주제가 굉장히 '소극적'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물론 이런 프로젝트 처럼, 적극적으로 사회 문제를 해결하려는 건축가 또한 존재한다.
UIA(위진복, 서울시 공공건축가)는 서울 영등포 고가도로 하부에 20개 중고 해상 컨테이너를 이용하여 쪽방촌 지역의 리모델링을 위한 임시 거주시설 및 커뮤너티 센터를 설계하였다. 열악한 쪽방촌 지역의 리모델링 공사기간 동안 거주민들에게 커뮤너티 공간과 1.5평 크기의 36개 거주 공간을 제공한다.
이 지역은 열악하고 비위생적인 상태로 남아있어, 주변 타임스퀘어, 백화점 등 개발된 현실과 극도의 대비를 보여준다. 2011년 보궐선거 후 당선된 박원순 서울시장은 이 지역 도시 재생의 지침을 발전시키기 위한 전략적 리모델링 프로젝트를 시작으로 열악한 주거환경 개선을 하기로 결정하였다.
신영복 선생님은 '변화는 변방에서 시작된다.'고 이야기 하셨다. 이러한 시도는 도시 한 켠에서, 골목에서 시도되고 있다. 건축가들에게 '용적률'은 매우 거대한 문제이다.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가늠할 수 없는, 하지만 노숙자를 위한 도시 재생 프로젝트는 건축가에게 커다란 문제는 아닐 것이다. 하지만 지역 주민과 노숙자에게는 보다 중요한 문제일 것이다. '용적률'을 다루는 문제는 건축가에게 '소극적'인 문제제기는 분명히 아니다. 하지만 건축 바깥의 사람들에게 '용적률'은 그다지 큰 문제가 아니다. 그들에게 큰 문제는 화려한 도시 속에서 썩어가는 부분이 존재하는 것이며, 한국 사회 속에서 사는 대중의 삶처럼 썩어가고 있다는 현실일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에게 '용적률' 문제는 '소극적'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건축가가 매 학기 떠돌아다니는 대학생을 위한 주거를 계획하고, 공동체의 회복을 위한 주거 단지를 계획하고, 사회적 약자가 목소리를 드높일 수 있는 광장을 기획할 수 없을까. 건축 자체의 문제보다는, 이러한 사회적 문제에 대해서 자성과 해결의 목소리를 높여야 되지 않을까. 건축의 문화로서의 회복보다, 건축의 윤리성 회복이 더 시급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건축은 마땅히 간인間人을 위해 참으로 인간성 회복과 증진을 위해 존재해야 하지 않는가? (중략) 실로 건축이 인간해방에 기여할 무엇이 전혀 없다면, 우리는 더 이상 인문학적 고민도 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건축이 진정 돈으로 사고파는 상업행위에 불과하다면, 건물은 오직 상품일 수밖에 없다면, 더 이상 힘든 고난과 고통을 부여안고 건축의 길을 걸어야 할 이유가 우리에게는 없다. 건축행위 그 자체만으로 이미 궁극 가치와 의미를 갖는 자유함에 이르는 길에 아무 역할을 할 수 없다면, 더 이상 나는 비평을 구하지 않을 것이다. 관습의 되풀이, 이데올로기의 방편, 정치의 도구, 욕망의 수단 이상을 읽어내려는 일체의 몸부림을 집어치울 것이다. 한 마디로 더는 '건축'을 하지 않을 것이다.
저항은 어김없이 거의 패배로 끝난다.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저항이 소멸되는 것이 아니다. 앞서 서경식 교수가 썼듯, 시가 되는 저항은 패배로 끝나도 다른 시대, 다른 장소의 저항을 고무한다. 그래서 "희망이 없지만 걷는 수밖에 없다. 걸어야만 한다. 그것이야말로 '희망'이라는 이야기다."
-이종걸 교수, 건축의 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