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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평 Jul 28. 2017

[자발적 리-뷰] 하우스포라 선언(1/2)

by 이중용


자발적 책읽기_

모임 소개


"책을 읽습니다. 누가 시켜서가 아닌 자신의 의지로. 함께 읽습니다. 책을 처음 읽는 사람, 관심 있는 사람, 사랑하는 사람, 활용하는 사람. 모두와 함께 읽습니다."


스스로 책을 즐기는 사람들이 모여서 자발적으로 책 읽는 문화를 만들고자 독서모임을 비롯한 책과 관련한 다양한 문화활동을 기획 및 실행합니다.

http://band.us/n/a6afT4yac4Ycx





[자발적 책읽기]의 새로운 프로젝트 

: 자발적 리-뷰


안녕하세요 :)

[자발적 리-뷰]를 기획/편집도 하고, 글도 쓰고 있는 쳔평입니다. 앞서 두편에는 기획의도만 담았는데, 이렇게 인사드리는건 처음이네요 반갑습니다. 기획의도는 장황하게 썼지만, 간단히 말하자면 "이런 좋은 책도 있는데, 같이 읽지 않으실래요?" 입니다.  특히나 저희가 다루는 책들이 대형서점에서는 보기 힘든 일부러 손품을 팔아 찾아야 하는 책들이기 때문에, 책을 소개하고 이야기 나누는 행위가 더더욱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자발적 리-뷰]는 월 1회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더 많은 책을 다루고 싶지만, 모두 직장인들인지라 그러기가 쉽지 않네요. "독립출판물"을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지만, 조금 더 넓게는 "대형서점에서 찾기 힘든 종류의 책들"또한 다루려고 합니다. 아직까진 책을 소개하기 위한 틀이 완벽하진 않지만, 꾸준히 개선해가려 합니다. 개인적인 욕심으로는, 최근 있었던 "서울국제도서전 2017"에서 발견한 지방 출판사들의 책들도 언젠가는 다루고 싶습니다.


쓰다보니 이야기가 길어졌네요. 오늘 소개드릴 책은 [하우스포라 선언]입니다.

[하우스포라 선언]을 출간한 Remark Press에서는  집에 대한 생각들을 모아 출판, 전시, 워크샵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한 번쯤 둘러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입니다.


이제 시작합니다. 재미있게 읽어주세요 :)


http://remarkpress.kr/home




책 소개_

하우스포라 선언

by 이중용



To.
집을 잃어버린, 잃어가는, 잃어버릴 사람들



책 소개
오늘, 당신의 집은 안녕한가?
집이라는 물리적 대상만 놓고 볼 경우, 이 질문에 긍정적인 대답을 하려면
최소한 다음 세 가지 기준이 충족되어야 한다. 첫째, 자가든 임대든 집이 있다.
둘째, 빚이 없거나 혹은 있더라도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다.
셋째, 수입이 안정적이며 향후에도 마찬가지다. 달리 말하면, 안심하고
집에서 살기 위해서는 세 종류의 돈에 대해 생활할 집을 마련할 수 있도록 하는
현재의 돈. 둘째, 현재와 미래에 부담이 될 수 있기 때문에 가급적 줄여야 할
대출같은 과거의 돈. 셋째, 집과 생활을 지속가능하게 유지하기 위해 일정하게
나가는 미래의 돈. 지금의 집문제는 결국 돈 문제다. 감당할 수 있는 집은
감당할 수 있는 돈과 같은 말이다. 오늘의 우리에겐 처음부터, 보통 사람이
감당할 수 있는 집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난민은 불쌍하거나 나약한 사람이 아닙니다. 분쟁과 폭력, 재난과 박해에 맞서 싸우면서
자신의 신념과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 끊임 없이 노력하는 세상에서 가장 용감한 사람들입니다.
– UNHCR/ The UN Refugee Agency



저자 소개
이중용(건축 칼럼니스트/ 와이드AR 편집장)





이 책을

소개합니다

(by_천평)


하우스포라라는 내 집 마련이라는 '꿈'을 버리고

집이 주는 '행복'을 찾아 떠나는 사람이다.

집은 현실이다.

우리는 꿈에 끼워 맞춘 현실이 아니라

현실을 쌓아올린 행복이 필요하다.

-책의 머릿말 중.


'주거문제'는 대도시가 가지는 핵심적인 문제 중 하나이다.


사실 '주거문제'는 우리나라만의 특수한 문제는 아니다. 서울 뿐만 아니라, 뉴욕, 런던, 파리, 도쿄 등 자본주의 사회에서 대도시는 어디에나 이러한 문제를 가지고 있다. 이유는 매우 간단하다. '부동산=자본'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상은, 우리가 집을 바라보는 시각의 극적인 변화에 기반하고 있다. 간단한 예를 들자면, 오래전부터 집을 비유하여 '삶을 담는 그릇'으로 묘사해왔다. 하지만 근대 건축 거장인 르꼬르뷔지에(Le Corbuisier)는 '집'을 '살기위한 기계(Machine for Living)'으로 전환을 선언한다. 일련의 과정에서 만들어진 작품이 빌라 사보아(Villa Savoye)와 유니테 다비타시옹(United d’Habitation)이다. 그리고 현대에서 '집'은 '자본'이 되었다.


물론 건축계에서 일하고 있는 필자에게 '집=자본'이라는 개념은 달갑지 않은 개념이다. 꺼림칙한 기분 너머 존재하는 현실은 '2016년 베니스 비엔날레_한국관'의 주제처럼 '용적률 게임'일 뿐이다. 하나의 땅에 허용된 최대의 임대면적을 찾아내어 수익을 최대화하는 합법적 게임이 바로 '용적률 게임'이다. 이것이 상가를 대상으로 한다면 그럴수도 있을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집'을 대상으로 한다면? 이렇게 지어진 '집'이 과연 임대업자가 아닌 사용자를 위해서 지어졌다고 할 수있을까?


'신자유주의는 종교와 같다'는 어떤 철학자의 말처럼, '집'을 바라보는 우리의 인식 기저에는 종교적 신화가 자리잡고 있는 것 같다. '부동산 불패'는 이러한 종교를 지탱해주는 신화이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우리나라의 주거문제가 꼭 '집'의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어쩌면 이것은 '의식'이나 '철학'의 문제일 수도 있다. 이 책 또한 그러한 문제의식에서 시작된다. 우리는 주거문제의 원인과 현실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나? 희망이 없어 보이는 지금 이 시대에서 우리는 어디서 희망을 찾아야 할까?


하나의 소주제에 일러스트와 한페이지의 짧은 글로 구성되어 있다.


왜 이 책의 제목이 '선언'인 걸까? 그것은 이미 우리가 주거문제를 개인의 힘으로는 현실적으로 해결하기 힘든 시기에 도달했기 때문이고,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위해서 우리는 각자가 새로운 방식을 상상해야하는 시점이기 때문이지 않을까? 과거 칼 맑스가 공산당 선언을 통해 '자본주의'를 넘어서려던 것 처럼 말이다.


책의 구성은 굉장히 단순하다. 하나의 소주제에는 하나의 일러스트와 1 페이지의 짧은 글로 구성되어 있다. 소주제는 총 40제로 구성되어 있다. 짧은 칼럼 40개를 연달아 읽는 느낌이었다. 개인적으로는 소주제들이 그렇게 이질적이거나 분절되어있다고 느끼진 않았는데, 읽는 사람에 따라서는 그렇게 느껴질 요소들이 더러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글은 '현상'과 '통계적 사실', '글쓴이의 의견'으로 간단하게 구성되어있다. 저자는 이 글이 '에세이'또는 '선언문'이라고 하였지만, 개인적으로 '선언문'에 가깝다고 느꼈다. 아마 '에세이'라고 한 것은, 겸손 또는 겸허? 등의 겸양의 기분이 아니었을까? 주거 난민 현상의 복잡한 사회적 문제를 굉장히 단순하게 정리하여, 문제를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나는 이러한 '직관성'이 '선언문'에 꼭 필요한 요소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러한 '직관성'을 가진 '문제의식' 또한 날카롭다고 생각한다.


사실 이 책은 '문제 해결'을 위한 책은 아니다. 오히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우리의 '의식' 또는 '기반'에 더 큰 관심을 두고 있는 책이다. 물론 몇가지 대안을 소개하긴 하지만, 대안은 대안일 뿐이다. 부동산 문제는 모두가 큰 일이라며, 혀를 찬다. 하지만 이 문제는 우리가 관심을 가짐으로서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문제이다. 사람들이 집을 구할 수 있는 여러가지 방법에 대해서 이야기 나누고, 공유함으로서 우리가 지금 겪고있는 주거난 또한 해결의 실마리가 나타날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하우스포라'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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