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연속으로 휴가 써도 될까요?
직장인이라면 이 말이 얼마나 말도 안 되는 말인지 잘 알 것이다.
10일 연속으로 휴가를 쓴다는 건 대한민국 직장에서 정말 말도 안 되는 말이다.
근속에 따라 연차 외에 긴 휴가를 주는 회사도 있지만, 오직 연차로 10일을 쓰는 건
퇴사를 앞둔 직원 외에는 보기 드문 일이다.
그냥 그만두겠다는 선언으로 여겨질 수 도 있었고, 미쳤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이 또한 20대 마지막 대단한 용기였다.
내 버킷리스트를 이루기 위해 10일은 정말 간절하게 필요했다.
(*하지만 꼭 필요한 조건들이 있다, 1편 참고*)
팀장님은 좀 당황하는 듯 보였지만 오케이 했다.
내가 맡은 프로젝트를 떠나기 전까지 완벽히 마무리하고,
백업 인력에 대한 계획을 철저히 한다는 약속을 했다.
20대의 마지막 달이라 다가오는 게 두렵게 느껴졌던 12월은
이제 내게 손꼽아 기다려지는 날이 됐다.
스페인-포르투갈 너로 정했다!
29.8세는 신났다. 나의 버킷리스트를 꾸며줄 나라는 어디가 좋을까?
책도 보고 유튜브도 보고 엄마와도 많은 대화를 나눴다.
엄마는 "무조건 스페인!"을 외쳤다. 스페인이 인생 여행지였던 엄마는
"좀 더 젊을 때 갔으면 좋았을 걸"하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술 한 방울 못 마시는 엄마를 사로잡은 '띤도(스페인 말로 레드와인을 말한다)'에 대한 찬양도 엄청났다.
나라를 정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1. 혼자 가도 치안이 괜찮은 곳인가?
2. 날씨가 크게 춥지 않은가?
3. 인-아웃 인천에서 직항이 있는가?
4.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제대로 즐길 수 있는 나라인가?
나의 마지막 20대,
14박 15일은 스페인과 포르투갈에서 보내기로 했다.
29.9세, 버킷리스트 이루기 가장 좋은 나이
29살 11월, 내 젊은 인생을 이제 끝났다며 망연자실 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내가 상상하던 이쯤에 내 모습은 이게 아니야!
나 빼고 다 멋지게 사는 것 같아
불투명한 내 미래가 무서워
20대라서 용서되던 것들이 다 없어지는 거잖아
30대는 책임질 게 너무 많을 것 같아
여자 나이 30이 대체 뭐길래?
(아 맞다, 휴가 쓰면서 나의 여행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는데
팀장이 "아 000 씨도 이제 얼마 안 남았구나.. 끝이네 아줌마네"라고 했다.
우이씨! 나보다 나이 많고 머리숱 없는
아재 팀장님이 할 말인가?
지금 생각해보면 이 말을 듣고 가만히 있던 내가 너무 싫다!)
암튼, 불안에 떨며 우울하던 29살 11월은
못 이룬 버킷리스트를 이룰 생각에
한순간 공기의 흐름이 바뀌었다.
가슴이 쿵쾅쿵쾅 뛰었다.
어서 오렴 나의 20대 마지막 12월,
신나게 보내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