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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이 Oct 24. 2022

슬럼프 일기4

대청소의 시간

글을 쓰는 일은 마치 씨를 뿌리고 추수를 하는 일과 같다. 그래서 글이 잘 써지지 않을 때, 글을 쓰지 못하고 있을 때 더 초조하고 불안해진다. 가을이 되었는데 추수할 것이 없으리라는 걸 예측하기 때문이다. 추수할 것이란 눈에 보이는, 손에 잡히는... 예를 들어 책?을 말하는 것이다. 그런 몇 번의 순환을 학습했기 때문에 지금 아무것도 쓰지 못하는 일에 대해 더 불안해하고 더 안절부절못한다. 지금 하지 않으면 그다음에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는 걸 알기에.

말로는 비워라 버려라라고 외치고 다니지만 사실 나는 잘 그러지 못한다. 물건도, 글도, 마음도 욕심으로 가득 채웠다가 간신히 조금 버리는 척했다가 다시 또 가득 채웠다가를 반복한다. 그래서 버리라는 말을 많이 하고 다니는지도 모르겠다. 그 말은 나에게 외치는 말이기도 하니까.

나보다 더 빠르게 더 많이 앞서가는 작가들을 바라본다. 그리고 그런 이들이 변하는 것도 지켜본다. 누군가가 앞서 가다 순간 그는 사라지고 또 다른 자가 앞서간다 그러다 또 새로운 누군가가 앞서가고... 지금 앞서간다고 그가 계속 앞서는 것은 아니고, 지금 뒷서 간다고 계속 뒤서는 것도 아니라는 걸 시간이 흘러가면서 알게 된다.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있을 때가  중요한 시간이라는 것도 안다. 머릿속으로는 아는 척하지만 막상 닥치면  받아들여지지 않지만 말이다. 이런 시간에는 리셋하듯이 새롭게 시작하기 좋을 때이다. 과거의 나와 과거의 글에 매이지 않고. 나에게 지금 그런 시간이 주어진  같다. 쓰레기통에 가득  쓰레기를 버리듯 마음속과 머릿속을 비우는 대청소의 시간이. 그리고 중요한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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