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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버드나무 Aug 08. 2019

여성인권/법정/민주주의 영화

영화 <세상을 바꾼 변호인> 리뷰

<세상을 바꾼 변호인>, 네이버 시리즈. 일반적인 흐름의 전기영화일 줄 알았는데 루스 긴즈버그의 초기 소송 준비과정과 법정변론에 주목한 법정영화였다. 비슷한 시기에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 나는 반대한다>라는 제목의 전기 다큐멘터리가 나온 걸 생각하면 영리한 선택이다. 이런 선택 덕분에 극적 재미가 상당하다. 법정영화가 갖춰야 할 요소들을 빠짐없이 갖추고 있다. 주인공이 왜 그 변론에 관심을 갖게 됐는지, 어떤 논리로 획기적인 변론을 기획하게 됐는지, 법정 변론에서 어떻게 역전을 이뤄내는지 등등. 어디까지가 실화인지는 알 수 없으나, 그게 중요한 건 아니다.



다큐멘터리가 재판관으로서 RBG를 조명했다면, 영화는 말 그대로 '변호인' RBG를 조명했다. 이런 까닭에 다큐는 완성된 여성 인권의 수호자 RBG를 보여주는 반면, 영화는 그가 여성 인권의 수호자로 각성하는 과정을 그렸다고도 할 수 있겠다. 다시 말해 RBG라는 인물이 아니라 RBG라는 시대정신에 주목하는 사람이라면 영화가 조금 더 중요한 텍스트로 와닿을 것. 한편 다큐와 영화 모두 RBG의 파트너인 마티 긴즈버그를 아주 중요하게 다룬다는 점에서는 접근방식이 같다. 다만 다큐에서는 거의 나타나지 않았던 딸 제인 긴즈버그가 영화에서는 RBG를 각성시키는 핵심 인물로 등장한다는 점이 다르다.


영화의 주요 사건으로 등장하는 '모리츠 대 국세청장' 소송이 흥미롭다. 여성이 차별당한 사건이 아닌 남성이 (그들에게 유리할 것이라고 추정되어 확립된 고정관념에 의해) 차별당한 사건을 계기로 성차별 법안들에 균열을 냈다는 점도 물론 그렇지만, 루스 긴즈버그가 균열을 내는 논리가 특히 그렇다. 간명한 논리다. 시대는 바뀌었고, 그렇다면 법이 따라잡아야 한다는 것. 바로 이 지점에서 이 영화는 여성인권 영화이자 법정영화이면서 민주주의 영화의 성격까지 획득하게 된다. 무엇이 민주주의인가, 법치와 민주주의는 어떤 관계를 맺는가, 뭐 그런 질문들을 던지면서.


마지막 장면이 눈물나게 아름다우면서도 약간 고민은 남는다. 마지막 장면에서 극중 루스 긴즈버그가 대법원으로 당당하게 걸어 들어가는 뒷모습을 잡는데, 다시 카메라가 이동해 앞모습을 잡으면 실제 백발의 루스 긴즈버그로 바뀐다. 그 걸음 내내 사운드로 그가 성차별 법안들을 박살내는 목소리가 깔린다. 그에게 보내는 최고의 존경이다. 하지만 한편으론 '변호인'에 주목해 온 영화가 갑자기 '재판관' RBG를 조명하면서 메시지가 약간 흐트러지는 건 아닌가 하는 고민이 든다. 영화가 다룬 승리 이후는 희망적이었으나, 지금 연방대법관 RBG가 맞닥뜨린 세계는 녹록치가 않아서다. 그래서 재판관 RBG를 조명한 다큐의 제목은 "나는 반대한다"가 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점에서 마냥 낙관적인 분위기로 리스펙트를 보내며 이야기를 마무리한 영화는 '시대간의 대화'라는 역사적 역할을 방기한 것 아닌가, 뭐 그런 생각. 예를 들어 스파이크 리의 <블랙클랜스맨>은 1970년대 후반 인종차별집단 KKK단을 박살낸 실화의 결말을 유쾌하게 맺는 듯하다가 갑자기 2010년대 Black Lives Matter 시위 푸티지를 집어넣으면서 다소 부자연스럽게 영화를 끝낸다. 작품적으로는 부자연스러운 시도이지만, 역사의 퇴행 시기에 만들어지는 영화가 과거의 아름다운 시절을 다룰 때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가에 대한 나름대로의 답을 주고 있다는 점에서 유의미했다고 생각한다.


하여간 전반적으로 좋았던 영화에서 가장 걸렸던 건 마티 긴즈버그를 맡은 배우의 외모였다... 마티 긴즈버그는 시대초월적으로 완전한 페미니스트인데, 이 역을 맡은 아미 해머의 외모나 목소리는 너무나 마초적이라는 것이다... 특히 나는 그의 얼굴을 <소셜 네트워크>의 마초적이고 자존심 강한 하버드 조정 선수 윙클보스로 기억하고 있어서 더욱 그랬다... 저 겉으로는 올바른 자가 언제든 빻은 소리를 하며 반전을 만들어낼 것이다... 이번에야말로... 앗 이번은 아니네 그렇다면 이번에야말로... 앗 아니네 그렇다면 이번.... 하지만 마티는 끝까지 훌륭한 사람이었고 다행히 살 만큼 살다가, 그것도 꾸준히 올바르게 살다가 2010년에 떠나셨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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