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찰리 윌슨의 전쟁> 리뷰
<찰리 윌슨의 전쟁>, 네이버 시리즈. 아론 소킨이 대본을 쓰고 마이크 니콜스가 감독했다. 물론 아론 소킨이 대본을 썼기 때문에 택한 영화. 1980년대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이 주요 소재로 나오는데, 간단하게 배경을 설명하면 이렇다. 1978년 아프간에서 공산주의 정당이 쿠데타로 정권을 잡자 이슬람 근본주의 반군인 무자헤딘이 이에 대항해 내전을 일으켰다. 당시는 냉전으로 미국과 소련이 각자의 우군을 찾는 데 혈안이 돼있던 시기라, 소련은 무자헤딘을 제압하기 위해 아프간을 침공했다. 침공 초기에 미국은 무자헤딘을 소극적으로 지원하며 사태를 장기화시키고 있었다.
영화는 미국이 무자헤딘을 아주 적극적으로 지원하도록 하는 데 큰 공을 들였고 결국 관철시켜 소련을 후퇴시킨 '찰리 윌슨'이라는 민주당 하원의원의 실화를 다뤘다. 얼마나 적극적이었냐면, 총 10억 달러다. 아론 소킨치곤 그렇게 깔끔한 이야기는 아니다. 난봉꾼으로 유명한데다 철저히 비논쟁적인 행보만 일삼던 찰리 윌슨이 어느날 TV에서 아프간의 상황을 목격하고 그 문제에 적극 관여하기 시작했다는 식으로 묘사되는데 그 각성 과정이 별로, 아니 거의 설득력이 없다. 실제로 아프간을 방문해 난민들을 목격하기도 하지만, 어쨌거나 중요한 건 최초의 각성일 게다. 물론 이런 식의 각성이 현실 세계에서 아주 없는 일은 아니지만 말이다.
영화의 클라이막스까지도 아론 소킨이 왜 2008년에 이 이야기를 다루고 싶었는지가 이해되지 않아 조금 혼란스러웠다. 그래, 2008년 당시에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전쟁은 중요한 정치적 이슈였지. 근데, 그래서 갑자기 왜 옛날 얘기를? 그것도 상당히 반공주의적인 뉘앙스가 다분한 텍스트를, 왜? 이런 혼란스러움은 클라이막스가 지나고 나서야 해소된다. 찰리 윌슨과 아프간 지원을 협업한 CIA 요원 거스트는 찰리에게 아프간의 재건을 지원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찰리는 의회에서 그것을 받아 주장하지만 다른 정치인들은 아무런 관심도 보이지 않는다. 결국 아프간에 병원을 세우고 학교를 세우는 지원금은 기각되고, 'CIA 명예요원'으로 임명되는 찰리 윌슨의 복잡한 표정을 클로즈업하며 영화는 막을 내린다.
마지막 지점에서 이 영화는 2008년 상황에 걸맞는 명확하고 유의미한 메시지를 던졌다. 단지 냉전의 논리로 10억 달러를 쏟아부으며 '정의로운 척'하던 미국은 이후에 무엇을 했느냐는 것이다. 미국은 소련을 몰아내는 데 기뻐했으나 아프간을 어루만지는 덴 무관심했고, 그 결과로 이제는 소련이 아닌 미국 자신이 아프간과 무의미하고 소모적인 전쟁을 벌이고 있지 않느냐는 것이다. 그리고 그 전쟁에서 미국에 맞서 싸우고 있는 것은 그때 미국이 전폭적으로 지원했던 바로 그 무자헤딘이다.
하지만 아무래도 영화적 완성도는 좀 어색하다. 마지막 즈음에 중요하고 정확한 메시지를 던져놓고도 거기서 마무리짓지 못하고 다소 쓸데없는 장면인 CIA 명예요원 임명식에서의 다분히 영웅주의적인 헌사로 막을 내린 것이 특히 그렇다. 메시지를 따르자면 찰리 윌슨은 단지 맥거핀이어야 하지 않은가? (내 생각에 2008년 시점에서 가장 유의미한) 메시지가 너무 늦게, 너무 단편적으로 등장한 것도 완성도를 떨어뜨리는 지점이다. 극 초반부에서 찰리 윌슨의 '난봉꾼'적 면모를 묘사하기 위해 삽입된 몇몇 장면들이, 10년 전 영화임을 인정하고 그 맥락을 헤아려 줄 수 있음에도 불필요하게 여성혐오적인 것도 흠이다. 에밀리 블런트가 활용된 장면들은 아직도 왜 삽입됐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