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똑바로 살아라> 리뷰
<똑바로 살아라>, 넷플릭스. 이 더운 날씨에 폭염을 배경으로 한 영화를 봤다. 감독은 스파이크 리. 스파이크 리의 커리어 초기 <말콤 X>와 더불어 최고작으로 평가되는 작품이자, 가장 최근에 발표된 <블랙클랜스맨> 이전까지 최고작이기도 하다(...). 스파이크 리답게 주제는 역시 인종차별, 인데 접근방식이 조금 다르다. 이 영화에는 한인도 차별의 대상으로 나오고, 표면적으로는 차별하는 주체인 것처럼 보이는 이탈리아계 미국인들도 실은 나름의 인종적 콤플렉스가 있다는 듯이 묘사된다.
요컨대 이 영화는 뉴욕 브루클린의 흑인이 주로 거주하는 동네와 모두를 히스테리로 몰고가는 뜨거운 폭염을 배경으로, 비주류 인종이 또 다른 비주류 인종을 차별하고, 그 차별받은 비주류 인종이 또또 다른 비주류 인종을 차별하는 지옥도를 묘사하는 영화다. 극의 후반부까지 이렇다 할 중심 사건이 등장하지 않으며, 캐릭터들은 다소 산만하게 등장하고, 인물 간의 관계도도 뒤늦게 표현되는 등 일반적인 극영화의 공식을 벗어나면서도 아슬아슬한 긴장감을 2시간 동안 유지한다.
미국 흑인의 역사를 아주 잘 알지는 못하지만, 아마도 1989년이라는 시기적 배경은 민권법 제정을 전후로 가시적인 '명시적/정치적 차별'이 사라진 공백에 은연한 '문화적/사회적 차별'이 자리하는 과도기로 보인다. 이 영화에서 차별하는 주체로 흑인들에 의해 지목되는 이탈리아계 미국인 '살'이 바로 그러한 은연한 차별을 상징하는데, 표면적으로 그는 흑인들을 차별하지 않고 종종 동정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폭염이 가져온 히스테리와 모종의 스트레스 상황 속에서 그는 그가 억누르고 있던 차별의식을 여과없이 쏟아낸다.
다만 스파이크 리는 이 영화에서 흑인들을 전혀 긍정적으로 그리지 않는다. 적어도 이 영화를 본 제3의 인종들이라면 (특히 작중 차별 당하는 한인의 동포인 우리 한국인은) "흑인들이라고 뭐 다르냐?"고 묻지 않을 수 없게 묘사했다.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공갈협박과 불분명한 차별감의 호소, 필요 이상의 대응과 폭동, 같은 요소들이 그렇다. 표면으로는 평화롭지만 수면 밑에선 모두가 부글부글 끓어오르고 있던 시기. 이 시기를 지나 오늘에 이르면서 오히려 흑인 차별은 더 명시적인 주제로 부각되고 있고, 그에 따른 문화적 반영들을 우리는 스파이크 리의 최신작인 <블랙클랜스맨>에서 확인할 수 있다. 갓띵작임.
영화 속 몇몇 장면이 에드워드 노튼이 출연한 <25시>와 유사하다고 느꼈는데 이제 보니 그 영화도 스파이크 리가 감독한 것이었구나. 자기 스타일이 명확한 감독을 좋아한다. 크레딧을 부러 찾지 않아도 테이스트를 맡을 수 있는 그런 영화를 좋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