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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버드나무 Aug 08. 2019

최애의 마지막이 왜!!!

영화 <엑스맨 : 다크피닉스> 리뷰

<엑스맨 : 다크피닉스>, 메가박스 백석점. 엑스맨 시리즈의 마지막 영화, 라고 하는데, 정말 이 시리즈의 오랜 팬으로서 속상한 마무리. 그래서 영화 보고 집까지 오는 동안 혹평을 여덟 문단 정도 분량으로 분노를 담아 요약했는데, 또 막상 집에 와서 몇몇 대사들을 떠올리니 그렇게까지 나쁜 마무리는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메타적인 의미에서 그렇다. 영화 자체만을 두고 보면 여전히 아쉽다.


밑으로 스포일러.



1.
전작 <아포칼립스>도 그렇고, 이번 영화에서도 엑스맨 시리즈의 장점은 찾아보기 어렵다. 엑스맨 시리즈의 장점이란 뭔가? 인간을 절멸할 수 있는 능력을 가졌지만 오히려 그같은 능력으로 인간에게 차별받는 뮤턴트라는 소재(그들은 초능력을 지닌 대신 가시적인 페널티도 갖는다), 차별감들을 지니고 살아가는 각각의 뮤턴트들을 화합의 방향으로 이끌어가는 찰스와 폭력의 방향으로 이끌어가는 에릭의 대립 서사, 특히 프리퀄 시리즈에서는 주요한 현대사에 초능력으로 개입함으로써 역사의 방향을 바꾸는 대체역사물, 같은 것들이다. 요컨대 엑스맨 시리즈는 현대 정치의 여러 이슈들과 단단히 결합해 사회의 차별과 화합을 비추는 이야기였다. 오히려 시그니처라 할 만한 능력 배틀은 부차적인 것이었다.


하지만 <아포칼립스>부터 <다크피닉스>에 이르는 서사는 그런 장점을 새까맣게 잊어버렸다. 물론 여전히 뮤턴트들은 인간에게 차별받는 듯 보이지만, 이야기의 중심은 차별 받아온 경험조차 없이 갑툭튀한 '파괴자'들과 엑스맨들의 대립에 놓여 있다. 아포칼립스가 그랬고, 이번 영화에선 (사회가 아닌 개인사에 의한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진 그레이와 제시카 차스테인(극중 이름도 모르겠음)이 그랬다. 이들은 그저 지구를 파괴하고 정복하려 들 뿐이다. 1980~90년대쯤에나 유효했을 시대착오적 빌런들인 셈이다.


막대한 권능을 가진 파괴자들과 소소한(농담임) 권능을 가진 엑스맨들의 대립으로 이야기 구조가 잡히니, 정치적인 내용들이 개입될 여지는 사라지고 무슨 장면인지 제대로 구분하기 어려운 스펙타클 능력배틀이 주가 될 수밖에 없다. 능력을 어떻게 창의적으로 쓰느냐가 이야기에 긴장을 주는 요인이 되고, 막상 스토리 전개는 매우 단순한 계기와 깨달음들로 꾸며진다. 이 영화에서는 진 그레이가 갑자기 왜 '가족'에 대한 관점을 바꾸는지 관객들은 잘 이해하기 어렵다. 이는 DC 영화에서도 비슷해서 '마사'가 바로 그런 도구였다.


<다크피닉스>에서도 이야기적으로 유의미할 법한 몇몇 감정선들이 있었으나, 감독은 그 지점들을 과감하게 생략한 채 이야기 전환의 소재로 소모시키는 데 그친다. 감독에게 중요한 건 화려한 액션신과 두 피닉스포스 간의 클라이막스 결투이므로.


2.
집에 올 때까지 대강 이런 혹평을 정리했다. 여덟 문단 중 세 문단에 해당한다. 나머지 다섯 문단은 좀이따가... 그런데 집에 도착하고 나니 찰스 자비에의 대사 하나가 왠지 맘에 밟힌다. 우주선을 구출하고 돌아와 축하연에 참석한 찰스 자비에가 엑스맨을 슈퍼히어로라고 칭송하는 말들에 대해 던지는 대답의 서두다. "슈퍼히어로가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바로 이 대사. 그렇다. 엑스맨들은 슈퍼히어로가 뭔지 모른다. 그들은 마블이 열어제낀 슈퍼히어로 무비 시대의 이전 세대들이다. 오리지널 트릴로지에서도, 프리퀄 시리즈에서도 그들은 슈퍼히어로로 활약하지 않는다. 단지 그들이 겪는 차별을 극복하고 싶어할 뿐이다. 그도 그럴 것이, 애초에 그들은 '인간'이 아니다. 슈퍼히어로의 자격은 인간들에게만 주어진다. 그들은 인간과 별개의 종족인 '뮤턴트'로 불린다. 그들은 (<저스티스의 시작>에서 슈퍼맨이 그러했듯) 인간에게 늘 경외감의 대상이었다. 그들은 인간이 아니고, 그래서 인간은 늘 그들의 능력을 어떻게 통제할 것인지를 고민했다.


뮤턴트들은 시리즈 내내 종종 인간들을 구출해낸 것 같지만, 다시 돌아보면 그 인간들을 위기로 빠뜨린 것 역시 뮤턴트들이다. 말하자면 선한 뮤턴트들이 인간에게 존재를 인정받기 위해 악한 뮤턴트들에 맞서 싸워온 것이 엑스맨 시리즈의 골자다. 그러니 그들은 시리즈 내내 슈퍼히어로였던 적이 없다. 그리고 그것이 이 시리즈의 가장 주요한 매력 포인트 중 하나였다.


그런데 이제 바야흐로 마블시네마틱유니버스의 시대다. 슈퍼히어로가 하나의 장르가 된 시대. 사람들은 어떤 이유에서인지 슈퍼히어로 이야기를 갈망하고, 세계를 구원하는 그들의 활약에 환호한다. 이 시대에 뮤턴트들은 낄 구석이 없다. 그들은 MCU의 히어로들처럼 세계를 구원할 수 없다. 세계를 위기에 빠뜨리는 것 역시 바로 그들이기 때문이다. 그들의 활약은 늘 자기존재의 증명에 목적이 있으며, 이제 사람들은 그런 '영웅같지 않은 영웅'들의 이야기에 관심이 없다. 그게 지금 엑스맨 시리즈가 놓인 위치다.


<다크피닉스>를 통한 시리즈의 이토록 엉성한 마무리는 이러한 시대상을 반영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뮤턴트라는 소재 자체가 환영받지 못하는 시대에, 그 소재를 활용한 이야기가 환영받을 수 있을 리 없다. 이 소재로 오늘날 환영받을 수 있는 유일한 이야기는 결국 화려한 CG로 장식된 능력자 전쟁뿐이다. 슈퍼히어로 영화의 문법을 차용하기도 한다. 강력한 빌런과 그에 맞서는 영웅 집단의 대결. 위대한 '작품'이 될 수 없다면 일용할 '상품'이 되는 길을 택하겠다는 것이다. 그러고보면 오리지널 트릴로지가 2006년에 끝이 나고, 2008년에 아이언맨이 시작됐다. 그리고 2011년에 프리퀄 시리즈가 시작됐지. 이 영화는 이 같은 시대적 변화를 저 대사 한 줄에 담아내는 데 성공했다. 영화적 완성에 실패함으로써 시대에 대한 비평을 제기한 것이다. 정말 호의적으로 말해주자면 그렇다는 얘기다.


3.
이제부터 나머지 혹평 다섯 문단을 막 쓴다. 이 영화는 시리즈의 마지막으로서 응당 보여야 할 캐릭터들에 대한 존중을 철저히 내다버렸다. 전체 시리즈의 핵심이었던 찰스 자비에는 왜 저렇게 무책임해졌나? 에릭은 어째서 그렇게 세상에 초연해졌고? 20년간 시리즈를 이끌어 온 이 둘에게, <로건>에서 울버린에게 보인 만큼의 존중을 선사할 수는 정말 없었단 말인가? 그냥 갑자기 프랑스 어디 카페에서 만나서 체스 두면서 화해하면 시리즈 팬들이 '크으 체스판 오마주 갓갓' 해줄 줄 알았니? 진 그레이의 감정기복이야 원래 그렇다고 치자.


프리퀄 시리즈의 핵심 중 핵심이었던 미스틱을 어떻게 그렇게 가볍게 죽여버릴 수 있나? 이게 제일 화났다. 그의 죽음은 진 그레이에게 뭔가 영웅적인 행동을 가르쳐주는 계기가 되지도 못했고, 분열된 엑스맨들을 통합하는 계기가 되거나 하지도 못했다. 고작 행크가 미쳐서 에릭에게 붙고, 에릭도 미쳐서 다시 매그니토 되는 기능적인 역할밖에 되지 못한 것 아닌가. 이야기에서 존중을 보여주지 못했다면 간단한 장면으로라도 보여줘야 했다. 결말에서 자비에 스쿨이 진 그레이 스쿨 됐는데, 그 자리에는 응당 '레이븐'이 붙어야 했던 것 아니냔 말이다.


4.
찰스 자비에 도대체 뭐냐고. 아직도 화난다. <로건>에서 패트릭 스튜어트도 엄청 존중 없이 은퇴시켜서 이번 시리즈에선 좀 다를까 싶었는데, 이게 정말 뭡니까? 시리즈 엔딩 같은 소리 말고 찰스랑 에릭 둘의 은퇴만 조명한 영화 각각 다시 내도록 하세요. 영화 제목은 <자비에>, <에릭>이 좋겠네요. 이안 맥켈런이랑 패트릭 스튜어트 아직 건강하실 때 빨리 하도록 하세요.


5.
매그니토의 액션신을 구상하는 시간의 50%만 스토리의 디테일을 구상하는 데 썼다면 <아포칼립스>와 <다크피닉스>는 꽤 괜찮은 영화가 됐을지도 모른다. 그만큼 매그니토의 능력을 활용하는 연출들은 시리즈 내내 훌륭했다. 액션 연출의 관점에서만 보자면 스캇은 그냥 원래 원작에 이런 캐릭터 없는 줄 알았다고 능청 떨면서라도 삭제시켰어야 했겠다. <다크피닉스>가 액션 영화로서도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없는 것은 자꾸 스캇의 액션이 끼어들면서 텐션이 뚝뚝 떨어졌기 때문이다.


그나저나 슬로우모션 대체 뭐냐고. 잭 스나이더야, 뭐야?


6.
에구 욕을 더 많이 썼지만 아무튼 나의 20년 함께 한 엑스맨 시리즈가 이제 정말로 끝나버렸다. 20년의 전반부는 사회와 단단히 조응하는 소수자-사회비판 영화였고, 20년의 후반부 중 전반부는 역사와 조응하는 정치-대체역사 영화였고, 20년의 후반부 중 후반부는 그저 액션 영화였다. <에릭>과 <자비에>로 돌아오길 간절히 바란다. 인간적으로다가 좀. 아참, 얘네 인간 아니고 뮤턴트지. 아무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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