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청 수선사
비 그친 산사 부처님의 눈물 도량에서 커피 한잔을 먹겠다고 찾아가던 길, 무너질 듯 버티고 선 나무다리를 보고 있자니 사람의 인생 같아 걸음이
쉽게 내디뎌 지질 않는다.
누군가는 흙탕물에 잠긴 이 늙은 다리가 이 절의
매력이라고도 하는데 내 눈엔 버거움이 여실히 보여 함부로 딛고 갈 수가 없다.
수많은 불자들의 발길을 거두었을 위태롭게 굽은 등이라니...!
커피 한잔의 사치는 잠시 뒤로 미루고
운무가 내려오는 대웅전부터 발길을 옮겼다.
A의 아들은 이토록 먼 곳의 수목장을 투덜대고 여력의 재산을 털어 늦유학시킨 딸아이는 영국으로
돌아 갈 일정으로 연인을 달래는 전화를 하고 있었다.
지독한 무더위, A의 화양연화는 언제였을까? 문득 드는 생각이...
무너져 가는 다리 몇 개로 목까지 차오르는 흙탕물을 버티고 선 불심처럼 그렇게만 살았을까?
병실 머리맡에 놓여 있던 건 우리들과의 젊은 여행사진 한 장..
산청에 있는 수선사는 여성 주지스님의 섬세함이 곳곳에 느껴지는 정갈하고 아름다운 절이었다.
창건한 지 오래되지 않은 듯 고풍스러운 기운은 덜했지만 지리산 끝자락에 터를 잡아 운치 있는 산 자락에
넓은 연꽃정원을 만들고 너와지붕의 정자나 무성한 연잎 위를 지나가는 나무다리 입구에 요즘 젊은 방문객들이
좋아하는 카페를 차려 놓기도...( 나는 이게 좋은 일인 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법당 앞 넓은 마당에는 잔디를 깔아 초록이 무성해진 7, 8월이면 방문객으로 붐빈다는 새로운 불교 성지다.
나는 제대로 불자는 아니면서 법당에 가면 세 번의 절을 하고 친한 이의 귀천 뒤에 초파일 등을 올려
놓기도 한다. 최치원이 머문 고운사 여행길에 돈 만원을 빌려 쌀 한 봉지를 올렸다가 그 예쁜 쌀 주머니가
어찌나 마음에 들던지 절만 하곤 집으로 가져왔던 철부지 신자이기도 하다.
그 해 유난히 번잡한 일이 많자 그 탓인 거라 내심 반성하기도...!
일 년 만에 들른 서점에 황동규 님의 신간이 나와 있었다.
젊은 날을 키워 준 익숙한 인물들이 하나 둘 소리 없이 스러져가는 지난 몇 년에 나의 젊은 기억도
함께 탈진해 가던 요즘이 아니던가
'늙음의 바닥을 짚고 일어나 다시 링 위에 서는( 다시 눕혀진들 어떠리!)'
그의 서문이 이렇게 말한다. 더불어 살아나는 나의 에너지!
무더운 8월에 A의 수목장을 다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