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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뾲파 Nov 02. 2024

[뾲파의 휴직일기 ep.08] 초심

간절했던 그때,

지난 주말, 아내 사촌의 결혼식을 가느라 뾲뾲이를 부모님께 맡겼다.


실로 오랜만에 자유를 느꼈다.

늘 뒷좌석 카시트 옆에 앉아 있던 아내가

조수석에 앉았다.

낯설고, 설렜다.


오랜만에 차 안에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눴다. 

그러다 문득, 뾲뾱이가 우리에게 오기 전의 날들이 생각났다. 

아니, 사실은 '그리워졌다'는 편이 더 가깝다.


그리고 또 문득, 내가 초심을 잃었나, 생각했다.

이토록 소중한 일상인데.

그토록 간절히 바랐던 순간인데.


나는 111일 차 육아 아빠다.

그리고 나는, 육아 휴직 중이다.




대부분의 직장인들에겐 필연적으로 금요일 밤이 설렌다.

금요일 밤에 뭐 하지, 주말에 어디 가지, 이번 주말엔 영화나 드라마를 정주행 해볼까.


우리도 그랬다.

금요일 밤엔 괜히 집 앞 번화가를 향했다.

외식을 하고, 후식을 먹고, 영화관을 기웃거렸다.

그래서 금요일 퇴근 시간만 기다렸다.


지금도 금요일 저녁.

지금도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리는 것이 하나 있긴 하다.

아이 재운 후 누리는 육퇴.

이 기다림도 소중하다.

그런데 아무래도 잔잔하다.


그래서 그때가 그리워졌다.

둘이서만 누렸던 온전한 휴식,

둘이서만 걸었던 집 앞 공원 산책길,

주말을 기다리며 설렜던 감정,

주말 데이트 코스를 그리며 했던 행복한 고민,

선선한 바람을 맞으며 하는 밤마실, 그때의 공기, 자유. 모든 것이 그리워졌다.


그러다 오히려, 지금 이 순간이 소중해졌다.

지금은, 그때의 우리가 그토록 간절히 바랐던 순간이므로.

너무 간절해서 눈물 날 정도로 바라고, 또 바랐던 '언젠가'이므로.

문득 내가 초심을 잊고 지냈구나, 생각이 들었다.




자궁경부무력증 이라는 진단을 받은 아내는 다소 힘겨운 임신 기간을 보냈다.

내내 노심초사했다.

행동 하나에도 행여 아내에게 영향이 가진 않을까,

또 그 영향이 아이에게 미치진 않을까.

조심하고, 또 조심했다.


약 16주, 네 달여 동안 긴장을 하다 보니 우린

지치고 피로했다.

그래서 간절했다.


제발, 최대한 늦게 태어나다오.

제발, 응급 상황엔 대형병원에서 우리를 받아다오.

제발, 무사히 태어나기만 해 다오.

제발, 산모가 건강해다오.


간절함이 통했을까.

뾲뾱이는 건강하게 우리에게 다가왔고,

아내는 건강하게 회복했다.


이후 여건 상 육아휴직이 간절한 때엔

제발 휴직 신청을 큰 이슈 없이 할 수 있게 해 다오, 하고 빌고 또 빌었다.

그리고 역시 그대로 행해졌다.


그렇게 간절히 바랐던 일들이 하나, 하나 이뤄져

소중한 일상이 됐다.

감사한 일상이 됐다.


근데 요즘 잠이 부족하다 보니,

전보다 제약과 힘듦이 늘다 보니,

전보다 힘이 부치다 보니

이 소중하고 감사한 일상을 잠시 잊었나 보다.


부끄러워졌다.

초심을 찾아야겠다, 초심을 잃지 말아야겠다, 고 생각했다.

오늘은, 어제의 내가 그토록 바라던 내일 일 테니.




올해의 첫날, 우린 스페인 바르셀로나에 있었다.

코로나19로 신혼여행을 가지 못한 우리에게 그곳이 신혼여행지였다.

출산 전 마지막 해외 여행지이기도 했다.


바르셀로나의 한 작은 카페에서 우리는 올해 계획을 세웠다.

운동과 자기 계발도 열심히 하고자 다짐했지만

무엇보다 '뾲뾲이 낳아 건강하게 잘 키우기'가 핵심이었다.


그리고 계획 세우기의 끝자락에서 우린 올해의 노래를 정해 보기로 했다.

음악 스트리밍 어플에서 무작위(셔플)로

몇 번째 노래를 틀어, 해당 노래를 올해의 노래로 선정하는 식이었다.

그리고 그 노래는, 정은지(Duet 10cm)의 '같이 걸어요' 다.


올해가 두 달 여 남은 지금

우린 다행히도 꽤 사이좋게, 도란도란, 육아의 길을 같이 걷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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