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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뾲파 Sep 08. 2024

[뾲파의 휴직일기 ep.02] 결단

순간의 선택이 평생을 좌우한다

'순간의 선택이 평생을 좌우한다'


이 문장은 정말 다양하게 사용된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고백하는 이들에게도, 커리어를 선택하는 이들에게도, 고속도로에 진입하는 운전자에게도, 그리고 모 전자회사에서 소비자에게도 말이다.


살다 보면 선택의 기로에 놓인 순간이 많다. 그리고 그 순간이 어쩌면 나의 삶에 진한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내겐, 그날이 그 순간이었다.




"팀장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아직 우리 구단에서는 쓴 사람이 없다곤 하지만, 육아휴직을 내고 싶습니다."

"육아휴직?"

"네."

"언제부터?"

"9월부터요. 출산 예정일이 8월입니다."

"대체 인력을 빠르게 뽑아야 하겠구먼. 그래, 부장님한테 말씀드려 봐"


팀장님은 생각보다 쿨했다. 덧붙여 '육아휴직이 사규에는 있으니 먼저 알아보고 보고하라'고 조언을 해주셨다.


부장님과 이야기를 나누기 전에, 든든한 아군을 확보하기 위해 평소 교류가 많았던 인사팀장님께 솔직하게 물어봤다. 상황이 이렇고, 시즌 중 계약직 대체 인력을 구하는 것이 힘들 것 같아 회사(구단) 입장을 이해해서 고민이 된다, 그럼에도 꼭 사용하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할지 에 대해서다. 사실 이렇게까지 물어본 이유는 '도의에 신경 쓰고 있다'는 것을 전달하기 위함이었다.


인사팀장님은 사측에선 노동법상 당연히 보장해야 하고 미리 말해줘야 회사에서도 인사 발령이나 채용 공고를 이사회에 보고한 후 준비할 수 있다, 며 안심시켰다. 그리고 이때 알았다. 육아휴직은 사내 남성 최초가 아닌, 여성까지 통틀어도 처음인 것을. 내가 알고 있었던 여성 휴직자는 출산휴가 90일만 사용 후에 복귀했다는 것을. 그래서 회사에선 모든 것이 처음이라 준비할 것이 많다고 했다. 회사가 알아서 할 테니 아내 출산 및 육아 준비에 전념하라고 했다. 코 끝이 찡해질 정도로 감동과 안심의 감정이 밀려왔다. 하나의 고개를 넘었다.




마지막 관문이 남았다. 부장님이다. 이 분은 구단에 오랫동안 근무했던, 구단 역사의 산증인이다. 이 말인즉, 부장님은 지금껏 육아 휴직자를 한 번도 보지 못했다. 더욱이 캐릭터가 다소 엄격하여 쉽사리 공감과 전폭적인 응원을 바랄 수는 없었다.


전략이 필요했다. 우선, 분위기. 프로스포츠의 특성상 한 경기의 승패가 팬 유입, 비즈니스, 그리고 심지어는 구단 사무국 직원들의 기분에도 많이 영향을 받는다. 따라서 이긴 경기 다음 날이 대화의 적기라고 판단했다.


그다음은 대화의 흐름. 어떤 말로 대화를 시작해야 할지, 대화의 뉘앙스는 어떻게 가져가야 할지 등 다각도로 생각해 봤다.


나의 결론은, 간청해 보기였다. 사규에도, 그리고 노동법 상에도 분명 존재하지만, 현장에는 아직 본적도, 경험한 적도 없는 '전설의 포켓몬' 같은 존재기에, 이를 처음 시도해 보기 위해선 부장님의 도움이 절실하다, 는 그런 흐름으로 대화를 풀어나가 보기로 마음먹었다. 여기에 육아휴직을 한다면, 회사도 지원금을 받을 수 있다는 고용노동부의 제언도 전하기로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부장님의 힘들었던 지난 20년을 공감하면서, 앞으로의 20년을 함께 생각해 보자는 이야기를 나눠보고자 했다. 육아휴직 제도를 적극 사용하며 보다 선진적인 회사로 거듭나자는, 그런 느낌이랄까...?


"부장님 시간 되십니까? 8월에 아이가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축하한다. 와이프 잘 챙겨줘라."

"감사합니다. 그리고... 사정이 이러저러해서 육아휴직을 신청하고 싶습니다. 부장님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올해 말까지 신청한다고? 법적으로도 쓸 수 있고, 상황은 이해한다만 알다시피 시즌 중이라 대체 인력 구하는 게 쉽지 않을 것 같네. 우리 회사처럼 규모가 작은 곳은 대체 계약직 인력 구하는 것이 힘들어서 말이야."

"우려하신 부분도 알고 있어서, 인사과에 물어보니 충분히 가능하다고 답변받았습니다. 다녀와서 회사에 더 이바지하겠습니다."


도의적인 부분도 어필했고, 사전에 인사팀장님과 소통한 덕분에 유일한 우려까지 불식하니 상황이 긍정적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부장님의 지난 20년을 공감하며 앞으로의 회사 비전까지 경청하고 호응하고 나니 어느새 '그래, 잘 다녀오고, 복귀하면 더 열심히 하도록'으로 대화가 갈무리됐다.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겠으나, 그렇게까지 해야 했다. 언제나 처음은 어려운 법이니까. 그리고 누구에게나 익숙지 않은 것은 어려운 법이니까. 그래서 가정의 평화와 소중한 추억을 사수할 수 있다면 꼭 필요한 과정이었다.


시대가 변했다. 사고가 유연해진 것인지, 관대해진 것인지, 혹은 흐름에 발맞출 수밖에 없게 된 것인지 알 수는 없으나, 어찌 됐건 시대의 사고가 변해가고 있다.


육아를 '자식 교육'으로만 생각하던 부장님도, 회사를 육아 회피처로 생각하던 차장님도, 드물게 경험한 까닭에 육아는 어렵지 않다던 과장님도 이 모두가 육아휴직을 언젠가는, 그리고 누군가는 사용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 시작이 나였을 뿐이다.


평생을 좌우할, 그날이 정말 정신없이 지나갔다.

그렇게 달력이 넘겨졌고, 나는 육아휴직에 돌입했다.


그리고 본격적인 육아가 시작됐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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