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반기를 돌아보며 학부모에게 보내는 편지
평화로운 일요일 아침입니다. 2018년도 어느새 절반이 지나갔습니다. 우리가 만난지도 4개월이 지났네요. 120일 정도의 시간. 어른에게는 짧지만 아이들에게는 참 긴 시간입니다. 그만큼 3월 첫날의 아이들과 지금의 그들은 전혀 다른 사람이 되었습니다. 아이들이 성장한 것도 있지만 우리의 관계도 변했기 때문입니다.
좁은 공간에서 서른 명 넘게 함께 지내니 갈등은 필연입니다. 사실 어느 곳에서나 집단에서나 갈등은 존재합니다. 집단의 질을 좌우하는 건 갈등의 유무가 아니라 갈등을 어떻게 해결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현재 우리반은 어느 1학년 교실보다 갈등이 적은 편이라고 봅니다. 1학년이다보니 자신도 모르게 친구의 몸을 치고 가는 경우가 있는데, 이럴 때는 보통 싸움이 납니다. 그렇지만 우리반 아이들은 ‘친구가 일부러 한 것은 아닐 거야’라는 신뢰가 있습니다. 만약 친구의 행동이 자신의 심기를 불편하게 한다면 언제든 부정적인 감정을 표현하고 해결할 수 있기 때문에 더욱 편하게 살아가나 봅니다. 이렇게 반 년을 더 지내다보면 대인관계에 대한 신뢰감이 싹트겠지요.
집에서 하는 행동이 변했는지는 모르겠지만, 학교에서 아이들은 처음보다 훨씬 자율적인 모습을 보입니다. 이제는 선생님에게 무언가 허락을 구하거나 소소한 걸 물어보는 경우가 거의 없습니다. 덕분에 저는 매우 편하게 지내고 있어요. 며칠 전 OO이가 책상 가득 우유를 쏟았는데 아무렇지 않게 휴지를 꺼내고 쓱싹쓱싹 닦더군요. 잃어버린 학급 축구공을 찾아오기도 하고요. 자신이 자유롭게 선택하고 결정하되 그 책임은 자신이 진다는 것에 점점 익숙해지나 봅니다. 제가 할 일은 최소한의 도움만 제공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최근 교육계의 흐름에서 가장 외면되고 있는 점 중 하나는 ‘단련’이라고 생각해요. 즐겁게 공부하는 것을 강조하다보니 어려운 순간을 이겨내 더 높은 수준으로 가는 과정이 경시되는 편이지요. 아시다시피 우리반은 심신을 단련하는 데 꽤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입니다. 이미 절반 이상의 아이들은 손바닥이 다 까지고 아물고를 반복하다 저보다 단단한 굳은살을 갖게 되었습니다. 운동장을 열 바퀴 이상 달리는 아이들도 제법 되고요. 좋아하는 분야에 시간과 노력을 들여 더 나은 작품을 만들어내기도 합니다. 이런 경험들은 자신의 가능성에 한계가 없음을 아이들 마음 깊숙히 새길 것입니다. 아무리 삶이 힘들지라도 의지로 낙관할 수 있음을 믿게 될 것입니다.
전반기 동안 아이들의 성장을 가까이서 바라보고 도울 수 있어 무척 즐거웠습니다. 앞으로도 하루하루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도록 저 스스로부터 노력하겠습니다.
-2018년 7월 1일 학부모에게 보내는 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