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논어에서 찾은 회복의 기술
회의 시간이었다.
사전 협의된 내용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내용과 전혀 다르게 공지되는 선배의 회의 진행에 내가 잠시 사전 협의된 내용을 주장하였다.
회의 시간은 회의가 아닌 후배의 공격의 시간으로 바뀌었고, 그냥 감정적으로 휘둘린 말을 내뱉는 사람으로 되어버린 내가 남아 있었다.
그날 이후, 나는 같은 질문을 반복했다.
‘왜 그렇게밖에 못했을까.’
‘어떻게 복원할 수 있을까.’
민어사이신어언 (敏於事而愼於言)
“일에는 민첩하고, 말에는 신중하라.”
욕눌어언이민어행 (欲訥於言而敏於行)
“말은 어눌하더라도, 행동은 민첩해야 한다.”
여기서 민어사는 민어행 이다.
“일은 민첩하게 하고”
신어언 = 욕눌어언
”말이 어눌하다기보단 어눌하게 보일만큼 언행을 신중히 하라는 말이다.“
나는 늘 말을 잘하려고 애썼다.
설득하고, 반박하고, 논리로 제압하는 것이 ‘능력’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순간, 말은 나를 배신했고
감정은 나의 뜻을 휘갈겼다.
공자는 그렇게 말한다.
말로 앞서기보다는 행동으로 증명하라.
그래서 나는 다짐했다.
“이번만은 말을 줄이고, 결과로 말하자.”
노력은 조용히, 하지만 깊게
쉽지 않았다.
불편한 순간이 오면, 여전히 내 안에서는 말이 먼저 튀어나오려 했다.
억울함, 자존심, 인정욕구가 말로 쏟아지기 직전까지 온다.
그럴 때마다 속으로 되뇌었다.
‘욕눌어언이민어행’ ― 말을 눌러라. 행동은 빨리해라.’
회의 전에 더 많이 준비했다.
말을 줄이는 대신, 자료를 꼼꼼하게 만들고
동료들의 말에 먼저 귀를 기울였다.
누군가 말끝을 자를 때면, 바로 반격하지 않고,
그가 진짜로 원하는 게 무엇인지 질문을 던졌다.
때로는 침묵하는 용기를 택했고,
때로는 웃으며 한 발 물러났다.
민어사이신어언 (敏於事而愼於言)
“일에는 민첩하고, 말에는 신중하라.”
공자는 단지 조심하라는 말이 아니다.
진짜 실력을 갖춘 사람은 말을 앞세우지 않는다는 뜻이다.
나는 지금도 연습 중이다.
말을 꾹 눌러 담고,
성실한 반복으로 결과를 보여주는 법.
그건 하루아침에 되는 일이 아니다.
하지만 하루하루,
말보다 행동을 더 믿기로 한 내가 조금씩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조용한 사람이 결국 해내는 사람이다.
그날, 나를 웃음거리로 만든 선배를 다시 마주해도
나는 이제 웃으며 회의 자료를 넘긴다.
어쩌면 그가 가장 두려워하는 사람은,
말없이 꾸준히 해내는 나 같은 사람일지도 모르니까.
우린 감정을 표현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참지 말고 말하라’,
‘솔직함이 미덕이다’라는 말이 당연해진 시대.
하지만 공자는 다르게 말했다.
욕눌어언이민어행 (欲訥於言而敏於行)
“말은 어눌하더라도, 행동은 민첩해야 한다.”
말보다 중요한 건 그 말이 가진 무게와 방향성이라는 것.
무턱대고 속마음을 쏟아내는 것이 능사가 아니다.
내 감정을 ‘표현’이 아니라, ‘관리’하자
감정이 올라오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그 감정을 어떻게 말로 꺼내느냐 는 전혀 다른 문제다.
말은 조심스러워야 한다.
특히, 내가 감정적인 순간이라면 더더욱.
노력은 ‘말을 줄이는 훈련’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그 말이
내 안의 감정이 다스려졌을 때에야
비로소 진심이 되어 전달된다.
그래서 나는 지금부터 이렇게 연습한다
누군가 거슬리는 말을 해도, 즉각 반응하지 않는다.
말하기 전에, 한 박자 숨을 고른다.
감정이 올라오면, 바로 말하지 않고 메모장에 써둔다.
하루에 한 번, 내가 감정을 눌러낸 순간을 떠올려본다.
말을 줄이면 마음이 깊어진다.
감정을 다스리면 관계가 견고해진다.
누구나 실수한다.
나도, 너도, 그 선배도.
하지만 다음번에는 다르게 해보고 싶다.
누군가의 말이 날 자극해도
감정이 아닌 신중함으로 말하고 싶다.
그게 나를 지키는 길이고,
내가 원하는 사람으로 자라는 길이다.
지금부터,
내 말에 책임을 지는 연습을 시작해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