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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승우 Apr 04. 2023

우문현답의 환상

 우리는 어쩔 수 없이 분열되기 때문이다


RM이 스페인 매체와 한 인터뷰가 나온 지 꽤 됐는데, 아직까지 SNS에서 눈에 띄고 있다. 서구 중심적인 스탠더드에 카운터 펀치를 날렸다고 극찬하는 사람도 있고, 결국 능력주의 사고방식을 벗어나지 못했다고 비판하는 사람도 있다.


궁금해서 안 볼 수가 없어서, 며칠 전에 인터뷰 전문을 찾아서 정독했다. 내용을 떠나서 일단 질문이 구리다는 생각부터 든다. 애초에 후진 질문에 좋은 대답은 당연하게도 나올 수가 없다. 인터뷰에서 우문현답이란 진정한 가성비 같은 도시괴담이다.


지난 글에서 했던 이야기를 되풀이하면, 생산성 없는 인간을 필요로 하지 않는 자본주의에서 개인은 어쩔 수 없이 분열된다. 그게 가치로 교환되는 노동을 하며 사는, 우리가 속해 있는 세계의 한계다. 세계 최고의 보이그룹 리더라도 여기서 원칙적으로 자유롭지 않다. 골치 아프게도 사람에게는 입장이라는 게 있다는 뜻이다. 평범한 인간으로서의 한계는 딱 거기까지다. 김학선 평론가가 프레시안의 칼럼에서 쓴 “RM이니까 이 정도라도 말할 수 있었다”는 의견에 동의한다.


RM은 예전 어느 인터뷰에서 ‘RM’이라는 외연이 확장되고 거대해질수록 ‘김남준’이라는 개인을 지키기 위한 고민이 커진다고 말한 적이 있다. <알쓸인잡>에서 뜻하지 않은 영향력에 대한 두려움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그는 지적이고 중심이 단단한 청년으로 알려져 있지만, 그렇다고 순수성의 상징일 이유도 없고, 전위적인 문화 투사가 될 의무도 없다. 영향력이 좀 클 뿐 이런 체제와 거래하지 않을 수 없는 일개 연예인의 발언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이렇게까지 의미 부여가 될 일인지.


그 점에서 이 매체의 질문은 나쁘다. 대중적, 산업적으로 유의미한 성과를 낸 그룹의 리더와, 그 시스템에 문제의식을 가지는 개인은 서로 분열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게 오차 없이 일치하기를 바라는 식의 완벽함은 내면에서나 가능하다. 진부한 질문은 무가치하지만, 묘한 가정법의 올가미가 숨어 있는 이런 질문은 해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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