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은 스페인처럼, 일본은 일본처럼
축구를 확실히 예전보다 덜 보게 됐다. 큰 이벤트는 되도록 보려고 하지만, 보는 빈도 자체가 전과는 비교가 안 되게 줄었다. 일단 시간이 없는 게 이유지만, 대륙과 국가별 특색이 없어져서 과거의 재미가 덜한 탓도 있다.
사실 축구처럼 특정 국가의 팀 색깔이 그 나라의 일반화된 이미지와 이어지는 분야가 드물다. 예를 들면 선 굵고 이성적인 독일의 합리주의라든가, 더티하면서도 아름다운 이탈리아, 지리멸렬한 영국, 매우 세심하지만 무기력할 정도로 소심하기도 한 일본 등등. 이런 건 21세기 이후로 확실히 희박해지고 있다. 유럽은 피지컬과 파워, 남미는 테크닉으로 나뉘던 건 더 예전에 사라졌고.
사실 자연스럽다면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개개인의 기술은 지역과 상관없이 상향평준화가 진행 중이고, 전술적으로 나올 만한 건 다 나온 데다 트렌드는 빠르게 공유된다. 미드필더를 플랫이 아닌 다이아몬드나 M 포메이션으로 세우는 게 혁명이 되는 시대는 지난 것이다. 그렇기에 현대의 축구 산업에서는 훨씬 복잡다단한 스토리텔링과 기획이 요구되고, 그만큼 더 많은 자본의 이동이 필요하다. 일종의 신자유주의화라고 할까.
그런 의미에서 지난 여름의 여자 월드컵은 참 재미있었다. 나만 좋았던 게 아니라 대회 자체가 심상치 않은 성공으로 끝났다. 개최국인 호주에서는 완전히 난리가 났고. 아예 관심도 없었던 한국을 제외하면 대회 자체가 심상치 않은 성공을 거뒀다. 한국에서야 관심도 없고 하는 줄도 몰랐을 뿐이다. 아마도 위에서 말한 이유가 관련이 있지 않을까 한다. 그러니까, 스페인은 참 스페인처럼 축구했고, 일본은 일본처럼 했으며, 잉글랜드는 잉글랜드처럼 했다. 끔찍하게 원시적인 폭력성을 먹고 사는 이 흥미진진한 싸움구경에서, 이런 이미지라는 건 꽤 유용한 세일즈 포인트다.
따지고 보면 축구란 보편적이면서도 의외로 한계가 명확한 스포츠다. 스물두 명이 벌판에서, 그것도 신체에서 제일 말 안 듣는 부위로 공놀이하는 게 생각해보면 뭐 대단할 게 있나. 한 백 년 뒤에는 또 어떤 형태를 하고 있을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