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 끝나고. 아니 여행 계획을 바꿔 한국으로 돌아가기로 결정한 후. 우리는 기대와 설렘이 교차했다. 하고 싶은 일이 생겼다는 게 이런 마음일까.
머릿속의 일들을 빨리 진행하고 싶어 몸이 달아올랐다.
한국에서 여독을 풀며 푹 쉬고 싶은 마음보다 새롭게 시작될 일들이 설레 한국 가는 날을 손꼽았다. 한국행이 다가올수록 매일 밤 우리의 계획을 어떻게 이루어갈지에 대해 떠들었다.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스튜어디스에게 입국카드를 달라고 손짓으로 말했다. 스튜어디스는 나에게 외국인용 입국카드를 갖다 주었다.
"...... 저 한국사람인데요?"
인천공항에서 입국심사 없이 여권 스캔으로 자동문을 통과하자 비로소 한국에 온 것이 실감이 났다. 주변에서 들리는 한국말들과 한글 간판. 익숙한 브랜드가 눈에 가득 들어왔다. 설렘도 잠시. 신경을 곤두세우지 않아도 들리는 한국말들과 너무 많은 (읽을 수 있는) 정보들이 눈에 쏟아졌다. 머릿속이 핑핑 돌고 현기증이 났다.
우리의 갑작스러운 한국행에 가족들은 물론 친구들은 무슨 일 생겼다며 걱정스레 물어왔다.
어떤 이는 "드디어 2세가 생겼구나?" 라며 설레발을 쳤다. 적지 않은 시간 동안 못 봤다고 생각했는데 어제 만난 것과 같은 친숙함이 나를 반겼다. 그리고 그들은 이렇게 덧붙였다.
"그래서 언제 다시 나가는데?"
아침 8시. 여느 직장인들과 마찬가지로 나도 출퇴근 지하철에 올라탄다. 부평에서 신도림. 신도림에서 다시 강남으로 출퇴근하는 직장인들과 마주한 나는 지하철 안에서 무언지 모를 답답한 분위기를 느꼈다.
콩나물시루처럼 지하철에 끼인 채 그렇게 회사를 향해 목적지를 향해 달려간다. 눈에 초점은 폰에 고정되거나 깊은 피로감이 쌓인 얼굴로 눈을 감고 있다. 선잠을 자는지 그저 눈을 감은채 버티는 건지 알 수는 없다. 그렇게 그들의 분위기에 휩싸여 나의 감정은 바닥으로 수렴해간다.
토할 것 같았다. 숨쉬기 힘들다. 나는 너무 답답해져 도망치듯 구로디지털단지 역에 내렸다. 출구 계단으로 빠져나가는 사람들 사이로 보이는 벤치를 겨우 찾아 앉았다. 심호흡을 크게 했다. 답답한 공기. 경직된 표정. 다시 한번 크게 숨을 내쉬었다.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 속에 느리게 흐르는 나의 삶은 섞이지 않는 기름과 물처럼 사람들을 겉돌았다. 2년간의 여행은 천천히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이루어나갈 용기를 주었지만 한국 온 지 한 달 만에 남들 따라 바쁘게 뛰지도 못하고 내 호흡에 맞춰 여유도 갖지 못하는 사회 부적응자가 되어 버렸다.
"제일 좋았던 곳이 어디야?" 여행에 다녀온 후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이다. 제일 좋았던 곳이 왜 그렇게 중요할까? 내가 갔던 여행지 중에 최고를 꼭 꼽아야 하는 걸까?
"모든 곳이 각자의 매력이 있었고 정말로 다 좋았어"
"아니 그러지 말고 그중에서 한 곳만 꼽아봐 어디가 제일 좋았어?"
아무렇지 않아 보이는 질문에서 한국인들의 무의식 속에 숨어있는 경쟁이라는 단어를 떠올렸다. 누가 최고인지. 어디가 최고인지. 어떤 게 제일 좋은지. 치열한 삶에 찐득하게 녹아내려 갈피를 못 잡고 있는. 헛헛한 마음 채울 길 없는 한국인들의 애달픔을 느꼈다.
많은 사람들이 고민하고 갈망해왔던 그것. 사막의 신기루처럼 눈에 보이지 않지만 분명 존재할 것 같은 그것. 행복이라는 말은 진부하지만 이보다 명확하고 아름다운 단어가 또 있을까. 우리는 행복 앞에 굳이 '소소한'을 붙이고 작은 행복. 소확행을 챙겨야 하는 것인가. 큰 행복. 졸라 큰 행복을 꿈꾸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