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을 교육시킨 프랑스에 대항하여 알제리 해방을 위해 싸웠던 프란츠 파농의 걸작 『검은 피부, 하얀 가면』이 있다. 더럽고, 지능이 낮고, 동물적이고, 야만적이라는 흑인에 대한 고정관념을 강요하던 식민지 프랑스에 맞서 싸운 아프리카 해방운동에 관한 기록이다.
이 책을 처음 번역했던 김남주 시인은 제목을 『자기 땅에서 유배된 자들』이라고 고쳐 썼는데 그 울림이 컸다.
식민지를 경험한 국가들 중에는 식민지 종주국과 긴밀한 연관을 갖고 있거나, 정치적 독립은 했으나 경제적 문화적 종속에 처해 있는 나라들이 많다. 아프리카가 그렇다.
특히 아프리카 여성은 이 때문에 지금도 여전히 인종적 열등과 핍박에 시달리고 있다. 아프리카 여성이야말로 여전히 자기 땅에서 유배되고 있는 자들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부룬디공화국이라는 나라가 있다. 우간다, 르완다, 콩고, 탄자니아와 국경을 접하고 있어 ‘아프리카 심장’이라 불린다. 60여년간 독일과 벨기에의 식민통치를 받았으며 긴 내전 끝에 비로소 민주정치를 회복했지만 아프리카 188개국 중 인간개발지수(HDI)가 184위인 최빈국으로 청소년 중 10% 정도밖에는 중등교육을 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곳에 제주도 민간단체가 최초의 국립여자고등학교로 “최정숙여자고등학교”를 건립하여 2018년 9월10일 개교를 했다.
여고를 세운 이유는 자기 땅에서 유배되고 있는 여성들을 교육의 힘으로 도울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교육의 힘을 빌려 여성들을 도우려 했던 사람이 바로 최정숙(1902~1977)이다.
최정숙은 2016년 한국천주교 평신도사도직단체협의회가 5명의 “20세기 한국의 모범적 평신도” 가운데 한 사람으로 선정할 만큼 독실한 신앙인이다.
3·1독립운동가이자 의사로서 신성여중,고 무보수교장과 제주도 초대교육감을 지냈고, 베아트릭스라는 세례명으로 12살 때 천주님을 따르기로 맹세, 독신으로 평생 제주여성교육에 헌신을 하면서 사랑을 실천해 나갔던 분이다.
그분의 ‘사랑의 실천’을 계승, 발전시켜야 하지 않겠느냐는 문제의식을 가진 신성여고 출신 6명이 의기투합하여 2014년 6월 ‘샛별드리’ 모임을 결성하여 빈민국에 여학교 설립을 위한 자금을 모으기 시작했다.
그들은 최정숙선생이 하였던 것처럼 어렵고 힘든 여성들을 대상으로 교육운동을 펼쳐나가기로 했던 것이다. 이에 2017년 7월 ‘최정숙을 기리는 모임’으로 조직을 확대하면서 한국희망재단과 함께 그해 12월부터 부룬디에 여고 건립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되었고 드디어 2018년 8월6일 준공식을 갖게 되었던 것이다.
특별히 부룬디를 선택한 이유는 전통적으로 남아선호의식이 팽배하여 부모들이 여아교육의 필요성을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있고, 그러다보니 여성들은 가사노동이나 조혼, 강제임신 등으로 교육기회가 단절되어 있는 상태라서 빈곤의 악순환이 거듭되고 있는 나라였기 때문이다.
최정숙여고 건립을 통해 여성교육 기회를 확대하고 여성인력 배출의 새로운 계기가 마련되기를 바랐던 것이다. 이에 부룬디 국토환경부는 2만평 규모의 교육부지를 제공했고, 교육부와 여성부는 건축자재 일부를 지원했다.
부지 정리 및 벽돌과 모래 운송 등은 지역의 남녀주민들이 직접 참여함으로써 의미있는 일자리가 만들어졌다. 이렇게 합심하여 단 기간에 저렴한 비용으로 여자고등학교가 건립된 예는 아프리카 최초이다.
준공식에는 제주도에서 회원 19명이 참석을 했고, 부룬디에서는 국회의장 내외와 교육부장관을 위시, 수백여명의 마을사람들이 참석하여 그야말로 감동의 잔치판을 벌였다.
제주특별자치도에서는 공적개발원조(ODA) 사업으로 교육기자재를 지원해줌으로써 의미를 더욱 크게 해주었다,
현장을 보고 온 회원들마다 가장 시급한 것이 운송수단이라는 것을 알게 되자, 이 소식을 접한 신성여중고 학생들과 학부모 그리고 교사와 퇴직교사들이 직접 나서서 중고버스 구입비용 1천만원을 최근에 모아주기도 했다.
9월 10일에 입학한 100명의 신입생들은 학교기숙사 생활을 하며 앞으로 기술교육을 받을 예정이다. 연차적으로 225명의 여학생들을 가르치고, 배출하면 부룬디는 물론 아프리카 전역에서 의미 있는 활동을 하리라 기대된다.
앞으로 이들을 위해 교사교육과 선진 교육시스템 구축 등 할 일이 엄청 많다. 바라건대 KOICA 등에서 많은 관심을 가져주었으면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자기 땅에서 유배된 사람들에 대해 관심을 가져주는 후원자들이 많이 필요하다는 사실이다. 그들이야말로 바로 세상을 바꿔나가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