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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oona Nov 17. 2015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학교 전공 그런거 말고.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요.

  중국어를 공부하는 첫 시간에 나는 자기소개 하는 법을 배웠다. 선생님이 우리에게 부탁한 것은 내 이름이 무엇이고 어느 나라에서 왔으며 왜 오게 되었는지, 그리고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말하는 것이었다. 모두에게 그렇듯 익숙한 것이기에 나는 넋 놓고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참 많은 나라에서, 가지각각의 이유로 사람들이 이곳에 모였구나- 라는 시덥잖은 단상에 빠져 있을 때 내 차례가 돌아왔다. 내 이름은 무엇이며 한국에서 왔고, 그리고, 음, 그리고…….


  이상하게도 말문이 막히게 되었다. 내가 온 이유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가족이 이곳 상하이에 살고 있기 때문에? 아니다, 나는 나름의 만족스러운 독립생활을 만끽하고 있었다. 중국어를 배우기 위해서? 이것도 아닌 것 같다. 영어도 못하는데 중국어는 무슨. 그렇다고 삶의 휴식을 위해서 모든 것을 정리하왔다 하기에는 난 교만하리만치 어렸고, 그리 힘든 시기를 겪은 것도 아니었다.

 


  ‘중국이 좋아서’ 라는 나도 몰랐던 이유로 얼버무려 버리고 급하게 다음 문장을 위해 입을 떼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은, 그리고 짧은 정적. 좋아하는 것을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 떠올리는 것이 이렇게 힘든 일 일 줄이야. 순간 한국에서 살을 뺀답시고 짧게나마 열심히 운동을 했던 것이 떠올라 운동이 취미에요, 라고 툭 던지곤 자리에 앉았다. 매번 해왔던 자기소개인데 뭐가 그렇게 어려웠을까. 얼떨결에 나는 휴학을 할 만큼 중국을 좋아하고 운동이 취미인, 한국 여자애가 되어버렸다.  


 

 집에 오는 길에 수업시간의 잔상이 머릿속을 뱅뱅 맴돌았다. 오늘 소개한 나는 적어도 나는 아닌 것 같았다. 그리고 나는, 그동안 수 없이 해 왔던 자기소개에서 나를 어떤 사람이라 이야기 해왔는지 생각해보았다. 대학에 오고 나서 우리의 소개는 완벽하게 일관되지 않았던가.



 “안녕하세요, 저는 무슨 대학교 무슨 과 몇 학번 누구입니다. 아아, 몇 살 이구요 어디 살아요. 잘 부탁드려요.” 짧은 소개가 끝나면 사람들은 나에 대해서 모든 것을 파악했다는 눈치를 보내곤 했다. 하긴, 소개를 하고 있는 내 자신도 이 정도면 빼놓은 것 없이 말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유쾌하지만은 않았다. 그다지 큰 애정도 없는 ‘소속되어 있는 곳 들’이 내 자신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리라.


 


 상하이는 많은 이들이 잠시 머무르다 또 다시 스쳐지나가는 도시이다. 여기 모인 낯선 이들은 옷깃만 스치는 인연이 되기보다는 악수를 나누는 편이 낫다고 생각하기에, 그 수업시간 이후에도 자기소개를 할 일이 참 많았다.

 


 사람들은 나에게 이름을 물었다. 또 나의 나라에 대해서 물었다. 그리고 나서는 이 멋진 도시에 왜 오게 되었는지 물어보고는 각자 여기서의 생활에 대해 즐겁게 떠들어댄다. 제일 좋아하는 장소가 어디인지, 맛있는 식당이 어디인지, 공기가 안 좋을 때는 무엇을 하고 지내는지 묻고 묻고 또 묻는다.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헤어지고, 또 다시 만나도 사람들은 나에게 내가 다니는 학교 또는 직장이 좋은지 나쁜지, 나이가 적은지 많은지 궁금해 하지 않는다. 그냥 당신 앞에 서 있는 사람이 나 일 뿐, 지금까지 내가 내 존재의 전부라고 생각해왔던 많은 조건들을 굳이 끄집어 낼 필요가 없었다.



 안타깝게도 나는 아직 누군가를 만나면 그 사람의 나이가 몇 살인지, 좋은 직장 또는 학교에 다니는지가 가장 먼저 궁금해진다. 하지만 아주 조금씩, 내 앞에 있는 사람의 눈동자, 말투, 표정을 먼저 바라보는 연습을 하고 있다. 명함을 줄줄 읽어 내려가는 것만 같은 자기소개를 기대하기보다, 지금 나와 눈을 맞추고 있는 이 사람이 한껏 들뜬 표정으로 말하고 있는 이야기들이 그 사람의 소개라는 것을 잊지 않기 위한 연습을 하고 있다.

 


 또한 내 머릿속의 명함을 지우고, 초라하지만 솔직한 내 자신의 모습을 이야기하려 노력중이다. 그러기 위해서 먼저 이런 저런 거품을 걷어낸 내 자신의 모습을 찬찬히 들여다보는 중이다. 사소하지만 진짜 나를 이루는 것들에 대해서 말이다. 다시 한국에 돌아간다면 나는 이전의 틀에 박힌 소개를 반복해야 할지 모른다. 하지만 이곳에서의 시간은,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알고 보면 전부인, 작은 개인으로서의 나에 대해서 내 자신에게 찬찬히 소개하게 해주는 것 같다.


 


 별 것 없는 나 자신을 감추기 위해 한 줄의 멋들어진 무엇인가를 다시 애써 만들기 이전에, 내가 좋아하는 음식, 소박한 장소, 별 의미 없는 시간들이나 이런 저러한 일상에 대한 재잘거림, 참 사소한 것들에 귀를 기울일 수 있는 지금의 여유에 감사한다.


요즘은 상하이에 오고 나서 드는 이런 저런 생각을 글로 적는게 제일 즐겁다, 라고 저의 소개를 하곤 합니다:)  머릿속을 떠돌기만 하던 생각들을 흰 바탕에  써 내려가고, 사람들과 함께 이야기 할 수 있다는건 정말 놀라운 일 인거 같아요. 깊은 사색이나 깨달음이 담기지 않은 저의 글에 따뜻한 관심을 주셔서 너무 기쁘고,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매일 자기 전 엄마에게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듯 글을 써내려가려해요. 편하게 읽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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